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은 우리 몸의 변화를 가장 잘 인지하는 조직이다. 혈류의 흐름을 감지하며 혈압을 조절하기도 하고 필요한 영양분을 재흡수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호르몬이나 신경전달물질도 생산해서 직접적으로 우리 몸의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아드레날린이나 레닌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마법의 스테로이드, 코르티손도 여기에 해당한다.
코르티손은 처음 추출될 때부터 각광받았던 물질이다. 소의 신장 위 부신이란 조직에서 나온 추출액은 ‘코르틴(cortin)’이란 상품명으로 시판되었다. 애디슨씨 병 치료제 용도였는데 이 병이 코르티손 부족으로 인해 발병하는 것을 감안하면 적절한 치료법이라 볼 수 있다. 직전까지는 불치병이었던 애디슨씨 병의 치료제가 개발되면서 코르틴은 마법의 스테로이드로 각광받았다. 이에 따라 코르티손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코르티손이 소의 부신에서 나오기 하지만 어쨌든 화합물이다. 소의 고환에서 나오던 테스토스테론을 콜레스테롤 유도체에서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한 사람들이 1930년대의 과학자들이다. 이 사람들은 연이어 코르티손도 화학적으로 합성하려 했는데 테스토스테론에 비해 코르티손의 구조는 조금 더 복잡하다. 그만큼 만들기도 어려웠다. 테스토스테론으로 대박을 쳤던 당대의 과학자들은 코르티손의 난해함에 두 손을 들어야만 했다. 오히려 소의 부신에서 추출하는 방법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도축장에서 버려지는 장기도 많던 시절이다. 전세계적으로 생각한다면 어쩌면 더 현실성 있는 대안일 수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1941년 미국 정보부는 한 첩보를 입수하게 된다. 나치가 아르헨티나에서 소의 부신을 대량으로 확보해 본국으로 가져가고 있다는 정보였다. 예나 지금이나 정보부에 들어오는 모든 정보가 진실은 아니다. 다각적으로 분석해 정확한 정보를 가려내고 규합해서 실체적 진실을 알아내는 것이 정보부의 역할이다. 하지만 연이어서 들어오는 공작원들의 정보는 무섭기 짝이 없었다. 나치가 부신 추출물을 이용해 코르티손을 대량생산하고 이를 바탕으로 슈퍼 파일럿을 양산한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파일럿들이 보다 높은 고도에서 활동한다면 어떻게 될까? 폭격기가 전투기의 활동 고도를 넘어서서 무차별 폭격한다면? 이것이 불가능했던 이유는 산소 농도가 낮아서 작전을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인데, 만약 코르티손이란 마법의 스테로이드를 복용하고 이를 현실화한다면? 제공권을 바탕으로 전쟁을 수행하던 연합국 수뇌부에게 이러한 정보는 위험하고 공포스럽기 짝이 없었다.
연합국도 대책을 세워야 했다. 하지만 어디서 코르티손을 얻는단 말인가? 현실적인 방법인 소의 부신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나치가 다 수거해 갔는데? 미국의 과학자들인 다시 화학적 합성법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원료가 될 콜레스테롤 유도체 등에서도 확보가 수월했다. 미국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제약회사까지 참여한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에드웨드 켄달 같은 전문가들은 그전과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한 조건에서 화합물 분리 및 합성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원천기술까지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정작 히틀러가 자살하고 독일이 항복했다. 연합군이 확인한 결과 나치 정권은 코르티손을 이용해 슈퍼 파일럿을 양산하려고 한 적이 없었다. 거짓 정보에 제대로 놀아난 미국 정보부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코르티손 관련 연구도 접어야만 할까?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이 코르티손은 그 자체로 마법의 약이었고 경위야 어쨌든 상당한 수준의 기술적 진보를 이뤄낸 상태였다. 미국 정부의 관심이 나치에서 공산주의자로 옮겨가며 관심이 차갑게 식어버린 이 시기, 제약회사가 본격적으로 코르티손 개발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후 머크와 같은 제약회사는 코르티손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수준으로는 상상도 하기 어려웠던 36단계의 합성법을 개발해 코르티손을 합성해 낸 것이다. 이후 이렇게 개발된 코르티손 9그램은 애디슨씨 병을 넘어서 관절염 치료 등 보다 광범위한 질환에 사용된다. 속고 속이는 전쟁의 흐름 속에서 뜻하지 않게 개발된 코르티손이지만 어쨌든 우리 인류에겐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의약품이다.
<필자소개>
백승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의약화학을 강의·연구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약의 역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분자 조각자들’ 등이 있다.
신장은 우리 몸의 변화를 가장 잘 인지하는 조직이다. 혈류의 흐름을 감지하며 혈압을 조절하기도 하고 필요한 영양분을 재흡수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호르몬이나 신경전달물질도 생산해서 직접적으로 우리 몸의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아드레날린이나 레닌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마법의 스테로이드, 코르티손도 여기에 해당한다.
코르티손은 처음 추출될 때부터 각광받았던 물질이다. 소의 신장 위 부신이란 조직에서 나온 추출액은 ‘코르틴(cortin)’이란 상품명으로 시판되었다. 애디슨씨 병 치료제 용도였는데 이 병이 코르티손 부족으로 인해 발병하는 것을 감안하면 적절한 치료법이라 볼 수 있다. 직전까지는 불치병이었던 애디슨씨 병의 치료제가 개발되면서 코르틴은 마법의 스테로이드로 각광받았다. 이에 따라 코르티손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코르티손이 소의 부신에서 나오기 하지만 어쨌든 화합물이다. 소의 고환에서 나오던 테스토스테론을 콜레스테롤 유도체에서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한 사람들이 1930년대의 과학자들이다. 이 사람들은 연이어 코르티손도 화학적으로 합성하려 했는데 테스토스테론에 비해 코르티손의 구조는 조금 더 복잡하다. 그만큼 만들기도 어려웠다. 테스토스테론으로 대박을 쳤던 당대의 과학자들은 코르티손의 난해함에 두 손을 들어야만 했다. 오히려 소의 부신에서 추출하는 방법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도축장에서 버려지는 장기도 많던 시절이다. 전세계적으로 생각한다면 어쩌면 더 현실성 있는 대안일 수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1941년 미국 정보부는 한 첩보를 입수하게 된다. 나치가 아르헨티나에서 소의 부신을 대량으로 확보해 본국으로 가져가고 있다는 정보였다. 예나 지금이나 정보부에 들어오는 모든 정보가 진실은 아니다. 다각적으로 분석해 정확한 정보를 가려내고 규합해서 실체적 진실을 알아내는 것이 정보부의 역할이다. 하지만 연이어서 들어오는 공작원들의 정보는 무섭기 짝이 없었다. 나치가 부신 추출물을 이용해 코르티손을 대량생산하고 이를 바탕으로 슈퍼 파일럿을 양산한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파일럿들이 보다 높은 고도에서 활동한다면 어떻게 될까? 폭격기가 전투기의 활동 고도를 넘어서서 무차별 폭격한다면? 이것이 불가능했던 이유는 산소 농도가 낮아서 작전을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인데, 만약 코르티손이란 마법의 스테로이드를 복용하고 이를 현실화한다면? 제공권을 바탕으로 전쟁을 수행하던 연합국 수뇌부에게 이러한 정보는 위험하고 공포스럽기 짝이 없었다.
연합국도 대책을 세워야 했다. 하지만 어디서 코르티손을 얻는단 말인가? 현실적인 방법인 소의 부신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나치가 다 수거해 갔는데? 미국의 과학자들인 다시 화학적 합성법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원료가 될 콜레스테롤 유도체 등에서도 확보가 수월했다. 미국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제약회사까지 참여한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에드웨드 켄달 같은 전문가들은 그전과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한 조건에서 화합물 분리 및 합성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원천기술까지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정작 히틀러가 자살하고 독일이 항복했다. 연합군이 확인한 결과 나치 정권은 코르티손을 이용해 슈퍼 파일럿을 양산하려고 한 적이 없었다. 거짓 정보에 제대로 놀아난 미국 정보부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코르티손 관련 연구도 접어야만 할까?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이 코르티손은 그 자체로 마법의 약이었고 경위야 어쨌든 상당한 수준의 기술적 진보를 이뤄낸 상태였다. 미국 정부의 관심이 나치에서 공산주의자로 옮겨가며 관심이 차갑게 식어버린 이 시기, 제약회사가 본격적으로 코르티손 개발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후 머크와 같은 제약회사는 코르티손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수준으로는 상상도 하기 어려웠던 36단계의 합성법을 개발해 코르티손을 합성해 낸 것이다. 이후 이렇게 개발된 코르티손 9그램은 애디슨씨 병을 넘어서 관절염 치료 등 보다 광범위한 질환에 사용된다. 속고 속이는 전쟁의 흐름 속에서 뜻하지 않게 개발된 코르티손이지만 어쨌든 우리 인류에겐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의약품이다.
<필자소개>
백승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의약화학을 강의·연구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약의 역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분자 조각자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