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규 교수의 'From San Francisco'
<104> 집에서 측정환 혈압이 병원보다 낮은 이유
편집부
입력 2022-11-29 10:37
수정
“약사님, 이 약이 뭐예요?”
SN이 약병을 내게 주면서 묻는다. 약병 라벨을 보니 지난 주에 약국에서 교부받은 것으로 개봉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암로디핀 (amlodipine)이라는 고혈압 약입니다. 아직 복용을 시작하지 않으신가 보네요.”
“제 담당의사가 지난 주에 혈압을 재어 보라고 하셔서 클리닉에 잠깐 왔었어요. 고혈압 진단을 받은 환자들을 위해 간호사가 정기적으로 혈압을 측정하는 클리닉 말이예요. 그런데, 간호사가 혈압이 좀 높다면서 약국에 가서 약을 새로 받으라고 해서 받아 놓은 것이예요. 그런데, 무슨 약인지 잘 몰라서 그동안 복용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SN은 60대의 여성환자로 고혈압 치료를 위해 내 클리닉에 한 달전 처음으로 방문했었다. 당시, SN은 리시노프릴 (lisinopril)과 히드로클로로티아지드 (hydrochlorothiazide) 등 두 종류의 고혈압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릭닉에서 측정한 혈압은 142/93으로, 목표혈압수치인 130/80미만보다 높았다. 그런데, SN은 2주 뒤 자궁수술이 예정되어 있어서 매우 긴장한 상태였다. 마음이 긴장하게 되면 혈압도 올라가게 된다. 왜냐하면, 혈압을 상승시키는 교감신경이 흥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일 클리닉에서 측정한 혈압이 평소의 혈압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집에서 정기적으로 측정한 혈압 수치가 있으면 평소 혈압이 어떤 지 판단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SN은 혈압측정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클리닉에 비치하고 있던, 집에서 측정할 수 있는 혈압측정기와 혈압수치를 적는 표를 SN에게 주었다. 그리고, 하루에 두 번, 즉, 아침에 혈압약을 복용하기 전과 저녁 식사 전에 혈압을 측정하고 이를 적어 재진때 가지고 오라고 부탁했다. 또, SN에게 혈압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방법에 대해 설명도 해 주었다.
“SN님, 그동안 혈압을 집에서 측정하셨나요?”
“예. 혈압수치를 적은 표를 가져왔어요.”
자궁수술을 마친 후, 지난 2주 동안 SN이 집에서 측정한 수축기 혈압은 대부분 120대였으며 이완기 혈압도 70대가 주를 이루었다. 뿐만 아니라, 수축기 혈압이 110대인 적도 몇 번 있었다. 반면, 오늘 클리닉에서 측정한 혈압은 146/88로 높았다.
“SN님, 리시노프릴과 히드로클로로티아지드는 어떻게 복용하세요?”
“하루에 한 번씩 복용하고 있습니다.”
“지난 일주일동안 혹시 복용을 잊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언제 마지막으로 혈압약을 드셨나요?”
“오늘 아침에 복용했습니다.”
고혈압 약은 복용후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한 시간에서 두 시간쯤 걸린다. SN은 클리닉을 방문하기 3시간 전에 고혈압약을 복용했으므로 클리닉에서 혈압을 측정했을 때 약이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SN이 집에서 측정한 혈압은 클리닉에서 측정한 것보다 훨씬 낮다. 그러면, 클리닉에서 측정한 SN의 혈압은 왜 높은 것일까? 또, 클리닉에서 측정한 혈압이 높으니 SN은 혈압약을 하나 더 복용해야 할까?
집보다 병원에서 측정한 혈압이 높은 현상을 백의 현상 (white coat effect)라고 부른다. 그리고, 집보다 병원에서 측정한 혈압이 고혈압으로 판정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경우도 있는데 이를 백의 고혈압 (white coat hypertension)이라고 한다. 이 용어들에 백의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이유는 우리가 병원에서 만나는 의사와 간호사가 하얀 가운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과 UCSF 대학병원의 경우, 여러 이유로 의사와 간호사가 하얀 가운을 더 이상 입지 않는다).
집보다 병원에서 측정한 혈압이 높은 이유는 심리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원에 오면 긴장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혈압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 “ 오늘 측정할 혈압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혈압이 높아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병원에서 측정한 혈압은 평소의 혈압과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혈압은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면 오르기 시작해서 오후에 최고점에 올랐다가 밤에 잠자는 동안 가장 낮아지는 등 시간의 영향을 받는다. 뿐만 아니다. 혈압은 감정 상태, 통증 등의 신체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병원에서 한 번 측정한 혈압 수치는 이와 같이 시시각각 변하는 환자의 혈압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환자가 하루 두 번씩 집에서 측정한 혈압이 병원에서 측정한 혈압보다 환자의 평소 혈압에 더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환자가 집에서 하루에 여러 번 측정한 혈압 수치를 이용하는 것이 고혈압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이다.
“SN님, 지난주와 오늘 클리닉에서 측정한 혈압이 좀 높기는 합니다. 하지만, 집에서 매일 측정하신 혈압이 좋기 때문에 새로 받으신 혈압약인 암로디핀을 복용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기존에 복용하던 리시노프릴과 히드로클로로티아지드만 복용하면 되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잘 해 오신 것처럼 매일 하루 두 번씩 혈압을 측정해서 적어 오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달에 뵙겠습니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