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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검은 것과 흰 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사이에 무수히 많은 색이 존재한다. 애매모호한 경우를 회색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그 회색도 진회색부터 옅은 회색까지 매우 다양하다. 수술을 진행하는 데에 “적당히” 해야 하는데, 그 “적당히”란 어떤 기준일까? 또한, 적당하다는 것은 만족한다는 것일까?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느낀 점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호주에 사는 젊은 여성의 사례를 살펴보자. 외국에 사니까 보는 눈이 다르고, 자연과 해변이 좋은 나라이기 때문에 비키니 착용과 선탠이 기본이다. 이 여성은 가슴 확대술을 원해서 세 친구와 함께 시술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유독 한 환자만은 매우 큰 보형물을 원했는데, 본인은 매우 만족했지만 옆의 두 친구는 과하게 크다고 느꼈다. 문제는 옳고 그름이 아니어서 더욱 복잡해진다.
미국이나 브라질 같은 경우는 체격에 따라 보형물도 커질 수 있는데(400~500cc), 이는 큰 것을 선호하는 개인적 혹은 사회적 선호도 때문으로 생각된다. 환자가 큰 것을 선호하는 경우에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어야 하고, 많은 상담과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얼마 전 수술한 이마내시경과 상안검 수술 환자의 사례를 살펴보자. 눈꺼풀이 많이 처진 60세 여성이 필자의 병원에 방문했다. 눈썹과 이마가 내려오고 상안검 피부도 늘어져 있어 눈이 삼각형 모양으로 보였다. 꽤 심한데도 지금까지 쌍꺼풀 없이 지낸 것은 그런 형태가 싫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동생들이 나서서 좀 크고 시원하게 하길 바란다고 했다. 상안검의 경우 쌍꺼풀을 크게 보이기 위해 6mm 정도로 일부 절제하였고, 이마내시경도 함께 시행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환자가 새로운 눈의 모습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동안 처진 눈은 자신의 아이콘이며 순한 모습으로 통했는데, 이제는 눈이 확 커지고 쌍꺼풀도 드러나니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람이 뭔가 확 달라지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정작 그것은 마음속의 갈망일 뿐, 현실로 이루어지면 두려운 경우가 많다.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소원이 이루어지면 정말 모두가 행복해질까?
미니 거상의 함정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주름이 생기거나 볼살이 처지면, 지난 세월을 보며 “언제 내가 이렇게 늙었나” 하는 회한이 스민다. 조금씩 지나가는 세월에도 얼굴의 나이는 어느새 덜컥 들어보이게 된다. 이때 큰 수술은 겁도 나고 자신이 없게 된다. 친구가 듣기 좋은 말로 “실로 조금만” “미니거상으로 티 안 나게” 등 환자를 편하게 해 주는 말들이 있다. 그러나 정작 실리프트나 미니거상을 하면 환자가 무척 실망할 수 있다. 사실은 마음에 겁이나서 “살짝”이라고 했지만, 훨씬 더 큰 결과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젊어지고 싶은 마음에 “조금”이라는 결과는 무척 실망스러울 수 있다. 환자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당겨보는 것은 “살짝”이지만, 수술로 할 때는 “엄청나게” 당겨야만 그런 효과가 난다. 이는 밖에서 힘으로 당겨보는 것과 얼굴의 조직을 실로 당기는 힘의 차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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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수술의 만족이란 어디에 있을까? 가슴의 경우 큰 보형물과 작은 보형물을 환자의 요청에 따라 바꾸는 경우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모양이 틀어지면 제거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미용수술이든지 내 마음에 딱 맞고 영원한 결과는 흔치 않다. 형태와 기능,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흉터까지 모두 보면 마음에 걸릴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적당한”, “웬만한” 결과가 나오면 환자나 술자가 만족할 수 있다. 그것을 어느 정도 정상(norm)인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인간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과 갈망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심지어 성괴(성형괴물)나 풍선아줌마와 같은 극단적인 사례도 생길 수 있다. 수술이 아무리 성행하더라도 수술 받는 “환자”와 수술하는 “의사”라는 기본적인 자세를 잊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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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검은 것과 흰 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사이에 무수히 많은 색이 존재한다. 애매모호한 경우를 회색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그 회색도 진회색부터 옅은 회색까지 매우 다양하다. 수술을 진행하는 데에 “적당히” 해야 하는데, 그 “적당히”란 어떤 기준일까? 또한, 적당하다는 것은 만족한다는 것일까?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느낀 점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호주에 사는 젊은 여성의 사례를 살펴보자. 외국에 사니까 보는 눈이 다르고, 자연과 해변이 좋은 나라이기 때문에 비키니 착용과 선탠이 기본이다. 이 여성은 가슴 확대술을 원해서 세 친구와 함께 시술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유독 한 환자만은 매우 큰 보형물을 원했는데, 본인은 매우 만족했지만 옆의 두 친구는 과하게 크다고 느꼈다. 문제는 옳고 그름이 아니어서 더욱 복잡해진다.
미국이나 브라질 같은 경우는 체격에 따라 보형물도 커질 수 있는데(400~500cc), 이는 큰 것을 선호하는 개인적 혹은 사회적 선호도 때문으로 생각된다. 환자가 큰 것을 선호하는 경우에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어야 하고, 많은 상담과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얼마 전 수술한 이마내시경과 상안검 수술 환자의 사례를 살펴보자. 눈꺼풀이 많이 처진 60세 여성이 필자의 병원에 방문했다. 눈썹과 이마가 내려오고 상안검 피부도 늘어져 있어 눈이 삼각형 모양으로 보였다. 꽤 심한데도 지금까지 쌍꺼풀 없이 지낸 것은 그런 형태가 싫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동생들이 나서서 좀 크고 시원하게 하길 바란다고 했다. 상안검의 경우 쌍꺼풀을 크게 보이기 위해 6mm 정도로 일부 절제하였고, 이마내시경도 함께 시행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환자가 새로운 눈의 모습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동안 처진 눈은 자신의 아이콘이며 순한 모습으로 통했는데, 이제는 눈이 확 커지고 쌍꺼풀도 드러나니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람이 뭔가 확 달라지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정작 그것은 마음속의 갈망일 뿐, 현실로 이루어지면 두려운 경우가 많다.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소원이 이루어지면 정말 모두가 행복해질까?
미니 거상의 함정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주름이 생기거나 볼살이 처지면, 지난 세월을 보며 “언제 내가 이렇게 늙었나” 하는 회한이 스민다. 조금씩 지나가는 세월에도 얼굴의 나이는 어느새 덜컥 들어보이게 된다. 이때 큰 수술은 겁도 나고 자신이 없게 된다. 친구가 듣기 좋은 말로 “실로 조금만” “미니거상으로 티 안 나게” 등 환자를 편하게 해 주는 말들이 있다. 그러나 정작 실리프트나 미니거상을 하면 환자가 무척 실망할 수 있다. 사실은 마음에 겁이나서 “살짝”이라고 했지만, 훨씬 더 큰 결과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젊어지고 싶은 마음에 “조금”이라는 결과는 무척 실망스러울 수 있다. 환자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당겨보는 것은 “살짝”이지만, 수술로 할 때는 “엄청나게” 당겨야만 그런 효과가 난다. 이는 밖에서 힘으로 당겨보는 것과 얼굴의 조직을 실로 당기는 힘의 차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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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수술의 만족이란 어디에 있을까? 가슴의 경우 큰 보형물과 작은 보형물을 환자의 요청에 따라 바꾸는 경우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모양이 틀어지면 제거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미용수술이든지 내 마음에 딱 맞고 영원한 결과는 흔치 않다. 형태와 기능,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흉터까지 모두 보면 마음에 걸릴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적당한”, “웬만한” 결과가 나오면 환자나 술자가 만족할 수 있다. 그것을 어느 정도 정상(norm)인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인간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과 갈망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심지어 성괴(성형괴물)나 풍선아줌마와 같은 극단적인 사례도 생길 수 있다. 수술이 아무리 성행하더라도 수술 받는 “환자”와 수술하는 “의사”라는 기본적인 자세를 잊어서는 안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