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신재규 교수의 'From San Francisco'
<102> 일차의료제공자 제도: 우울증을 효율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컨트롤 타워
편집부
입력 2022-09-30 16:52 수정 최종수정 2022-09-3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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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차의료제공자 제도: 우울증을 효율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컨트롤 타워

집사님의 형수님이 첫번째 자살 시도를 했을 때 입원치료를 받았었다.  그런데 퇴원후에는 우울증에 대한 외래치료를 전혀 받지 못했다.  물론 본인이 치료를 완강히 거부했기 때문에 외래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도 있다.  하지만, 중증 우울증 환자가 퇴원 후 외래치료를 전혀 받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나라 의료제도가 우울증 환자를 제때에 적절하게 치료하는 데 있어 여러 문제점이 있다는 보여준다.  그 중 가장 큰 문제점은 환자돌봄에 대한 콘트롤 타워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 형수님이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했다면 어떤 돌봄을 받았을까?  자살시도와 같은 중증 우울증 환자의 입원치료를 담당했던 팀은 환자가 퇴원할 때 두 명의 외래 의사에게 진료예약을 해준다.  하나는 정신과 전문의이고 다른 하나는 환자의 일차의료제공자 (primary care provider)이다.  이 둘 중 환자의 일차의료제공자가 환자돌봄에 대한 콘트롤 타워 역할을 한다.  그래서, 미국의 대부분의 건강보험들은 가입자들이 반드시 일차의료제공자를 선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의 모든 환자들도 자신이 선택한 일차의료제공자를 가지고 있다.  

일차의료제공자는 일차의료 (primary care)를 제공하는 건강관련종사자이다.  미국에서 일차의료제공자 역할을 하는 건강관련종사자는 가정의학과 및 일반내과와 산부인과 의사, 전문간호사 (nurse practitioner), 의사보조사 (physician’s assistants)들이다.  그러면, 일차의료제공자는 어떻게 환자돌봄에 대한 콘트롤 타워 역할을 할까?

일차의료제공자는 크게 네 가지 일을 수행한다. 첫째, 일차의료제공자는 환자가 의료시스템을 접할 때 제일 먼저 만나는 의료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환자가 아프면 증상에 따라 동네에 있는 여러 의사들 중 하나를 만날 수 있지만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에서는, 응급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차의료제공자를 먼저 만나야 한다.  일차의료제공자는 우울증을 포함한 흔한 질병들을 진단, 치료할 수 있도록 수련받은 의료진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환자가 필요로 하는 의료서비스 (예를 들어, 우울증과 같은 흔한 질병의 진단과 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일차의료제공자는 환자의 건강을 일회적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돌본다.  이들은 환자를 아플때에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오랜기간동안 보기 때문에 환자들에 대해 잘 알고 협력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세째, 일차의료제공자는 치료뿐만 아니라 환자의 질병 예방과 건강 증진을 도모한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의 환자를 위해 건강검진 오더를 내고 예방접종도 주도한다.  

마지막으로, 일차의료 제공자는 다른 의료 제공자들과의 협진을 연결하고 조정한다.  이들은 환자가 전문의의 진단과 치료가 필요할 경우 전문의에게 진료의뢰를 요청한다.  그리고, 환자가 여러 의료제공자들의 돌봄이 필요한 경우 이들의 역할을 조정한다.  이처럼 일차의료제공자는 환자의 특정 질병만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건강문제를 종합적으로 돌보는 역할을 수행한다.

일차의료제공자가 환자돌봄에 대한 콘트롤 타워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에서 입원환자를 담당하는 팀은 환자가 퇴원한 후 2주내에 일차의료제공자를 만날 수 있도록 진료예약을 해 주는 것이다.  즉, 환자가 입원하는 동안 입원팀이 환자돌봄을 책임지지만, 외래에서는 일차의료제공자가 이 책임을 맡는 것이다.  따라서, 환자가 퇴원하더라도 우울증이라는 질병에 대한 치료가 일차의료제공자의 주도하에 계속 지속될 수 있다.

물론, 집사님의 형수처럼 돌봄을 아예 거부해 버리면 외래에서 치료가 지속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이런 경우 나는 일차의료제공자가 환자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것을 자주 본다.  예를 들어, 작년에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의 환자들 중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접종을 거부한 이들이 있었다.  이 때, 일차의료제공자는 자신의 환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거는 등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 이들의 접종율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우리나라처럼 환자의 일차의료제공자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경우 환자가 치료를 거부해 버렸을 때 이들에게 다가가 설득할 수 있는 의료진이 아무도 없는 것이다.  

일차의료제공자 제도는 환자가 사회적 편견으로 말미암아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는 것을 꺼릴 때에도 환자의 우울증 치료가 지속되도록 도와 줄 수 있다.  왜냐하면 일차의료제공자 자신이 정신과 전문의의 자문을 받으면서 직접 환자의 우울증을 치료하면 되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처럼 모든 환자들이 일차의료제공자를 가지고 있는 경우 모든 환자들이 일차의료제공자를 만나야 하므로 환자가 일차의료제공자를 만나는 것은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는 것처럼 특별한 사건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일차의료제공자가 우울증을 치료하게 되면 환자가 사회적 편견 때문에 우울증을 제때에 적절히 치료받지 못하는 사례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일차의료제공자가 없다는 것은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가장 큰 약점이다.  환자돌봄의 컨트롤 타워가 없기 때문에 특히 입원에서 퇴원처럼 환자돌봄의 책임을 담당하는 의료진이 바뀔 때 치료의 지속성이 떨어지기 쉽다.  그리고 이 약점은 그 형수님의 예처럼 환자들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물론 일차의료제공자 제도는 단기간 내에 확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차의료를 담당할 의료인들을 양성하고 의료서비스 제공체계를 바꾸는 등 자원과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차의료제공자의 부재로 인한 의료자원의 비효율적인 운영과 환자들에게 미칠 치명적인 결과들을 고려할 때 일차의료제공자 제도의 도입을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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