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규 교수의 'From San Francisco'
<103> 짠음식을 많이 먹은 다음 물을 많이 마시면 ‘희석’되어 혈압을 낮출 수 있을까?
편집부
입력 2022-10-31 18:03
수정
짠음식을 많이 먹은 다음 물을 많이 마시면 ‘희석’되어 혈압을 낮출 수 있을까?
“내가 오늘 음식을 짜게 먹었어. 그런데 소금이 혈압을 올리잖아. 그래서 이를 희석해보려고 물을 평소보다 많이 마셨는데. 잘 한 거지?”
가깝게 지내던 한국인 어른께서 물어 보신다. 이 분은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의 병력을 가지고 계시다. 그래서, 혈압약으로 암로디핀 10 mg을 하루에 한 번, 당뇨병약인 메트포민 500 mg을 하루 두 번, 그리고 고지혈증 치료를 위해 아토바스타틴 20 mg을 하루 한 번 복용하고 계신 중이다.
“무슨 음식을 드셨어요?”
“오늘 오랜만에 한국 마트에 가서 청국장을 사와서 끓여 먹었어. 김치하고. 자네도 내가 청국장을 좋아하는 것을 잘 알잖아.”
“맛있었겠네요. 그런데, 혈압은 재어 보셨어요?”
“아니. 혈압계 쓰는 게 좀 귀찮아서. 대신에, 아까 말했듯이 물을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이 마셨어. 그러면, 희석되지 않을까해서…”
소금은 크게 세 가지의 방법으로 혈압을 높인다: 혈액의 양을 증가시키고, 혈관을 수축시키며, 혈관을 뻣뻣하게 만든다.
우리몸의 혈액은 혈관을 통해 이동한다. 그리고 이 혈액을 이동시키는 원동력은 심장이 제공한다. 즉, 심장이 수축할 때 만들어지는 압력이 혈액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심장에서 나간 혈액은 온 몸의 혈관을 통해 흐르다가 다시 심장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혈액은 폐쇄회로 (closed circuit)안에서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왜 혈액의 양이 혈압에 영향을 끼치는지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심장을 모터펌프, 혈관을 파이프라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이 모터펌프와 파이프로 이루어진 폐쇄회로안에 물(혈액)이 흐른다고 하자. 이때, 물의 양이 증가하면 모터펌프는 더 많은 압력을 가해야 물을 이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물의 양이 증가하면 파이프가 받는 압력이 증가한다. 만약 심장에서 나간 혈액이 다른 곳으로 빠져 나가서 대부분 심장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면, 즉 열린 회로인 경우, 혈액양이 늘어나도 혈관에 걸리는 압력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혈액은 심장과 혈관으로 이루어진 폐쇄회로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회로안을 흐르는 액체인 혈액의 부피가 증가하면 혈관이 받는 압력이 증가한다.
그러면, 소금은 어떻게 혈액의 양을 증가시킬까? 소금을 많이 섭취하면 혈액내 소금의 농도가 높아진다(정확하게는 삼투압이 높아지지만 이해의 편이를 위해 소금의 농도로 표현하기로 한다). 그런데, 혈액내 소금의 농도가 너무 높거나 낮으면 세포가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몸은 신장과 뇌를 통해 혈액내 소금의 농도를 정교하게 조절하는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즉, 신장은 오줌으로 배출되는 소금과 물의 양을, 뇌는 우리가 물을 마시게 하는 신호를 조절함으로써 혈액내 소금의 농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소금을 많이 섭취하면 신장은 오줌으로 배출되는 소금의 양을 증가시킨다. 뿐만 아니라 아래에서 설명하듯이 뇌의 도움을 받아 오줌으로 배출되는 물의 양을 줄인다. 그래서, 짠 음식을 많이 먹으면 오줌의 양이 줄어드는 것이다. 오줌으로 나가는 소금의 양은 늘리고 물의 양은 줄임으로써 신장은 혈액을 '희석'시켜 혈액내 소금의 농도를 낮춘다.
그런데, 소금을 많이 섭취하면 뇌는 갈증을 유발하여 물의 섭취를 늘린다. 그래서, 소금을 많이 섭취하면 물을 마시고 싶게 되는 것이다. 또, 뇌는 항이뇨호르몬 (antidiuretics hormone)도 분비한다. 이 항이뇨호르몬은 신장에 작용하여 물이 오줌을 통해 배출되는 것을 줄인다. 즉, 뇌는 물의 섭취를 늘리고 오줌으로 나가는 물의 양을 줄임으로써 혈액을 희석시켜 소금의 농도를 낮추는 것이다.
이처럼 신장과 뇌는, 소금의 섭취가 늘었을 때 궁극적으로 혈액내 물의 양을 증가시켜 소금의 농도를 낮춘다. 그런데, 혈액내 물의 양, 즉 혈액의 양이 증가했기 때문에 혈압은 높아진다.
또, 소금은 혈관을 직접 수축시킴으로써 혈압을 높인다. 혈압은 혈관이 넓을 때 (이완)보다 좁을 때 (수축) 더 높다. 마치 파이프가 좁을 때보다 넓을 때 압력이 덜 걸리는 것처럼. 우리몸은 필요할 때 혈관을 이완시키는 물질 (즉, 산화질소)을 만들어서 혈압을 조절한다. 그런데, 소금은 혈관을 이완시키는 물질이 만들어지는 것과 이 물질이 혈관을 이완시키는 것을 방해한다.
뿐만 아니라, 소금은 혈관을 뻣뻣하게 만든다. 심장이 혈관에 압력을 가할 때 혈관이 탄력성이 높으면 받는 압력을 완충시킬 수 있다. 하지만, 혈관이 뻣뻣하면 심장이 가한 압력을 그대로 받는다. 앞에서 예를 든 모터펌프와 파이프로 비유해 보자. 만약 파이프가 잘 늘어나는 고무로 만들어졌다면, 모터펌프가 압력을 가할 때 파이프는 압력을 덜 받을 것이다. 하지만, 파이프가 탄력성이 전혀 없는 쇠로 만들어졌다면 모터펌프가 가한 압력을 그대로 받을 것이다. 즉, 소금은 혈관을 쇠로 만든 파이프처럼 만들어 혈압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물을 더 마셔서 희석이 되더라도 혈압은 올라가는 거야?”
“네. 물을 더 마시면 신장은 오줌으로 배출해야 하는 물의 양을 크게 줄일 필요가 없어지죠. 그래서, 오줌으로 나가는 물의 양이 상대적으로 더 늘어납니다. 그런데, 물을 더 마시면 이것만 달라질 뿐 혈압은 여전히 올라갑니다. 왜냐하면, 혈관내 혈액의 양이 늘어난데다 혈관은 좁아지고 뻣뻣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
“안타깝지만 비법은 없습니다 - 말씀드린 바와 같이, 소금이 왜 혈압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시고, 소금 섭취의 양을 줄이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