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신재규 교수의 'From San Francisco'
<116>학부모가 학생의 학사문제에 개입한 경우
신재규
입력 2023-12-29 10:11 수정 최종수정 2024-01-1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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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가 학생의 학사문제에 개입한 경우

“저희 어머니세요.”

A학생이 어머니를 모시고 내 사무실로 들어왔다.  학생들의 부모님을 졸업식에서 만나 축하한다는 인사를 드린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학생의 학업에 관련된 일로 부모님을 만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A 학생은 지난 달에 끝난 내 코스에서 온라인 퀴즈를 볼 때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이 밝혀졌다.  그래서, 학교의 제제로 F학점을 받게 되자 어머니가 찾아 온 것이다.

“제 아이가 관련된 퀴즈는 코스 전체의 열한 개 중 단 하나인데, 아이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F학점을 주는 것은 좀 지나친 것이 아닌가요?”
“학교의 규정상 F학점을 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저는 교직원으로서 학교의 규정을 따라야 하고요.”
“그 일에 한 두명이 아니라 전체 학급의 상당수가 관련되었다고 들었다고 들었는데요.  그러면, 학생들의 문제라기 보다는 퀴즈의 관리를 소홀히 한 학교의 책임이 아닌가요?”
“강의계획서를 통해서, 그리고 과목 첫날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학생들에게 시험 문제나 그 답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지 말라고 일러 두었습니다.”
“제 아이는 학위를 마치고 레지던트로 더 수련을 받으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그런데, 교수님도 잘 아시다시피, 레지던트 지원 경쟁이 치열하잖아요.  그래서, F학점을 받으면 치명적일 수 있어요.  그러니, 다른 방법이 없을 까요?  예를 들어, 그 퀴즈를 0점 처리한다든지요.”
“저희 학교는 이런 경우에 그동안 항상 F학점을 주어 왔습니다.  따라서, 과거에 이와 비슷한 이유로 F학점을 받았던 학생들에게 공정하기 위해 이번에도 F학점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니는 갑자기 목소리 톤을 바꾸어 말하기 시작했다.
“저희는 이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변호사를 쓸 수 밖에 없습니다.  저희는 벌써 변호사 한 분과 이 문제를 상의했는데, 학교의 조치에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 변호사는 제 다른 아이의 학교 당국의 조치에 대한 소송에서 승소한 바 있습니다.”

우리학교는 부정행위에 대한 판단과 징계를 공정하게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절차를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먼저 담당교수는 부정행위가 의심되는 학생과 만나 이를 확인하고 학교에 보고해야 한다.  다음 단계로, 교육 부학장이 그 학생을 따로 만나 보고서 내용을 확인한다.  그리고, 교육 부학장은 학생에게 부정행위의 내용과 학교의 징계결정을 담은 이메일을 보낸다.  학생은 이 이메일에 72시간내에 동의하는지 아닌지 답을 해야 한다.  만약 학생이 학교의 결정에 동의하면 그것으로 모든 과정이 종결된다.  반면, 학생이 동의하지 않으면 학교는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

청문회는 일종의 교내재판절차로, 학교의 징계 - F학점 -가 정당한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느냐만을 판정한다.  청문회에서 담당교수는 원고, 학생은 피고가 된다.  그리고,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재판진 – 패널이라고 부른다 – 이 최종 판결을 내린다.  재판진의 세 명은 학생이고 두 명은 교수이다.  그리고, 주심 재판관 - Chair라고 부른다 – 학생이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 이 학생들은 피고 학생과 다른 학년 소속이다.  담당교수와 학생은 각각 변호사를 대동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청문회에서는 변호사에게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담당교수와 피고 학생이 직접 질문하게 된다.

일반 재판처럼 청문회는 원고인 담당교수와 피고 학생의 모두 진술로 시작하고 각각 반대 심문한다 (cross examination).  이 때, 양측은 증인을 불러 올 수 있다.  이어 양측이 각각 최종 진술을 하면 청문회는 끝난다.  청문회 내용을 바탕으로 재판진은 투표를 통해 최종판결을 내리고 주심 재판관은 이 결과를 교육 부학장과 피고 학생에 알린다.

A학생은 어머니의 예고대로 학교의 징계 결정에 불복하였고 청문회 개최를 요구했다.  물론, 변호사를 고용하였다.  그런데, 부정행위를 저지른 다른 네 명의 학생들도 같은 변호사를 고용한 것으로 보아 (A학생과) 어머니가 이를 주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청문회 개최를 요구한 열 몇 명의 학생들 중 다섯 명만이 변호사를 고용했다).

청문회에서 이들의 방어논리는 자신들은 몰랐다는 것이었다.  즉, 내가 강의계획서와 오리엔테이션에서 시험이라고만 말했지 온라인 퀴즈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답을 보고 퀴즈를 푸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미리 알려주지 않은 학교와 담당교수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황당했다.  초등학교 학생들도 아는 것을 몰랐다고 주장하면 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인가.  청문회 결과 이들은 모두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판결을 받았다.  

이 학생들은 모두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인 약대에 입학한 20대 중반의 성인이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자신의 학업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물론, 부모님이 도움을 주면 해결이 좀 더 원활하게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학생이 새로운 학업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을 때 부모님이 심리적, 정신적으로 지원을 해주면 학생이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학생이 부정행위와 같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부모님이 개입하게 되면 오히려 해가 된다.  내가 부정행위 조사를 위해 학생들을 일일이 따로 만났을 때 그들은 모두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을 인정했고, 일부는 눈물을 흘리면서 나에게 용서를 구했었다.  그런데, 이들이 청문회에서는 모든 것이 학교와 담당교수 잘못 때문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즉, 부모님과 변호사가 개입하면서 이들의 태도가 돌변하여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아예 부정해 버린 것이다.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은 - 남을 속인 것은 - 사람간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지만 이에 대한 잘못과 책임을 인정하면 다시 신뢰를 쌓을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책임을 아예 부정하면 그 기회마저 완전히 잃고 말 것이다.  부모님은 F를 받게 될 자식의 미래가 걱정되어 비싼 변호사를 고용해서 개입하였겠지만 결과적으로 청문회 등으로 6개월의 시간을 허비하고 무엇보다 자식이 약사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이 있는지조차 의심받게 만들었다.  잘못과 책임을 인정한 자식을 부모로서 격려하고 지원해 주는 것이 자식의 미래를 진정으로 위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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