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신재규 교수의 'From San Francisco'
<106> 환자에게 현실적인 희망을 주어야
신재규
입력 2023-01-31 13:24 수정 최종수정 2023-01-3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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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환자 보는 것을 직접 주도해 보면 어떨까?”

미라는 내 클리닉에서 외래환자 실습 (ambulatory care)을 수련중인 졸업반 학생이다.  외래환자 실습을 포함한 우리학교의 모든 실습 과목은 6주 동안 진행되는 과정이다.  나는 학생의 실습을 지도할 때 실습 첫 주에는 학생으로 하여금 내가 환자 보는 것을 관찰하도록 한다.  그리고 두번째 주에는 역할을 바꿔 학생이 환자를 주도적으로 보고 나는 학생을 관찰하면서 필요하면 도와준다.  물론 학생이 내가 환자 보는 것을 좀 더 관찰하고 싶어하는 경우에는 두번째 주에도 역할을 바꾸지 않는다.  그런데, 미라처럼 내 클리닉에 실습을 오기전에 벌써 다른 실습과정 네 개를 마친 학생들은 보통 2주차부터 환자를 주도적으로 보도록 기회를 준다.

“네, 해 볼께요.”
“첫 환자인 Ms. Z가 좋을 것 같다.  환자 차트는 다 보고 왔지?”
“예.  50대인 이 환자는 일차의료제공자로부터 당뇨병 치료를 의뢰받아 오늘 처음으로 우리를 방문하는데요.  동반질병으로 고지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12월초에 측정한 헤모글로빈 A1c수치가 12.5%로, 목표치인 7%미만보다 꽤 높습니다.”
“그래, 메트포민 (metformin)과 글리피지드 (glipizide) 두 종류의 약을 지난 12월부터 처방받아 오고 있지.”
“그런데, 인슐린을 써야 하지 않을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가장 최근에 측정한 헤모글로빈 A1c 수치와 목표치가 너무 크게 차이가 나서 인슐린이 필요해.  아, 환자가 왔나 보다.”


간호사가 Ms. Z를 진료실로 데리고 들어 온다.  미라가 대화를 주도하기 시작한다.

“어서 오세요, Ms. Z님.  저는 UCSF 약대 학생인 미라이고 이 분은 제 프리셉터인 닥터 S입니다.  Ms. Z님의 의사선생님께서 저희에게 Ms. Z님의 당뇨병 조절을 도와달라고 부탁하셔서 오셨죠?”
“네.”
“혹시 집에서 복용하고 계시는 약을 모두 가져 오셨나요?”
“아니요.  제가 깜박 잊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당뇨병약을 복용하고 계신지 기억하시나요?”
“메트포민과 글리피지드 두 종류를 처방받았습니다. 그런데, 복용을 시작하자마자 설사를 하는 등 몸이 별로 안 좋아져서 현재 아무것도 복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부작용을 겪으신 것 같군요.  메트포민을 처음 시작할 때 많은 분들이 설사 등 위장관 부작용을 겪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몸이 적응해서 부작용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다시 복용해야 하나요?”
“네. 그런데, 혹시 최근에 의사선생님으로부터 헤모글로빈 Ac1 수치에 대해 상담받으셨는지요?”
“받은 적 없습니다.”
“의사선생님이 시간이 없으셨나 봅니다.  아시다시피 헤모글로빈 Ac1 수치는 최근 석달동안 혈당이 얼마나 잘 조절되었는지 알려줍니다.  이 수치가 높을수록 혈당이 잘 조절되지 않고 있는 것이구요.  Ms. Z님의 경우, 지난달 측정한 것이 가장 최근 수치인데 12.5%로 목표수치인 7%미만보다 5.5%나 더 높습니다.”
“그러면, 약을 다시 복용해야겠네요.”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혹시 인슐린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Ms. Z는 손사래를 치기 시작했다.
“저는 인슐린을 사용하기 싫습니다.  당뇨병 환자인 제 친척 중 한 분이 인슐린을 사용하다가 다리를 잘라야 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메트포민과 글리피지드를 다시 복용하셔서 헤모글로빈 A1c수치가 목표치에 도달하면 좋겠습니다.”


이 부분에서 나는 관찰을 멈추고 개입해야 했다.  왜냐하면, 두가지 문제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첫째, 잘못된 정보를 바로 잡지 않았다.  인슐린은 다리를 절단시키는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는다.  둘째, 환자에게 비현실적인 희망을 주고 있었다.  메트포민과 글리피지드만으로는 헤모글로빈A1c수치를 5.5%이상 낮추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환자가 인슐린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너무 단호하게 말하니까 아마도 미라는 환자의 뜻을 존중하기 위해 인슐린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았다.  또 더 이야기해 봐야 환자가 거부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Ms. Z가 인슐린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인슐린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건강정보에 대한 환자의 오해를 바로 잡아주는 것은 건강관련종사자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건강관련종사자는 환자에게 과학적 데이타에 바탕을 둔 정확한 건강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환자에게 비현실적인 희망을 주어서 결국에는 환자로부터 신뢰를 잃게 된다.  

임상연구에 따르면 메트포민과 글리피지드는 각각 헤모글로빈 A1c 수치를 1~1.5% 정도 낮춘다.  즉, 두 약을 최고 용량으로 쓰더라도 최대한으로 낮출 수 있는 헤모글로빈 A1c 수치는 3%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두 약으로 Ms. Z가 헤모글로빈 A1c 목표치에 도달할 가능성은 아주 낮다.  만약 우리의 말을 믿고 두 약만 복용하고 있다가 헤모글로빈 A1c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Ms. Z는 우리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치료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내기 위해서 환자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 희망은 현실적이어야 한다.  불편한 진실을 말하거나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불편한 진실 대신 듣기 좋게 바꾸어 전달하는 것이 듣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것으로 보일 지도 모른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초기 우리나라 정부는 방송을 통해 ‘이번 주말이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 고비’라는 말을 여러 번 사용했었다.  아마도 국민에게 팬데믹 종식의 희망을 주고, 방역에 대한 협조를 이끌어 내기 위한 선의에서 사용한 표현이었겠지만, 궁극적으로 정부의 방역정책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고 말았다.  건강관련종사자가 환자에게 질병과 치료방법에 대한 정보를 줄 때도 마찬가지이다.  환자가 듣기에 불편하더라도 과학적 데이타에 바탕을 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환자에게 신뢰를 얻고 궁극적으로 좋은 치료결과를 낳는 방법인 것이다.

나는 Ms. Z에게 친척이 다리를 절단하게 된 것은 인슐린이 아니라 아마도 당뇨병이 잘 조절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또, 메트포민과 글리피지드를 복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들만으로는 현실적으로 헤모글로빈 A1c 목표치에 도달하기 어렵기 때문에 인슐린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인슐린을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사용하도록 도와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Ms. Z는 잠시 주저했지만 곧 다음과 같이 말했다.

“두 분이 전문가이니까 두 분 말씀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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