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부터 2년간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렸던 스페인 독감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감염자들이 속출하면서 집단 면역이 형성되었으리라고 짐작하지만 확실한 것은 없다. 그래도 1919년 이후로 스페인 독감이 다시 발발한 적은 없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 다행스러운 전개는 지금에서야 아는 사실이지, 당시로서는 가령 1930년이나 40년대에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의 힘으로 스페인 독감을 물리친 것이 아니었다. 자연이 알아서 감염시켰고 알아서 거둬들였다. 그 자연이 변덕을 부린다면 어떻게 될까? 다시 1918년의 악몽을 겪을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스페인 독감의 재현을 막아야만 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던가. 스페인 독감을 막기 위해서는 원인체를 알아야 했다. 다행히도 1930년대를 지나며 스페인 독감의 원인체가 바이러스라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하나도 아니고 어느 바이러스가 창궐할지 예측하는 일은 지금도 어렵다. 매번 독감 주사를 맞았음에도 독감에 걸려서 불평하는 이유지만 어쩔 수 없다. 자연을 이기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래도 모든 독감을 예방하자는 것도 아니고, 스페인 독감의 원인 바이러스를 규명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1951년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던 요한 훌틴은 비교적 쉽게 생각했다. 알래스카로 가서 얼어붙은 사체를 조사해보면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가 들어 있을테고 이것을 분석하면 뭔가 방법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가설이었다. 그리고 이 가설은 당시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데에도 성공했다. 미국도 마침 소련이 시베리아에 얼어붙은 스페인 독감 사체에서 원인 바이러스를 찾아내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냉전 체제를 뒤흔들 수 있는 비대칭 전력 앞에 미국도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그런 측면에서 훌틴의 가설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훌틴은 성공하지 못했다. 알래스카의 영구동토층으로 가서 사체를 발굴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거기서 살아 있는 바이러스 샘플을 얻는 데에는 실패한 것이다. 영구동토층이라고 해도 계절에 따라 땅이 녹고 어는 일이 반복되었고 그 과정에서 세포가 파괴되고 바이러스도 죽었다고 볼 수 있다. 26세의 청년 훌틴은 실패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후 이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실마리가 잡힌 것은 40년 넘게 흐른 1997년의 일이다. 미군 병리학 연구소에서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 조각을 일부 확보해 H1N1 바이러스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미군 병리학 연구소는 샘플을 어떻게 얻었을까? 그들은 미국 본토의 매장지에서 100여 구의 사체를 뒤진 끝에 찾아낼 수 있었다. 물론 바이러스는 끔찍할 정도로 훼손돼 있었지만 1997년의 발달한 생화학 기법은 이 사체의 유전 정보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발전해 있었다. 그리고 이 결과가 발표된 이후 연구진에게 연락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요한 훌틴이었다.
1997년의 요한 훌틴은 이제 72세의 은퇴한 학자였지만 열정은 그대로였다. 그가 보기에 미군 병리학 연구소가 확보한 샘플은 너무 훼손되어 있었다. 유전 정보도 모두를 확인한 게 아니라 일부만 확인해서 H1N1이라고 결론내렸다. 다른 샘플이 있다면 보다 확실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훌틴은 더 좋은 샘플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 바로 알래스카였다. 그는 연구진에게 연락해서 알래스카로 가서 더 좋은 샘플을 줄테니 분석해 달라고 제안하였다. 더 좋은 샘플을 주겠다는데 거절할 연구자가 있겠는가? 병리학 연구소의 책임자인 제프리 타우벤버거는 당국에 연구비를 신청할테니 이듬해에 함께 발굴하러 알래스카로 가자고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이에 훌틴은 내년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다음 주에 그냥 가자고 회답하였다. 정부 연구비니 뭐니 다 필요 없고 사비로 가면 되지 않겠냐는 것. 훌틴 가족의 인터뷰에 따르면 훌틴은 당장 그주에 떠나고 싶었지만 아내에게 집안 수리를 약속했기 때문에 다음 주 정도에 떠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이후 정말 훌틴은 발굴단을 이끌고 알래스카로 갔다. 그리고 40여 년 전보다 더 깊이 파고 들어가 그럭저럭 괜찮은 바이러스 샘플을 확보했다. 타우벤버거에게 보내진 이 샘플은 이후 유전자 분석을 거쳐서 H1N1 바이러스로 판가름나게 된다. 한 연구자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 덕분에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정체는 이처럼 의심의 여지 없이 판명날 수 있었다.
<필자소개>
백승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의약화학을 강의·연구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약의 역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분자 조각자들’ 등이 있다.
1918년부터 2년간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렸던 스페인 독감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감염자들이 속출하면서 집단 면역이 형성되었으리라고 짐작하지만 확실한 것은 없다. 그래도 1919년 이후로 스페인 독감이 다시 발발한 적은 없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 다행스러운 전개는 지금에서야 아는 사실이지, 당시로서는 가령 1930년이나 40년대에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의 힘으로 스페인 독감을 물리친 것이 아니었다. 자연이 알아서 감염시켰고 알아서 거둬들였다. 그 자연이 변덕을 부린다면 어떻게 될까? 다시 1918년의 악몽을 겪을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스페인 독감의 재현을 막아야만 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던가. 스페인 독감을 막기 위해서는 원인체를 알아야 했다. 다행히도 1930년대를 지나며 스페인 독감의 원인체가 바이러스라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하나도 아니고 어느 바이러스가 창궐할지 예측하는 일은 지금도 어렵다. 매번 독감 주사를 맞았음에도 독감에 걸려서 불평하는 이유지만 어쩔 수 없다. 자연을 이기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래도 모든 독감을 예방하자는 것도 아니고, 스페인 독감의 원인 바이러스를 규명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1951년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던 요한 훌틴은 비교적 쉽게 생각했다. 알래스카로 가서 얼어붙은 사체를 조사해보면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가 들어 있을테고 이것을 분석하면 뭔가 방법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가설이었다. 그리고 이 가설은 당시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데에도 성공했다. 미국도 마침 소련이 시베리아에 얼어붙은 스페인 독감 사체에서 원인 바이러스를 찾아내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냉전 체제를 뒤흔들 수 있는 비대칭 전력 앞에 미국도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그런 측면에서 훌틴의 가설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훌틴은 성공하지 못했다. 알래스카의 영구동토층으로 가서 사체를 발굴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거기서 살아 있는 바이러스 샘플을 얻는 데에는 실패한 것이다. 영구동토층이라고 해도 계절에 따라 땅이 녹고 어는 일이 반복되었고 그 과정에서 세포가 파괴되고 바이러스도 죽었다고 볼 수 있다. 26세의 청년 훌틴은 실패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후 이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실마리가 잡힌 것은 40년 넘게 흐른 1997년의 일이다. 미군 병리학 연구소에서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 조각을 일부 확보해 H1N1 바이러스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미군 병리학 연구소는 샘플을 어떻게 얻었을까? 그들은 미국 본토의 매장지에서 100여 구의 사체를 뒤진 끝에 찾아낼 수 있었다. 물론 바이러스는 끔찍할 정도로 훼손돼 있었지만 1997년의 발달한 생화학 기법은 이 사체의 유전 정보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발전해 있었다. 그리고 이 결과가 발표된 이후 연구진에게 연락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요한 훌틴이었다.
1997년의 요한 훌틴은 이제 72세의 은퇴한 학자였지만 열정은 그대로였다. 그가 보기에 미군 병리학 연구소가 확보한 샘플은 너무 훼손되어 있었다. 유전 정보도 모두를 확인한 게 아니라 일부만 확인해서 H1N1이라고 결론내렸다. 다른 샘플이 있다면 보다 확실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훌틴은 더 좋은 샘플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 바로 알래스카였다. 그는 연구진에게 연락해서 알래스카로 가서 더 좋은 샘플을 줄테니 분석해 달라고 제안하였다. 더 좋은 샘플을 주겠다는데 거절할 연구자가 있겠는가? 병리학 연구소의 책임자인 제프리 타우벤버거는 당국에 연구비를 신청할테니 이듬해에 함께 발굴하러 알래스카로 가자고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이에 훌틴은 내년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다음 주에 그냥 가자고 회답하였다. 정부 연구비니 뭐니 다 필요 없고 사비로 가면 되지 않겠냐는 것. 훌틴 가족의 인터뷰에 따르면 훌틴은 당장 그주에 떠나고 싶었지만 아내에게 집안 수리를 약속했기 때문에 다음 주 정도에 떠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이후 정말 훌틴은 발굴단을 이끌고 알래스카로 갔다. 그리고 40여 년 전보다 더 깊이 파고 들어가 그럭저럭 괜찮은 바이러스 샘플을 확보했다. 타우벤버거에게 보내진 이 샘플은 이후 유전자 분석을 거쳐서 H1N1 바이러스로 판가름나게 된다. 한 연구자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 덕분에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정체는 이처럼 의심의 여지 없이 판명날 수 있었다.
<필자소개>
백승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의약화학을 강의·연구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약의 역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분자 조각자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