마약류 각성제가 지배한 전쟁
제1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자 이후 극심한 사회·경제적 혼란을 겪었던 독일은 어떻게 제2차 세계대전 초반의 흐름을 장악할 수 있었을까? 초반에 프랑스를 이겼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프랑스를 이겼을까? 제1차 세계대전에서 4년간 참호 밖으로 제대로 전진하지도 못한 채 패했던 프랑스를 독일이 이긴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보통 전격전으로 대표되는 독일 기갑부대의 신화는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전황을 결정짓는 주요 변수였다. 지리한 참호전으로 가기 전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치고 들어가는 전술이다. 적군이 뒤를 둘러싸면 전멸당할 수도 있지만, 이 위험을 넘어서는 속도로 적군 진영을 전진하며 혼란에 빠뜨리는 이 전격전은 전쟁 초기 느긋하게 대응하려뎐 프랑스군을 궤멸시키는 주요 전술이었다. 탱크의 질도 양도 부족했던 패전국 독일은 어느덧 승전국 프랑스를 점령하였다. 전술이 이래서 중요하다.
그러면 독일군의 전격전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체계적인 훈련과 시스템 정비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그런데 여기에 마약류 각성제도 한 몫 한다. 당시 독일군이 애용하던 각성제는 퍼비핀(Pervitin)이란 이름의 약이었다. 전쟁 초기 장교들이 직접 나눠주며 복용을 권장하던 이 약의 성분은 메스암페타민. 비슷한 시기 일본군이 필로폰이라는 상품명으로 애용하던 바로 그 물질이다. 일본이 필로폰을 개발한 시기, 대륙 반대편 독일의 화학자는 같은 물질을 퍼비틴이라는 이름의 각성제로 만들어 팔고 있었다. 그리고 군에 납품되어 전쟁의 초반을 결정짓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메스암페타민은 일본인 약화학자가 생약재인 마황을 연구하던 와중에 개발한 물질이다. 이후 이 물질에 집중력과 체력을 일시적이긴 하지만 올려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 일본에서는 193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팔리기 시작하였다. 이 제품은 심지어 일본 정부도 권장하던 물질이다. 전투원 뿐 아니라 후방에서 군수물자를 조달하던 사람들부터 생업에 종사하던 사람들까지 일시적인 생산력 향상을 느끼며 만끽하던 물질이다. 도파민 증가로 인한 신경계의 과잉 활성화 때문이다. 물론 이런 효과는 오래 지속하지 못 한다. 우리 몸은 도파민 과잉을 인지하고 신경세포의 수를 줄이거나 수용체를 조절하는 형태로 넘쳐나는 도파민에 적응해 간다. 따라서 같은 양의 메스암페타민을 복용해도 처음 느꼈던 그 쾌감과 활력을 느끼지는 못 한다. 결국 더 많은 양을 원하게 되는데 우리는 이것을 내성이라고 부른다.
약물 내성과 중독에 빠진 군대가 강군일리는 없다. 독일군도 이를 인지하고 2년여가 지나자 퍼비틴을 금지시켰다. 잘 보급되던 각성제가 어느날 갑자기 공급이 끊겼다. 금단증상에 시달리던 군인들이 더욱 더 공황상태에 빠졌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은 조금 늦게 끊었다. 전쟁 중 대량생산했던 필로폰이 패전과 함께 민간인에 풀리고 그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1951년 마약법을 제정해 본격 단속에 나섰다. 하지만 일본인 역시 쉽사리 끊지 못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필로폰은 지금도 일본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물질이다.
마약류 각성제에 힘을 빌린 건 연합군도 마찬가지다. 연합군이 애용했던 물질은 암페타민이고, 이를 주로 사용했던 사람들은 파일럿이었다. 잠깐의 순간에 생사가 결정되는, 약간의 타격 만으로도 추락해 즉사하거나 포로가 되는 파일럿들에게 각성제는 필수품이었다. 독일군이 퍼비틴에 취해 출격한 이상 연합군도 약물로 무장하는 게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전쟁이라는 극단 속에서 상식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이후 마약류 각성제는 지금까지도 살아 나았다. 승전국인 연합국에서 암페타민은 의사 처방전 하에서 ADHD 치료제로 승인되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합법적 용도 외에 불법적인 용도로도 여전히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역시 전쟁이다.
2010년대 IS가 이슬람에서 전쟁을 일으키던 당시 IS는 조직원들에게 ‘캡타곤’이라는 약물을 지급했다. 캡타곤은 어떤 약일까? 암페타민과 카페인을 화학적으로 결합시킨 물질이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암페타민을 커피에 타서 마신다고 생각하면 조금 비슷하다. 각성제와 각성제라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전투를 앞두고서 몇 알을 먹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금단의 약물까지 꺼낸 상황이 야속하기 짝이 없다.
IS가 패퇴한 지금도 캡타곤은 사용되고 있다. 2023년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다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보복 공격한 전쟁에서 캡타곤이 다시 발견되었다. 이쯤 되면 전쟁에서 이기는 게 사람인지 약물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필자소개>
백승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의약화학을 강의·연구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약의 역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분자 조각자들’ 등이 있다.
마약류 각성제가 지배한 전쟁
제1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자 이후 극심한 사회·경제적 혼란을 겪었던 독일은 어떻게 제2차 세계대전 초반의 흐름을 장악할 수 있었을까? 초반에 프랑스를 이겼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프랑스를 이겼을까? 제1차 세계대전에서 4년간 참호 밖으로 제대로 전진하지도 못한 채 패했던 프랑스를 독일이 이긴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보통 전격전으로 대표되는 독일 기갑부대의 신화는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전황을 결정짓는 주요 변수였다. 지리한 참호전으로 가기 전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치고 들어가는 전술이다. 적군이 뒤를 둘러싸면 전멸당할 수도 있지만, 이 위험을 넘어서는 속도로 적군 진영을 전진하며 혼란에 빠뜨리는 이 전격전은 전쟁 초기 느긋하게 대응하려뎐 프랑스군을 궤멸시키는 주요 전술이었다. 탱크의 질도 양도 부족했던 패전국 독일은 어느덧 승전국 프랑스를 점령하였다. 전술이 이래서 중요하다.
그러면 독일군의 전격전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체계적인 훈련과 시스템 정비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그런데 여기에 마약류 각성제도 한 몫 한다. 당시 독일군이 애용하던 각성제는 퍼비핀(Pervitin)이란 이름의 약이었다. 전쟁 초기 장교들이 직접 나눠주며 복용을 권장하던 이 약의 성분은 메스암페타민. 비슷한 시기 일본군이 필로폰이라는 상품명으로 애용하던 바로 그 물질이다. 일본이 필로폰을 개발한 시기, 대륙 반대편 독일의 화학자는 같은 물질을 퍼비틴이라는 이름의 각성제로 만들어 팔고 있었다. 그리고 군에 납품되어 전쟁의 초반을 결정짓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메스암페타민은 일본인 약화학자가 생약재인 마황을 연구하던 와중에 개발한 물질이다. 이후 이 물질에 집중력과 체력을 일시적이긴 하지만 올려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 일본에서는 193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팔리기 시작하였다. 이 제품은 심지어 일본 정부도 권장하던 물질이다. 전투원 뿐 아니라 후방에서 군수물자를 조달하던 사람들부터 생업에 종사하던 사람들까지 일시적인 생산력 향상을 느끼며 만끽하던 물질이다. 도파민 증가로 인한 신경계의 과잉 활성화 때문이다. 물론 이런 효과는 오래 지속하지 못 한다. 우리 몸은 도파민 과잉을 인지하고 신경세포의 수를 줄이거나 수용체를 조절하는 형태로 넘쳐나는 도파민에 적응해 간다. 따라서 같은 양의 메스암페타민을 복용해도 처음 느꼈던 그 쾌감과 활력을 느끼지는 못 한다. 결국 더 많은 양을 원하게 되는데 우리는 이것을 내성이라고 부른다.
약물 내성과 중독에 빠진 군대가 강군일리는 없다. 독일군도 이를 인지하고 2년여가 지나자 퍼비틴을 금지시켰다. 잘 보급되던 각성제가 어느날 갑자기 공급이 끊겼다. 금단증상에 시달리던 군인들이 더욱 더 공황상태에 빠졌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은 조금 늦게 끊었다. 전쟁 중 대량생산했던 필로폰이 패전과 함께 민간인에 풀리고 그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1951년 마약법을 제정해 본격 단속에 나섰다. 하지만 일본인 역시 쉽사리 끊지 못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필로폰은 지금도 일본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물질이다.
마약류 각성제에 힘을 빌린 건 연합군도 마찬가지다. 연합군이 애용했던 물질은 암페타민이고, 이를 주로 사용했던 사람들은 파일럿이었다. 잠깐의 순간에 생사가 결정되는, 약간의 타격 만으로도 추락해 즉사하거나 포로가 되는 파일럿들에게 각성제는 필수품이었다. 독일군이 퍼비틴에 취해 출격한 이상 연합군도 약물로 무장하는 게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전쟁이라는 극단 속에서 상식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이후 마약류 각성제는 지금까지도 살아 나았다. 승전국인 연합국에서 암페타민은 의사 처방전 하에서 ADHD 치료제로 승인되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합법적 용도 외에 불법적인 용도로도 여전히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역시 전쟁이다.
2010년대 IS가 이슬람에서 전쟁을 일으키던 당시 IS는 조직원들에게 ‘캡타곤’이라는 약물을 지급했다. 캡타곤은 어떤 약일까? 암페타민과 카페인을 화학적으로 결합시킨 물질이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암페타민을 커피에 타서 마신다고 생각하면 조금 비슷하다. 각성제와 각성제라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전투를 앞두고서 몇 알을 먹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금단의 약물까지 꺼낸 상황이 야속하기 짝이 없다.
IS가 패퇴한 지금도 캡타곤은 사용되고 있다. 2023년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다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보복 공격한 전쟁에서 캡타곤이 다시 발견되었다. 이쯤 되면 전쟁에서 이기는 게 사람인지 약물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필자소개>
백승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의약화학을 강의·연구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약의 역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분자 조각자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