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신재규 교수의 'From San Francisco'
<92> 건강보험이 지불해 주는 약
편집부
입력 2021-12-01 08:37 수정 최종수정 2021-12-01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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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건강보험이 지불해 주는 약들 중 일부는 환자와 가입자보다는 공급자 중심으로 지불약이 결정된 것처럼 보인다. 특히, 미국의 보험이 지불해 주는 약과 비교할 때 그렇다.  물론, 이익창출이 목적인 사보험이 대부분인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정부가 건강보험을 운영하기 때문에 보험이 지불해 줄 약을 정하는 방법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의 재원은 보험가입자, 즉 국민이 낸 돈으로 마련된다.  따라서, 건강보험은 환자의 치료 혜택을 최대로 하면서 건강보험의 경제적 부담을 최소로 할 수 있는 약들을 지불해 주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건강보험이 지불해 주는 약들은 환자와 가입자 중심으로 선정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지불해 주는 약들의 일부가 환자와 가입자 중심이 아닌 공급자 중심으로 선정되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당뇨병 치료제로 쓰이는 DPP-4 (dipeptidyl peptidase-4) 억제제이다.  이 계열의 약들은2019년에 우리나라에서 5천억여원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을 정도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 4개의 DPP-4억제제가 사용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2021년 현재 아홉 개의 DPP-4억제제들이 쓰이고 있다.  

                표.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는 DPP-4 억제제 (2021년 현재)
             보험가는 약학정보원 (www.health.kr)에서 상품명의 최고 용량에 대한 가격임.

위와 같이 한 계열에 여러 약이 있는 경우, 미국의 보험은 이 약들에 대한 여러가지 사항을 서로 비교한 뒤 계열당 두 개 정도로 지불해 줄 약을 선택한다.  이를 위해 우선 임상시험에서 확인된 효과와 부작용을 비교한다.  예를 들어, 어떤 약이 다른 약에 비해 효과가 더 뛰어나고 부작용이 덜하다면 그 약은 우선적인 지불대상이 된다.  그런데, 위 아홉개의 약은, 지금까지의 임상시험 결과에 따르면, 효과와 부작용이 비슷하다: 이 약들은 혈당 감소의 지표로 널리 쓰이는 당화혈색소를 0.5-1%정도 낮춘다. 그리고, 이 약들을 당뇨병 환자에게 투여해서 서로 비교한 임상 시험에서 혈당 감소 정도와 부작용 발현율에 대한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처럼 효과와 부작용이 비슷한 경우라면 다른 여러 가지 사항,가령 복용 횟수, 독특하거나 심각한 부작용, 약물 상호 작용, 가격 등을 비교하여 지불할 약을 결정한다.  위 아홉 개의 약 중 일곱 개는 하루에 한 번 복용하는데 두 개는 하루에 두 번 복용해야 한다. 그런데, 하루에 한 번 복용하는 것이 두 번보다 훨씬 편리하고, 환자의 복약 순응도 (즉, 의사가 처방대로 복용하는 것)도 높다. 그렇다면, 하루에 두 번 복용해야 하는 아나글립틴이나 빌다글립틴을 보험이 지불해 줄만한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두 번 복용해야 하는 약이 한 번 복용하는 약보다 가격이 싸다면, 복용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약제비를 절약하고 싶은 환자를 위해 보험이 지불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나글립틴을 하루 복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738원 (즉, 두 번 복용해야 하므로 369원 곱하기 2)으로 하루 한 번 복용하는 에보글립틴의 737원보다 더 비싸다 (물론, 지불여부가 결정된 다음 보험가를 결정할 것이므로 만약 아나글립틴을 지불해 준다면 이 약을 하루에 복용하는데 드는 비용이 하루에 한 번 복용하는 약들보다 싸도록 보험가가 정해져야 할 것이다). 빌다글립틴의 경우, 약을 하루 복용하는데 드는 비용이 896원으로 시타글립틴 다음으로 비싼 약이다.  2017년에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빌다글립틴을 함유하는 약에 대해 600억원 정도를 지불해 주었다.

테네리글립틴은 DPP-4억제제 중 유일하게 심장 돌연사의 위험을 가지고 있다. 비록 이 부작용은 드물기는 하지만 다른 8개의 약은 이 심각한 부작용의 위험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보험이 테네리글립틴을 지불해 줄 필요가 있을까?  2019년 건강보험이 테네리글립틴를 함유하는 약에 지불한 돈은 300억원에 달한다.

삭사글립틴, 에보글립틴, 제미글립틴은 약물상호작용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약물상호작용이란 여러 개의 약을 동시에 사용할 경우 약효가 줄거나 부작용의 위험이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삭사글립틴, 에보글립틴, 제미글립틴은 간에서 CYP3A라는 효소에 의해 대사된다. 그래서, 이 효소의 작용을 증가시키거나 방해하는 약과 함께 쓰면 삭사글립틴, 에보글립틴, 제미글립틴의 효과가 줄거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6개의 DPP-4 억제제는 약물상호작용의 위험이 없다.  당뇨병 환자들은 고혈압, 고지혈증 등 다른 만성질환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 여러 가지 약을 함께 복용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약물상호작용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약물상호작용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약을 보험이 굳이 선택할 필요가 있을까?

과거에 일부 당뇨병 치료제들이 심근경색, 뇌경색 등의 심순환기 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이 관찰되어 미국의 FDA는 모든 새로운 당뇨병 치료제들이 반드시 임상시험을 통해 심순환기 질환에 대한 안전성을 검증받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당뇨병 치료제에 대한 보험 지불 여부를 결정할 때 심순환기 질환에 대한 안전성을 고려해야 한다.  위 아홉 개의 DPP-4억제제들 중 알로글립틴, 리나글립틴, 삭사글립틴, 시타글립틴을 제외한 나머지 5개의 DPP-4억제제들은 심순환기 질환에 대한 안전성을 임상시험을 통해 검증받지 못했다 (임상시험 결과, 알로글립틴, 리나글립틴, 삭사글립틴, 시타글립틴 모두 전반적으로  심순환기 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키지 않는 것이 확인되었다).  

반면, 미국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5개의 DPP-4억제제들은 이러한 임상시험이 수행되어 있지 않아서 이들이 심순환기 질환에 대해 안전한지 현재로써는 불명확하다.  만약 모든 DPP-4억제제가 심순환기 질환에 대한 안전성이 뚜렷하지 않다면 어떤 것이든 차별없이 사용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부는 심순환기 질환에 대한 안전성이 검증되어 있고 다른 것들은 안전성이 뚜렷하지 않다면 보험이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약을 지불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시타글립틴은 위에서 언급했던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지 않아서 지불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약은 하루 한 번 복용하면 되고 심장 돌연사를 일으키지 않는다. 또, 약물상호작용이 없고 심순환기 질환에 대한 안전성도 검증받았다.  그런데, 단 하나의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가격이다.  이 약의 오리지널 상품인 ‘자누비아’는 표에서 보듯이 하루 복용 비용이 910원으로 DPP-4 억제제 중 가장 비싸다.  그런데. 시타글립틴은 제네릭 약이 허가되어 사용된다. 제네릭 시타글립틴의 보험가는 제조사마다 다르지만 오리지널 약인 자누비아보다 싸고, 가장 싼 것은 오리지널보다 약 40% 낮은 541원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오리지널과 제네릭 약들 중 가장 싼 것을 선택해서 지불해 주는 것이 환자의 치료 혜택을 최대로 하면서 건강보험의 경제적 부담을 최소로 하는 방법이 아닐까? 

이상과 같이 DPP-4 억제제의 예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지불해 줄 약을 선정하는 데는 개선할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국민이 피땀흘려 번 돈으로 마련한 재원인 만큼 이를 좀 더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지불할 약을 선정해야겠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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