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백승만교수의 '전쟁과 약' 이야기
<1> 페스트와 생화학무기
이종운
입력 2023-01-12 10:07 수정 최종수정 2023-01-2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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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백승만교수(경상대 약대)는 요즘 매우 핫 한 작가이다.  지난해 가을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를 출간한 이후 대중적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앞서 백 교수가 대학에서 강의한 '전쟁과 질병'을 주제로 한 교양강좌는 매학기 1분내 수강신청이 마감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궁금했다.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는 이러한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또 전쟁으로 인해 질병이 발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약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그 반대로 약이 전쟁과 질병을 부르기도 한 인류의 역사를 다룬 책으로 사람들이 그동안 몰랐던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고 쉽게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백승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의약화학을 강의·연구하고 있다.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으며 약의 역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가 있다.
백 교수의 전쟁과 질병, 그리고 약에 대한 이야기 <백승만 교수의 '전쟁과 약' 이야기>를 월 2회 약업신문을 통해 소개한다. <편집자>

페스트와 생화학무기
코로나19의 대창궐을 통해 6백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오고 전 세계가 멈추는 것을 목격했지만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14세기에 있었던 흑사병으로 유럽에서만 3천만~5천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흑사병은 원래 페스트(pest 또는 plague)로 불러야 맞고, 고대시절부터 여러 차례 인류를 학살했던 질병이지만 1347년부터 이어진 대유행은 유럽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래서 이 당시의 페스트를 흑사병으로 보통 부른다.

1343년 몽골군은 아시아를 제패하고 유럽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몽골 기마대가 모든 것을 초토화시키고 지나간다는 소문에 전 유럽은 벌벌 떨었고 항상 다투기만 하던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힘을 합쳐 몽골군에 대항하기로 했다. 유럽의 연합군이 모인 지역은 흑해 연안에 위치한 카파(Caffa)성. 우크라이나 영토였지만 2014년 러시아가 합병한 크림반도 지역이다. 유럽으로서는 가장 동쪽에 위치한 이 곳이 뚫린다면 몽골 기마대의 거침없는 돌격을 온 몸으로 느껴야 할 것이 분명했다.

몽골군은 명불허전이었다. 기마대가 공성전에 약하다는 상식을 깨부수기라도 하듯이 다양한 방법으로 성을 공략해 왔다. 하지만 바닷가에 위치한 천혜의 요새 카파성도 전략적 거점으로서 방어에 최적화된 곳이었다. 결사항전의 의지로 싸우는 연합군의 방어 속에 두 진영의 대치상태는 3년 간 이어졌다. 그리고 이 처절한 전투의 현장에 또 다른 세력이 등장했다. 페스트균(Yersinia pestis)이었다.

페스트균은 발이 없다. 그러나 쥐벼룩이라는 숙주에 들어가서는 옮겨갈 수 있다. 그래도 쥐벼룩이 가봐야 얼마나 가겠는가. 벼룩이 뛰어 봤자다. 하지만 쥐벼룩이 쥐에 올라타면 이야기가 다르다. 페스트균은 쥐의 몸속에 머물다가 기회를 봐서 사람 몸으로 갈아탄다. 더 멀리 이동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단순히 이동하는 것으로 끝날 리는 없다. 거대한 숙주에 들어온 페스트균은 사람의 몸속에서 번식하며 서서히 본색을 드러낸다. 피로를 유발하고 열이 나는 것까지는 다른 질병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출혈성 반점이 생기고 조직이 검은색을 띄며 괴사하기 시작하면 페스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죽는다.

3년간의 공성전 후 몽골군은 물러났다. 유럽군도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때 페스트균도 함께 갔다. 1347년 전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의 시작이다. 이후 페스트균은 사람의 이동경로를 그대로 따라다니며 전 유럽 인구의 1/3을 학살하며 악명을 떨쳤다. 당시 아시아의 피해도 막심했다고 한다. 어쩌면 이 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페스트균인지도 모른다.

이후 페스트균의 위세는 높아져만 갔다. 17세기의 런던 페스트나 18세기의 마르세유 대역병처럼 국지적으로 한 지역을 황폐화시킨 적도 있고, 19세기처럼 범유행병이 되어 전 세계를 강타한 적도 있다. 특히 19세기 홍콩을 기점으로 유행한 페스트는 50여 년간 지속됐는데 이후 1894년 페스트균을 찾아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람들이라고 페스트균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페스트균을 전쟁무기로 사용한 것은 아이러니다. 1940년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상하이 인근에 일본군 비행기 한 대가 나타났다. 단 한 대로 작전이 이뤄질 리는 없었건만 그래도 그 정체불명의 비행기는 꿋꿋이 저공비행하며 무언가를 뿌리고 갔다. 마루타와 인체실험으로 악명 높은 관동군 731부대가 페스트균을 살포한 것이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는 3일 뒤 페스트로 인한 사망자가 나왔다. 한 달 후에는 사망자가 112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일본군의 예상치보다는 훨씬 낮은 수치였다. 일본군은 시뮬레이션을 거쳐서 1,450명은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고, 이후 이 전략무기를 광범위하게 살포해 전쟁의 주도권을 쥐고자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정작 첫 시험대라고 할 수 있는 작전에서 원하는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항생제가 상용화되기 전 페스트의 피해를 최소화한 비결은 결국 적극적인 봉쇄와 방역. 발병자가 나온 지역을 중심으로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균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았다. 이는 20세기 초까지 페스트로 고생했던 경험이 살아 있었기에 가능한 대처였다. 그리고 전쟁을 겪고 있던 극단적인 시기였기에 또 적용가능했던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페스트라고 하면 과거의 질병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항생제가 개발되어 페스트를 치료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예전만큼 전 세계적으로 창궐하는 경우도 없다. 하지만 국지적으로는 여전히 페스트가 발생하고 있고 어떤 방식으로 돌연변이를 일으켜서 전문가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지 모른다. 마치 보고된 지 수십 년 지난 코로나바이러스가 별안간 우리에게 치명적으로 변했듯이 말이다.

그리고 무기로 사용할 경우는 더 위험하다. 페스트균은 지금도 쉽게 확보할 수 있고 연구가 많이 진행되어 있기에 더욱 치명적인 형태로 변화를 줄 수도 있다. 이미 1970년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인구 500만 명의 대도시에 50킬로그램의 페스트균을 살포할 경우 3만 6천 명이 사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살상력만큼은 끝내주는 균이 페스트균이다. 또한 생물학테러에 사용하려면 해독제도 필요한데, 페스트는 어쨌든 균이므로 항생제를 이용해 해독제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여러모로 사용할 경우 위험한 무기가 될 여지가 다분하다. 그래서 지금도 미국에서는 페스트균을 A급 생물테러감염병으로 분류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단 한 명의 발병 사례도 없건만 방비태세는 철저하게 준비하는 이유가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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