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P-1 유사체와 피임약
“약사님, Y에게 쓸 수 있는 피임약을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Y의 일차의료제공자가 나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Y는 내가 약 3주전에 비만치료에 대한 일차의료제공자의 협진의뢰로 만난 환자다. 19세의 여성환자 (내가 처음으로 협진의뢰를 받은 20대 미만의 환자였다)인 Y는 첫 방문때 어머니와 함께 왔다. 딸이 어렸을 때부터 우울증, 섭식장애 (eating disorder) 등 여러 질환을 앓아와서 어머니는 근심어린 표정이었지만 Y는 밝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첫 방문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첫 방문의 목적은 비만치료제를 바꾸는 것이었다. Y는 우울증과 섭식장애 등으로 인해 체질량지수 (body mass index)가 36으로 비만군에 속하였다. 그래서, 이를 치료하고자 일차의료제공자는 위고비 (Weagovy; 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 semaglutide)라는 약을 처방했다. 그런데, 이 약은 너무 인기가 많아서 약국에 재고가 남아 있지 않았다.
위고비의 대용으로 쓸 수 있는 약으로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삭센다 (Saxenda; 성분명: 리라글루티드, liraglutide)이고 다른 하나는 젭바운드 (Zepbound; 성분명: 터제파다이드, tirzepatide)이다. 이 중 젭바운드가 체중 감소 효과가 더 뛰어나기 때문에 난 젭바운드를 처방했다.
그런데, Y가 가진 보험은 비만치료제 중에서 위고비만을 급여품목으로 지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Y의 보험사에게 사전승인 (prior authorization)을 요청해야 했다. 즉, 현재 위고비를 약국에서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젭바운드를 쓸 수 밖에 없는 사정을 서면으로 작성해서 제출해야 했다. 다행히, Y의 보험은 내 요청을 받아들여 Y는 젭바운드를 3주전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피임약에 대한 일차의료제공자의 질문에 대해서 난 일단 환자에게 좀 더 정보를 얻은 다음 답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일차의료제공자님, Y가 다음 주에 저와 재진 약속이 있습니다. 그 때, 제가 만나보고 알려드려도 될까요?”
1주 뒤 찾아온 Y는 체중이 벌써 2 kg 줄었다고 알려주었다. 젭바운드를 시작한 다음 처음에는 약간 메슥거렸지만 지금은 괜찮아졌다고 한다. 무엇보다 식욕이 줄어들고 식사를 시작한 뒤 곧 포만감을 느껴 음식의 섭취량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약으로 바라던 효과를 얻게 되어 Y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런데, 약사님. 젭바운드를 시작한 다음, 생리를 시작했어요. 그전에는 피임약을 복용하고 있어서 생리가 없었는데…”
터제파타이드, 세마글루타이드, 리라글루타이드 등은 모두 GLP-1 유사체라 불린다 (터제파타이드는 GIP 유사체이기도 하다). GLP-1 유사체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체중과 혈당을 떨어뜨리는 데 이 중 하나가 위장관의 운동속도를 느리게 만드는 것이다. 위장관의 운동속도가 느려지면 음식의 흡수가 지연되어 평소보다 적은 양의 영양분이 흡수된다. 이 영양분에는 혈당을 높이는 탄수화물도 포함되어 있으니 혈당이 떨어진다. 또, 평소보다 적은 양의 영양분이 흡수되니 살도 빠지게 된다. 뿐만 아니다. 위장관 운동속도가 느려지면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 평소보다 적은 양의 음식을 먹게 된다. 적은 양의 음식을 섭취하게 되니 혈당이 낮아지고 살도 빠지게 된다. 이처럼 GLP-1 유사체에 의한 위장관 운동속도의 지연효과는 영양분의 흡수를 줄이고 음식의 섭취량을 줄여 혈당과 체중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런데, 위장관 운동속도가 느려지면 영양분의 흡수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다른 경구용 약의 흡수도 줄어들 수 있다. 특히, 피임약은 흡수가 줄어드면 피임이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FDA는 터제파타이드를 시작하거나 용량을 바꿀 때 비경구용 피임약을 사용하든지 콘돔같은 방법을 함께 병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실제로, 연구에 의하면 터제파타이드는 경구용 피임약의 흡수정도를 20% 감소시켰다. 그런데, 다른 GLP-1 유사체들, 예를 들면, 세마글루타이드, 리라글루타이드, 둘라굴루타이드는 경구용 피임약의 흡수정도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GLP-1 유사체의 종류에 따라 경구용 피임약의 흡수 정도가 달라지는 이유는 현재 뚜렷하지 않다.
중요한 점은 경구용 피임약을 복용하고 있는 분들이 터제파타이드를 비만치료제 (상품명:젭바운드)나 당뇨병 치료제 (상품명: 마운자로)로 사용하는 경우, 다른 종류의 피임약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다른 GLP-1 유사체를 사용하는 경우, 경구용 피임약을 사용해도 괜찮다.
“젭바운드는 위장관의 운동속도를 느리게 하기 때문에 경구용 피임약의 흡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리가 다시 시작된 것이고요.”
“저는 생리를 하고 싶지 않아 피임약이 필요해요. 제가 찾아보았는데 데포 프로베라라는 주사 피임약이 있던데요. 괜찮을까요?”
주사용 피임약인 데포 프로베라 (Depot Provera: 성분명, medroxyprogesterone)은 3개월에 한 번씩 근육주사한다.
“네, 데포 프로베라는 젭바운드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위장관으로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피부를 통해 흡수되니까요. 일차의료제공자에게 데포 프로베라 처방을 내 달라고 요청하겠습니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GLP-1 유사체와 피임약
“약사님, Y에게 쓸 수 있는 피임약을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Y의 일차의료제공자가 나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Y는 내가 약 3주전에 비만치료에 대한 일차의료제공자의 협진의뢰로 만난 환자다. 19세의 여성환자 (내가 처음으로 협진의뢰를 받은 20대 미만의 환자였다)인 Y는 첫 방문때 어머니와 함께 왔다. 딸이 어렸을 때부터 우울증, 섭식장애 (eating disorder) 등 여러 질환을 앓아와서 어머니는 근심어린 표정이었지만 Y는 밝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첫 방문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첫 방문의 목적은 비만치료제를 바꾸는 것이었다. Y는 우울증과 섭식장애 등으로 인해 체질량지수 (body mass index)가 36으로 비만군에 속하였다. 그래서, 이를 치료하고자 일차의료제공자는 위고비 (Weagovy; 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 semaglutide)라는 약을 처방했다. 그런데, 이 약은 너무 인기가 많아서 약국에 재고가 남아 있지 않았다.
위고비의 대용으로 쓸 수 있는 약으로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삭센다 (Saxenda; 성분명: 리라글루티드, liraglutide)이고 다른 하나는 젭바운드 (Zepbound; 성분명: 터제파다이드, tirzepatide)이다. 이 중 젭바운드가 체중 감소 효과가 더 뛰어나기 때문에 난 젭바운드를 처방했다.
그런데, Y가 가진 보험은 비만치료제 중에서 위고비만을 급여품목으로 지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Y의 보험사에게 사전승인 (prior authorization)을 요청해야 했다. 즉, 현재 위고비를 약국에서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젭바운드를 쓸 수 밖에 없는 사정을 서면으로 작성해서 제출해야 했다. 다행히, Y의 보험은 내 요청을 받아들여 Y는 젭바운드를 3주전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피임약에 대한 일차의료제공자의 질문에 대해서 난 일단 환자에게 좀 더 정보를 얻은 다음 답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일차의료제공자님, Y가 다음 주에 저와 재진 약속이 있습니다. 그 때, 제가 만나보고 알려드려도 될까요?”
1주 뒤 찾아온 Y는 체중이 벌써 2 kg 줄었다고 알려주었다. 젭바운드를 시작한 다음 처음에는 약간 메슥거렸지만 지금은 괜찮아졌다고 한다. 무엇보다 식욕이 줄어들고 식사를 시작한 뒤 곧 포만감을 느껴 음식의 섭취량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약으로 바라던 효과를 얻게 되어 Y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런데, 약사님. 젭바운드를 시작한 다음, 생리를 시작했어요. 그전에는 피임약을 복용하고 있어서 생리가 없었는데…”
터제파타이드, 세마글루타이드, 리라글루타이드 등은 모두 GLP-1 유사체라 불린다 (터제파타이드는 GIP 유사체이기도 하다). GLP-1 유사체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체중과 혈당을 떨어뜨리는 데 이 중 하나가 위장관의 운동속도를 느리게 만드는 것이다. 위장관의 운동속도가 느려지면 음식의 흡수가 지연되어 평소보다 적은 양의 영양분이 흡수된다. 이 영양분에는 혈당을 높이는 탄수화물도 포함되어 있으니 혈당이 떨어진다. 또, 평소보다 적은 양의 영양분이 흡수되니 살도 빠지게 된다. 뿐만 아니다. 위장관 운동속도가 느려지면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 평소보다 적은 양의 음식을 먹게 된다. 적은 양의 음식을 섭취하게 되니 혈당이 낮아지고 살도 빠지게 된다. 이처럼 GLP-1 유사체에 의한 위장관 운동속도의 지연효과는 영양분의 흡수를 줄이고 음식의 섭취량을 줄여 혈당과 체중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런데, 위장관 운동속도가 느려지면 영양분의 흡수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다른 경구용 약의 흡수도 줄어들 수 있다. 특히, 피임약은 흡수가 줄어드면 피임이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FDA는 터제파타이드를 시작하거나 용량을 바꿀 때 비경구용 피임약을 사용하든지 콘돔같은 방법을 함께 병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실제로, 연구에 의하면 터제파타이드는 경구용 피임약의 흡수정도를 20% 감소시켰다. 그런데, 다른 GLP-1 유사체들, 예를 들면, 세마글루타이드, 리라글루타이드, 둘라굴루타이드는 경구용 피임약의 흡수정도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GLP-1 유사체의 종류에 따라 경구용 피임약의 흡수 정도가 달라지는 이유는 현재 뚜렷하지 않다.
중요한 점은 경구용 피임약을 복용하고 있는 분들이 터제파타이드를 비만치료제 (상품명:젭바운드)나 당뇨병 치료제 (상품명: 마운자로)로 사용하는 경우, 다른 종류의 피임약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다른 GLP-1 유사체를 사용하는 경우, 경구용 피임약을 사용해도 괜찮다.
“젭바운드는 위장관의 운동속도를 느리게 하기 때문에 경구용 피임약의 흡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리가 다시 시작된 것이고요.”
“저는 생리를 하고 싶지 않아 피임약이 필요해요. 제가 찾아보았는데 데포 프로베라라는 주사 피임약이 있던데요. 괜찮을까요?”
주사용 피임약인 데포 프로베라 (Depot Provera: 성분명, medroxyprogesterone)은 3개월에 한 번씩 근육주사한다.
“네, 데포 프로베라는 젭바운드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위장관으로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피부를 통해 흡수되니까요. 일차의료제공자에게 데포 프로베라 처방을 내 달라고 요청하겠습니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