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참전과 스페인 독감의 창궐
전염병이 어떻게 창궐했는가를 역으로 추적하기는 무척이나 어렵다. 지금도 코로나19의 기원이 어느 지역인지, 어떤 동물인지에 대해서 과학자들 뿐 아니라 정치가들까지도 논쟁을 벌이고 있다. 널리 창궐한 질병일수록 시작을 찾기는 힘든 법이다.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바로 스페인 독감이다. 지금도 어려운 역학조사가 당시라고 쉬울 리 있었겠는가. 최초의 환자를 찾는 일은 그때도 어려웠다. 더군다나 주기적으로 발병하는 계절성 독감과 섞여서 첫 환자, 페이션트 제로를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여러 문헌에서 최초의 환자를 제시하고 있지만 종합적인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래도 스페인 독감이 폭발적으로 창궐하게 된 계기는 대체적으로 동의하곤 한다. 바로 미국의 신병훈련소다. 제1차 세계대전이 길어지고 독일이 미국을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미국도 자국 군대를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대서양 너머까지 확대된 이 전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당연히 군인이다. 예나 지금이나, 기술이 아무리 좋아져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그리고 이 사람이 숙련된 군인일수록 좋다.
미국의 신병훈련소는 입대자들로 가득 찼다. 이 신병을 잘 훈련시켜 대서양 너머 프랑스와 독일이 대치하고 있는 전장에 보내는 것이 이 훈련소의 역할이다. 그런데 훈련소에서 독감이 창궐한 것이다. 풋내기 병사들이 기침을 헤대며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3일이 채 되기 전에 열이 40도까지 오르고 폐렴 합병증이 발생했다. 일주일 만에 500명 넘는 감염자가 나와서 신병 훈련소는 어느덧 환자 진료소로 기능해야 할 정도였다.
전국적으로 독감이 퍼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의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마스크 쓰고 손 씻고 일정 기간 격리해야 한다. 그런데 당시 미국 정부는 용감한 결정을 내렸다. 이 아픈 군인들을 유럽의 전장으로 보낸 것이다. 열흘이면 건너 가는 대서양 바다였지만 이 수송선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 독감 바이러스가 탑승해 버렸다. 이후 이 독감 바이러스는 무럭무럭 자라 수송선을 점령하고 유럽에 도착해서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끝없는 소모전과 참호전에 지쳐서 이제는 집에 돌아가고픈 불쌍한 군인들을 감염시켰다. 진영을 가리지 않고서.
전쟁터에서는 군인이 죽지만 독감이 퍼지면 군인만 죽지 않는다. 어느덧 전선과는 상관없는 지역까지 독감은 퍼져나갔고 전 세계에서 독감 환자가 보고되었다. 이 독감은 그전까지 경험했던 계절성 독감과는 차원이 다른 질병이었다. 일반적인 독감의 치사율이 0.5% 내외인데 이 독감의 치사율은 2퍼센트를 상회했다. 그나마도 4개월 만에 돌연변이가 나타나 6퍼센트로 올라갔다. 지금은 엔데믹을 향해가고 있는 코로나19의 치사율이 1% 내외라는 것을 감안하면 숫자가 이렇게 무서울 수도 있구나 싶은 정도의 값이다.
그런데 당시는 어쨌든 전쟁 중이었다. 어떻게든 젊은이들을 모아 전선으로 보내야 이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힘들게 보낸 젊은이들이 정작 싸우지도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나가는 현실은 어떻게든 비밀로 해야 했다. 이미 전 세계적인 질병이 되었지만 어쨌든 언론에서 발표를 하느냐는 또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래서 당시 참전하고 있던 많은 나라에서는 이 현실을 철저히 함구했고, 전쟁에 참가하지 않던 나라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보도하였다. 이렇게 자유롭게 보도하던 나라 중 스페인이 있었고, 그곳에서는 국왕까지 발병한 이 질환을 비교적 심각하게 보도했기에 스페인 독감이란 이름이 붙었다. 억울할만 하다.
얼마나 죽은 것일까? 문헌마다 조금 다르지만 당시 미군 중 스페인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를 대략 4만 명 정도로 추산한다. 감염자는 백만 명 정도로 추산하기도 한다. 참고로 당시 참전했던 미군 숫자는 4백만 명 정도이고 전투로 인한 사망자는 6만 명 가량이다. 여러모로 스페인 독감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스페인 독감은 병사들 외에 일반인도 죽인다. 지금 추산하고 있는 스페인 독감 사망자는 대략 2천만 명 내외.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 약 천만 명의 두 배 정도 되는 숫자다. 이 전쟁을 멀리서 지켜보던 우리나라도 14만 명 정도 사망했다. 코로나19의 사망자와 비교해도 터무니없는 수치지만 별다른 방법도 없던 이 독감을 우리나라에서는 무오년 독감이라 불렀다. 일제강점기 시절 그렇지 않아도 힘든 일이 많았던 선조들이건만, 야속하게도 역병은 우리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 |
<필자소개>
백승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의약화학을 강의·연구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약의 역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분자 조각자들’ 등이 있다.
미국의 참전과 스페인 독감의 창궐
전염병이 어떻게 창궐했는가를 역으로 추적하기는 무척이나 어렵다. 지금도 코로나19의 기원이 어느 지역인지, 어떤 동물인지에 대해서 과학자들 뿐 아니라 정치가들까지도 논쟁을 벌이고 있다. 널리 창궐한 질병일수록 시작을 찾기는 힘든 법이다.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바로 스페인 독감이다. 지금도 어려운 역학조사가 당시라고 쉬울 리 있었겠는가. 최초의 환자를 찾는 일은 그때도 어려웠다. 더군다나 주기적으로 발병하는 계절성 독감과 섞여서 첫 환자, 페이션트 제로를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여러 문헌에서 최초의 환자를 제시하고 있지만 종합적인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래도 스페인 독감이 폭발적으로 창궐하게 된 계기는 대체적으로 동의하곤 한다. 바로 미국의 신병훈련소다. 제1차 세계대전이 길어지고 독일이 미국을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미국도 자국 군대를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대서양 너머까지 확대된 이 전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당연히 군인이다. 예나 지금이나, 기술이 아무리 좋아져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그리고 이 사람이 숙련된 군인일수록 좋다.
미국의 신병훈련소는 입대자들로 가득 찼다. 이 신병을 잘 훈련시켜 대서양 너머 프랑스와 독일이 대치하고 있는 전장에 보내는 것이 이 훈련소의 역할이다. 그런데 훈련소에서 독감이 창궐한 것이다. 풋내기 병사들이 기침을 헤대며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3일이 채 되기 전에 열이 40도까지 오르고 폐렴 합병증이 발생했다. 일주일 만에 500명 넘는 감염자가 나와서 신병 훈련소는 어느덧 환자 진료소로 기능해야 할 정도였다.
전국적으로 독감이 퍼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의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마스크 쓰고 손 씻고 일정 기간 격리해야 한다. 그런데 당시 미국 정부는 용감한 결정을 내렸다. 이 아픈 군인들을 유럽의 전장으로 보낸 것이다. 열흘이면 건너 가는 대서양 바다였지만 이 수송선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 독감 바이러스가 탑승해 버렸다. 이후 이 독감 바이러스는 무럭무럭 자라 수송선을 점령하고 유럽에 도착해서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끝없는 소모전과 참호전에 지쳐서 이제는 집에 돌아가고픈 불쌍한 군인들을 감염시켰다. 진영을 가리지 않고서.
전쟁터에서는 군인이 죽지만 독감이 퍼지면 군인만 죽지 않는다. 어느덧 전선과는 상관없는 지역까지 독감은 퍼져나갔고 전 세계에서 독감 환자가 보고되었다. 이 독감은 그전까지 경험했던 계절성 독감과는 차원이 다른 질병이었다. 일반적인 독감의 치사율이 0.5% 내외인데 이 독감의 치사율은 2퍼센트를 상회했다. 그나마도 4개월 만에 돌연변이가 나타나 6퍼센트로 올라갔다. 지금은 엔데믹을 향해가고 있는 코로나19의 치사율이 1% 내외라는 것을 감안하면 숫자가 이렇게 무서울 수도 있구나 싶은 정도의 값이다.
그런데 당시는 어쨌든 전쟁 중이었다. 어떻게든 젊은이들을 모아 전선으로 보내야 이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힘들게 보낸 젊은이들이 정작 싸우지도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나가는 현실은 어떻게든 비밀로 해야 했다. 이미 전 세계적인 질병이 되었지만 어쨌든 언론에서 발표를 하느냐는 또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래서 당시 참전하고 있던 많은 나라에서는 이 현실을 철저히 함구했고, 전쟁에 참가하지 않던 나라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보도하였다. 이렇게 자유롭게 보도하던 나라 중 스페인이 있었고, 그곳에서는 국왕까지 발병한 이 질환을 비교적 심각하게 보도했기에 스페인 독감이란 이름이 붙었다. 억울할만 하다.
얼마나 죽은 것일까? 문헌마다 조금 다르지만 당시 미군 중 스페인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를 대략 4만 명 정도로 추산한다. 감염자는 백만 명 정도로 추산하기도 한다. 참고로 당시 참전했던 미군 숫자는 4백만 명 정도이고 전투로 인한 사망자는 6만 명 가량이다. 여러모로 스페인 독감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스페인 독감은 병사들 외에 일반인도 죽인다. 지금 추산하고 있는 스페인 독감 사망자는 대략 2천만 명 내외.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 약 천만 명의 두 배 정도 되는 숫자다. 이 전쟁을 멀리서 지켜보던 우리나라도 14만 명 정도 사망했다. 코로나19의 사망자와 비교해도 터무니없는 수치지만 별다른 방법도 없던 이 독감을 우리나라에서는 무오년 독감이라 불렀다. 일제강점기 시절 그렇지 않아도 힘든 일이 많았던 선조들이건만, 야속하게도 역병은 우리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 |
<필자소개>
백승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의약화학을 강의·연구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약의 역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분자 조각자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