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준석 교수의 약업혁신
<73> 희망의 약업생태계: 유통산업과 AI 융합으로부터 약국이 얻는 시사점
방준석
입력 2023-02-21 09:34
수정 최종수정 2023-02-21 09:43
<73> 희망의 약업생태계: 유통산업과 AI 융합으로부터 약국이 얻는 시사점
최근 전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Open AI라는 회사가 출시한 ChatGPT라는 언어형 인공지능 서비스이다. 지난 회차에서 필자가 ‘디지털 문해력’에 대한 의견을 말하였으나 한달 여 사이에 디지털 기반 챗봇(chatbot)의 가능성이 또 한번의 파괴적 혁신의 출발점이 될 듯하여 약사를 포함한 전문가 집단이 놀라운 기술발전의 파급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유통산업의 성격을 가진 약국생태계 안에서 약사의 업무는 처방전 감사와 조제, 투약과 복약지도가 핵심인 듯 보이지만 이면에는 약국경영을 위한 물류관리, 보험처리, 수익관리, 지역사회 환자 및 고객관리라는 유통산업의 속성도 내재되어 있다. 더구나 이러한 행위와 활동은 디지털로 모사되기 수월한 상황에서 약사들의 주요 활동도 디지털로 변환이 가능하도록 상당히 정형화 되어있기에 인공지능이나 기계에 의해 대체될 위험성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차별화된 가치란?
약사나 약국의 전문성은 차별화되어야 하는가? 그렇다. 약사의 전문성은 지속적으로 차별화되어야 하지만 약국의 전문성에 대한 차별화는 모든 이의 관심사가 아닐 수 있다. 경쟁자보다 더 나은 ‘고객가치’를 제공하여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차별화의 목적이다. 즉, 창출하려는 고객가치로부터 경쟁우위를 확보하려는 것인데, 고객가치는 차별화의 대상이고 경쟁우위는 차별화의 목적이다. 그러나 차별화의 본원적 목적에는 부합하지 않으면서 고객가치의 창출보다 차별화 자체에 집착하여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는 우를 범하기 쉽다.
굳이 차별화를 안 해도 되는 부분, 즉 본인이 경쟁력을 보유한 부분까지 억지로 차별화하다가 오히려 경쟁력을 떨어뜨릴 필요는 없다. 차별화는 경쟁위위 확보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 차별화 자체가 사업의 목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고객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거리가 먼 엉뚱한 것을 차별화 하거나, 경쟁우위와 상관없는 차별화를 위한 차별화는 의미가 없다. 차별화의 의미는 경쟁자보다 나은 고객가치를 경쟁자와 다르게 만들어내는 것이지 단순히 경쟁자와 다른 고객가치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알려진 대로, 차별화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는 방향성이다. 고객가치의 차별화에 성공하려면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고객이 원하는 방향으로 차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그림1).
그림1. AI의 발전으로 기대하는 점(출처: 한국리서치, 2020)
편의점 산업의 사례에서 배우는 가치추구의 양상
고객들이 약국의 미래상에 바라는 것은 접근성과 편이성의 향상이며, 약사에게 바라는 바는 전문화되고 개인맞춤화 된 건강관리일 것이다. 그래서 약국은 유통산업이자 소매업태의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켜야 하고 약사는 당당한 의료인으로서 장점을 회복시킨 후에 보다 직역을 강화해야 한다.
점포 5만개 시대에 진입한 우리나라의 편의점 산업의 경쟁이 뜨겁다. 성숙기 시장에 이르렀기에 출점 경쟁은 가혹하다. 누가 얼마나 '차별화' 하느냐에 성패가 달렸는데, 업체별 차별화의 방식은 다르다. 오프라인 인프라가 강력한 CU와 GS25는 상품과 서비스 강화를 통한 플랫폼화를 추진했으나, 세븐일레븐, 이마트24, 미니스톱은 공간혁신에 치중했다(그림2).
그림2. 근래 편의점 기업별 차별화 전략(출처: 비즈니스와치)
플랫폼화 전략은, 택배는 물론 세탁소, 배달까지 편의점 산업 안으로 유인했다. 어떤 유통기업은 배달주문상품 1+1 행사 등으로 시장을 확대했다. 다른 기업은 취급품목을 다양화하면서, 통신사와 협업하여 알뜰 폰 유심배달 서비스를 하거나 스포츠 레깅스 제품의 판매까지 시도했다.
공간활용 전략은, 식품전문점포 플랫폼을 육성하거나, 폐기상품을 온라인으로 할인하는 온·오프라인 연계 서비스를 추진했다. 한편, 주류·애플 제품 전문매장, 스무디킹·오피스디포 숍인숍 등 차별화 매장을 추구했으며, 정육판매자판기 시범운영에 이어 점포내 패스트푸드 브랜드까지 출시했다.
업체별 차별화 전략이 상이한 이유는 인프라의 격차 때문이다. 편의점 총 점포 수의 60%를 점유한 CU와 GS25는 전국에 산재한 점포를 엔드라인 물류플랫폼으로 활용이 가능했다. 물류서비스를 도입하여 부가수익을 발생시킴으로써 점포수익성을 높인 것이다. 반면, 이마트24와 미니스톱은 점포 수가 적고, 세븐일레븐은 우량점포가 관광지 위주로 분포하여 골목상권 공략에 불리하므로 플랫폼 인프라를 모방하다가는 비용 부담만 증가하기에 각 점포를 차별화 포인트로 활용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각 편의점 점포의 가치는 '집객'이다. 오프라인 유통시장은 '고객체험(UX)'이 핵심경쟁력이다. 편의점 시장도 체험형 점포 모델이 출현하면 가맹점주 유치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비록 편의점 시장은 당분간 성장하겠으나, 이미 과포화 상태이므로 출점을 통한 고속성장은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 이에 점포 빼앗기 경쟁구도가 구축될 가능성이 높기에 차별화 모델을 제시하면서 고객과 점주에게 소구점을 제시하는 브랜드가 미래시장을 거머쥘 것이다.
유통산업에 인공지능이 미치는 영향
온라인과 오프라인 경계가 사라지며 유통산업에서 고객 취향이 다양해지고 있다. 고객분석을 통해 원하는 상품을 갖추고 마케팅을 통하여 매출을 확보하며 지속적으로 고객과 교감하며 ‘충성 고객’을 만드는 것은 본원적 과제이다.
AI를 통하여 유통기업은 유통 4.0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는 AI를 통하여 제품 공급에서부터 판매, 고객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유통의 각 단계를 변화시킬 것이다. 먼저, 전략수립과 의사결정에 있어 수요예측 정확도가 향상되고, 상권분석을 통하여 소비자 분석력은 매우 향상될 것이다. 게다가 물류, 재고, 매장 관리에 있어 적정재고 유지와 자동 가격조정이 가능하여 기존 오프라인의 많은 인력소요를 효율화시킬 것이다.
일본 침구전문점 True Sleeper는 AI기반 얼굴인식 기술을 활용했다. 매장에 설치된 4대의 카메라로 소비자의 성별과 연령대를 90% 이상 정확도로 파악했으며, 가게 앞을 지나간 고객의 수, 내점률, 실제로 구입한 비율 등의 데이터를 성별, 연령대별로 분류하여 고객동향을 수치화했다. 이로써, 주로 폐점시간에 구매율이 높다는 것을 파악했고, 여성고객이 많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남녀 비율이 5대 5임을 알고 상품을 전면 재배치하는 점포운영으로 매출을 올렸다.
독일 유통사인 Rewe그룹의 물류센터는 약 4만㎡의 넓은 부지여서 상품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실시간 위치추적이 가능한 RFID를 도입하여 실시간 위치 추적이 가능해졌고 유제품, 육류 같은 신선식품의 폐기율이 낮아졌다. 한편, 미국 슈퍼마켓체인 Giant Eagle은 스마트 선반시스템을 활용하여 재고보충시간을 3분의 2가량 단축했으며, 재고부족으로 인해 품절되는 경우를 절반으로 줄였다.
온라인 패션기업 Stitch Fix는 AI와 고도화된 데이터 분석으로 개인맞춤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고객의 데이터로부터 사용자 패션스타일을 학습한 AI가 수많은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개인화되고, 이후 전문 스타일리스트를 투입하여 인간의 감성으로 의복을 추천한다. 한편, 일본 Uniqlo는 AI를 이용해 고객의 뇌파반응을 분석해 유니클로 스코어를 산출한 후, 소비자 맞춤 티셔츠를 제안하는 'U Mood'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AI기술을 선도해야 할 약업생태계
약국이 혁신을 막는 것이 약사들의 상상력 부족과 모험심의 부족이라 주장한다면 독자들은 동의할 것인가?
예로부터 화두였던 고객 중심적 비즈니스 환경구축이 AI의 도입으로 현실화가 앞당겨지고 있다. 현대의 소비자들은 다양한 기기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방대한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향상되었고, 정보를 손에 쥔 소비자들은 유통시장의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 더구나 소비패턴의 예측이 불가능해지고, 인간의 잠재능력을 분석하여 대응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에 인공지능 기반의 고객 중심적 비즈니스 환경 구축이 이제는 필수적이다(그림3).
그림3. 조제는 로봇에게 상담은 Chat GPT에게?
AI뿐만아니라 정보수집을 위한 다양한 종단장치(Edge Device) 사용도 활발해질 것이며, IoT, VR, AR, RFID와 같은 기술들이 유통산업에 적합한 비즈니스 환경플랫폼을 발전시킬 것이다. 결국 유통환경의 전 영역에서 AI가 활용될 것이며 이로써 고객에게 다양한 경험과 편리성을 제공하고, 기업에게 효율성과 안정성을 높이게 될 것이다.
알파고와 같은 AI 알고리즘이 부지불식간에 우리시대의 물류와 유통산업을 변화시켰듯이 수년 내에는 ChatGPT와 같은 기술이 약사의 처방감사, 조제투약, 복약지도, 건강상담 영역까지 위협할 수 있다. 약사 사회가 한 발 빨리 앞서가며 변하지 않으면 약국산업의 미래까지도 암울해질 수 있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