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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규 교수의 'From San Francisco'
<123> 전공의 파업과 전문직업성 (Professionalism)
신재규
입력 2024-07-23 09:50 수정 최종수정 2024-07-2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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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파업과 전문직업성 (Professionalism)

다음에 소개되는 내용은 필자가 2024 4 우리나라의  약학대학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내용  바탕으로 재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학생 여러분, 다음은 우리나라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된 Professionalism 에 대해서 입니다. Professionalism은 우리말로 전문직업성으로 번역되는데, 건강관련 전문직종 에 따라 약사 직업전문성, 의사 전문직업성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Professionalism은 여러 건강관련 전문직종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개념이므로 제 강의에서는 직종을 빼고 그냥 전문직업성이라는 용어로 사용하겠습니다.
전문직업성이란 무엇일까요? 미국에서 소화기내과 전문의, 안과 전문의 등의 전문의 인증을 주관하는 미국 전문의 상임위원회(American Board of Medical Specialties)는 전문직업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A belief system that serves as both a moral compass and operational framework for the organization and delivery of medical care.”

이를 번역해 보도록 하죠. 일단, 전문직업성은 신념의 체계(belief system)입니다. 즉, 모든 건강관련 전문직업인들에게 요구되는 신념에 관한 것입니다. 이 신념은 두 가지 역할을 합니다(serves as both). 

첫째는 도덕적 나침반(moral compass) 역할입니다. 우리가 건강관련 전문직업인으로 일을 하면서 여러가지 도덕적인 문제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익과 환자의 이익이 상충하는 경우도 이에 속합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전문직업성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지를 알려주기에 도덕적 나침반이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 역할은 의료(medical care)를 조성하고 제공(organization and delivery)하는 것에 관련된 운영의 틀(operational framework)입니다. 그 이유는 아래 설명하겠지만, 환자 최우선, 환자 자율성, 사회 정의라는 전문직업성의 세가지 원칙이 의료를 조성하고 제공할 때 이를 운영하는 기본틀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문직업성은 우리가 건강관련 전문직업인으로서 어떤 선택과 행위를 해야 할 때 방향과 틀을 정해 주는 것입니다.
미국 전문의 상임위원회는 전문직업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부연하고 있습니다.

“Professionalism is rooted in values that prioritize patient well-being and instill public confidence.”

즉, 전문직업성은 환자의 안녕을 최우선으로 하고 대중에게 신뢰를 주는 가치에 기반합니다. 다시 말하면, 건강관련 전문직업인으로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안녕과 대중으로부터의 신뢰라는 것입니다. 환자의 건강을 유지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건강관련 전문직업인으로서 우리의 역할입니다. 따라서 환자가 없으면 우리의 직역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환자가 우리의 치료와 조언을 따르는 이유는 우리를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환자의 신뢰가 없으면 우리는 건강관련 전문직업인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의 안녕을 최우선으로 하고 대중에게 신뢰를 주는 것이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중요하기 때문에 미국 전문의 상임위원회는 전문직업성이 의학과 사회와의 계약에 근간이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Professionalism is the basis of medicine’s contract with society). 우리는 건강관련 전문직업인로서 사회와 일종의 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즉, 사회는 우리가 환자의 안녕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대중에게 신뢰를 주는 행위를 기대하고, 그 댓가로 우리에게 독점적으로 일할 있는 면허를 주고 일정한 수입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계약인 셈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전문직업성을 따르지 않으면 이 계약은 깨지게 되는, 다시 말하면, 사회가 우리에게 면허를 주고 일정한 수입을 보장할 근거가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가 전문직업성을 유지하기 위해 지켜야 하는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환자의 안녕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입니다(Principle of primacy of patient welfare).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 원칙은 우리의 이익과 환자의 이익이 상충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이 원칙은 우리가 직업적으로 하는 거의 모든 일에 적용됩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열심히 지식을 습득하고 기술을 연마해야 하는 이유는 학점을 잘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환자를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학교를 졸업하고 수련을 마친 다음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연마해야 하는 이유도 환자의 안녕 때문입니다. 또, 예를 들어 동료가 환자에게 성추행을 했을 때, 사법당국의 처벌과 별도로 우리가 조직 내부에서 따로 징계를 내려야 하는 것도 이 원칙을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원칙은 환자의 자율성입니다(Principle of patient autonomy). 이 원칙은 환자를 대할 때 우리가 지시하는 것을 따르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의사결정권이 있는 인격체로 존중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환자에게 “이 약을 드세요” 라고 지시할 수 있지만 복용을 결정하는 사람은 결국 환자 자신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역할은 우리가 가진 전문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환자에게 가장 이익이라고 판단되는 치료법을 권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환자의 결정을 돕기 위해 우리 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세번째 원칙은 사회 정의입니다(Principle of social justice). 건강관련 전문직업인으로서 우리 는 의료자원을 공정하게 분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특히 사회에서 소외받거나 가난한 분들은 그렇지 않은 분들에 비해 필요한 의료자원에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아파서 의사를 만나야 하면 직장인 학교에 이야기하고 잠시 병원에 다녀올 수 있습니다만, 제가 클리닉에서 돌보는 저소득층 환자들은 저처럼 쉽게 일터에서 빠져나와 병원에 오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임금에 손해를 보거나 심한 경우 일자리를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분들을 위해 우리의 지식과 기술이 적절히 쓰여 효과를 볼 수 있도록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와 같이 전문직업성의 세가지 원칙 - 환자 최우선의 원칙, 환자 자율성의 원칙, 사회 공정의 원칙은 우리가 건강관련 전문직역에 종사하는 한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 원칙들을 매사에 적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대중으로부터 신뢰에 금이 가고 우리 직역이 존립할 근거를 잃게 됩니다. 이처럼 전문직업성이 직역의 존립에 중요하기 때문에 미국의 건강관련 직업학교들, 즉, 약대, 의대, 치대 등은 전문직업성을 교육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희학교 약대는 학생들이 입학할 때부터 전문직업성을 강조하고 학생들 평가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미국 의료계의 예를 들면 전공의들(residents)은 수련과정 동안 여섯 개의 핵심역량(core competencies)에 대해 평가를 받는데 그 중 하나가 전문직업성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문직업성은 의사의 핵심역량 중 하나인 것입니 다. 그래서 미국의 전공의 수련 프로그램을 인증하는 졸업 후 의학교육을 위한 인증위원회(Accredi- tation Council for Graduate Medical Education; ACGME)는 전공의들이 수련기간 내내 자신의 이익보다 환자들의 필요를 우선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patient needs supercede a resident’s self-interest”). 만약 전공의가 이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그 전공의는 수련이 중단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수련 프로그램에 속한 다수의 전공의들이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가령, 업무 인수 인계도 제대로 해 놓지 않고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수련 프로그램을 갑자기 떠나는 행위 등이 벌어지면 그 수련 프로그램은 ACMGE로부터 인증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 수련프로그램은 전공의를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우리나라도 전문직업성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동안 이를 제대로 교육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령, 2007년 의학신문에 게재된 “의사의 전문직업성 -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라는 글은 지식 중심의 교육을 반성하고 전문인으로 갖추어야 할 태도와 행동양식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의학교육에서 전문직업의 투철한 윤리성을 가르치지 못한 점, 사회참여에 자발적이고 솔선수 범할 수 있는 리더십 교육을 하지 못한 점, 의사 환자 관계를 위한 적절한 의사소통 교육을 하지 못한 점 등은 공통적으로 지적이 되고 있다. 이는 결국 그 동안의 의학교육이 의학지식을 전달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의사가 전문인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태도와 행동양식에 대한 교육은 상대적으로 소홀 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미루어 볼 때 안타깝게도 전문직업성 교육은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학생 여러분, 전문직업성은 우리가 건강관련 전문직업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중요한 사항입니다. 이를 지키는 것은 여러분이 돌보게 될 환자를 위해서이지만 여러분이 선택한 직역의 존립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앞서 강조드렸듯이, 전문직업성을 잃으면 우리는 우리의 직역도 잃게 되니까요.
열심히 공부하셔서 전문직업성을 잘 갖춘 좋은 약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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