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백승만교수의 '전쟁과 약' 이야기
<11> 공기의 연금술사, 화학 무기를 만들다.
백승만
입력 2023-10-27 11:09 수정 최종수정 2023-10-2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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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무기를 팔아서 돈을 버는 군수 산업도 엄연히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전쟁은 생산 행위가 아니다끝없는 소모 행위다적절한 보급이 없으면 하루도 버티기 어려운 게 군대다그 옛날 보급선이 끊겨 어이없게 패한 삼국지연의 속 원소의 군대부터 지금 벌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그 예는 숱하게 많다.

전쟁 속 수많은 소모품 중에서도 가장 필요한 것은 화약과 식량이다그런데 19세기 후반 전쟁이 총력전으로 변해 가면서 제국주의 국가들은 화약과 식량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안 그래도 인구가 늘어나면서 식량이 모자라는 상황이었다화약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이 찾은 해법은 칠레페루볼리비아가 국경을 마주한 지역에 광대하게 존재했던 질산염이었다수십만 년 동안 그 지역 새들이 쌓아놓은 똥이 정체였건만 그 긴 시간 지나며 완전히 말라붙어 최고의 화약 원료이자 비료로 활용할 수 있었다그다지 신경도 쓰지 않던 이 미지의 땅에 어느덧 사람들이 몰려와서 새똥을 캐기 시작했고 이 세 나라는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까지 치러야 했다이 전쟁을 19세기 태평양 전쟁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독일로서는 이 상황이 그저 남의 일이었다. 20세기 초반 독일이 이 새똥즉 구아노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었기에그리고 그 구아노 자체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에 독일의 화학자들은 새로운 방법을 고안했다공기 중의 질소를 수소와 반응시켜서 암모니아로 만드는 방법이었다암모니아를 질산염으로 산화시키는 방법오스트발트 공정법은 이미 개발되어 있었다따라서 암모니아만 있으면 충분했다그런데 그게 될까?

공기 중의 질소 가스는 대기의 79%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풍부하지만 이게 풍부한 이유는 특별히 다른 물질과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두 개의 질소 원자가 단일도 아니고이중도 아닌 삼중 결합으로 존재하기에 이 결합을 끊어서 수소와 결합시켜 예쁘게 암모니아로 만드는 일은 상상속으로나 가능한 일이었다하지만 이 불가능한 일을 굳이 하려고 또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프리츠 하버도 그 중의 하나였다.

하버는 불가능한 일을 진행시키기 위해 온도나 압력을 조절하는 동시에 또 하나의 방법을 추가했다바로 촉매였다촉매는 일반적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일도 가능하게 하는 마법의 물질이다당시 하버는 수많은 금속을 테스트하면서 오스뮴 촉매 존재하에서 드디어 원하던 반응이 진행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이후 하버의 암모니아 생산법은 고온·고압 반응의 전문가 보슈의 도움을 받아 하버-보슈법으로 진화한다촉매도 구하기 어려운 오스뮴 대신에 산화철 등으로 구성된 값싼 촉매를 사용해 효율을 높인다그렇게 라인강 유역에서는 귀하디 귀한 질산염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었다그리고 이 질산염은 화약으로비료로 사용되어 전선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버는 이후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한다전쟁 승리를 위해 화약과 비료를 넘어 독가스까지 연구한 것이다화약과 비료는 전쟁 후에도 인류를 위해 사용하지만 독가스는 다르다그런데 하버는 전혀 고민 없이 독가스를 만들어 전장에 살포했다1차 세계대전 당시 악명 높은 화학무기는 이렇게 개발되었다.

이후 독일이 패전하고 나치가 집권하면서 하버의 운명도 바뀌게 된다독일을 위해 헌신하고 노벨상도 받은 상징적인 인물이었건만 하버도 어쨌든 유태인이었다나치 정권 하에서 하버는 조국에 버림 받은 채 영국으로 망명을 하려 하지만 화학무기 제조 경력을 문제 삼아 영국에서는 망명을 거부한다이후 하버는 스위스의 한 호텔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았다.

하버가 실각하고 나서 독일은 달라졌을까안타깝지만 그렇지 않다독일군은 더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 전장의 비대칭 전력으로 사용하고자 했다질소 겨자가스와 같은 악명높은 화학무기가 대표적이다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 질소 겨자가스에 노출된 사람들의 백혈구 수치가 상당히 낮아진 것이다2차 세계대전 중 우연히 밝혀진 이런 사실들로 인해 질소 겨자가스는 백혈병 치료제로 연구되었고 이후 구조 변화를 거쳐서 지금까지도 항암제로 사용하고 있다하버가 뿌린 씨앗이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의약품이 된 셈이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버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일은 없을 테지만 말이다.

 

<필자소개>

백승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의약화학을 강의·연구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약의 역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분자 조각자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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