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준석 교수의 약업혁신
<72> 희망의 약업생태계: 현대의 디지털 문해력
방준석
입력 2023-01-11 10:45
수정 최종수정 2023-01-27 15:43
<72> 희망의 약업생태계: 현대의 디지털 문해력
최근 약사사회에 디지털 기술에 대한 학습열기가 시작되고 있다. 수년간 디지털 충격을 겪으며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감과 두려움이 서서히 위기극복과 기술활용 쪽으로 관심의 무게중심이 옮겨지는 모양새이다. 선진화된 문화권일수록 문해력에 대한 역사가 뚜렷하기에 21세기 신문명 시대를 살아가려면 소위 ‘디지털 문해력’이 필수적이다.
문해력 수준이란 다층적이며, 분야도 다양하고 역사적, 사회문화적, 정치제도적 배경과 밀접하다. 고대 이집트 사회는 불과 1%만 문해자였다고 추정되며, 1940년대 12세 이상 한국민의 비문해율, 즉 문맹률은 전체 국민의 78%에 달했었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문해능력이 향상되면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삶의 질과 권리가 신장되었으므로 문해력이 곧 인권이며 문해력의 역사가 민주주의 역사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문해력의 개념
인류의 문해력은 지속적으로 향상되었다. 그러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나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문해력은 최근에 후퇴했는데, 특히 상하위 간, 세대 간 격차가 더 벌어졌다고 한다. 2006년 이후 한국 학생의 읽기능력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며 양극화 현상이 심해졌고,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는 국어 학업성취도까지 큰 폭으로 떨어졌다. 문해력과 관련한 첫번째 문제점은 기본적 국어능력이 저하되었다는 것이며, 디지털 강국이라 자부하지만 오히려 국민의 디지털 문해력이 OECD 평균보다 높지 않다는 것이 두번째 문제점이다.
우리나라 평생교육법 제2조에 따르면, ‘문해’란 기초생활 능력에 필요한 ‘문자해득’을 의미하며, 국어교육계에서는 포괄적 개념을 더 강조하고자 ‘문해력’ 대신 ‘문식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21세기 문해력의 의미는 글자에 대한 독해력을 넘어 디지털 문해력, 비판적 문해력으로 확장되었다. 이는 디지털 기술로 제공되는 다양한 언어나 영상 자료에 대한 비판적 이해, 표현 능력까지 갖춰야 함을 강조한다. 문해력에서 가장 기본은 언어를 이용해 읽고 쓸 줄 아는 ‘(일반)문해력’인데 바탕에 어휘력이 있다.
디지털 시대 기본 문해력의 의미와 향상 방안
14~15세기 인쇄술의 발명은 소수 계층만 향유하던 정보를 대중으로 확산시켜 문해력을 높여서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았다. 그런데 21세기 디지털 기술은 광범위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오히려 문해력은 낮아지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냈다. 긴 문서를 집중하여 읽고 깊이 사고하기보다 여기저기 검색하고 분절화된 텍스트를 대충 훑어보는 비선형적 읽기행태가 일반화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활자인 책보다 스마트폰의 단문 텍스트와 동영상에 익숙해진 지금의 청소년 세대에게 이런 비선형적 읽기행태가 초래한 부정적 영향이 크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 2012~2018년 사이 OECD국가 15세 청소년의 인터넷 사용량은 66퍼센트나 증가했고 이는 한 주에 35시간에 이르렀다.
인류는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스마트폰이라는 휴대용 두뇌를 소유했다. 이는 사전을 포함해 인류의 축적된 지식과 경험과 정보를 손쉽게 접속할 수 있기에 복잡하고 어려운 단어나 지식을 개인이 학습하고 내재할 필요성을 감소시켰다.
읽기 기반이 아닌, 시각 및 영상 자료를 통해 정보를 접하는 환경이 보편화되었고, 학생들은 요약된 정보를 조합하는 방법을 주로 활용하고, 정보에 대한 신속한 접근성은 읽고, 해석하고, 이해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줄이거나 없앴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읽기’를 하지 않으면 ‘사고하기’ 자체가 되지 않고 생각을 표현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한편, 디지털 기기를 제대로 활용할 시스템과 콘텐츠도 보완해야 한다. 고도의 검색과 평가를 통한 정보의 취사선택 역량, 통합을 통한 창의적 재구성 능력을 높이는 것이 디지털 시대 문해력 향상의 과제이다.
디지털 문해력의 의미와 향상 방안
청소년의 디지털 기기 이용능력은 높아졌지만, 문서자료의 정리와 필수정보의 분별력은 현저히 낮아졌기에 유년기부터 정보검색 및 진위 판별, 문서제작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다.
일반적으로 디지털 문해력이란 미디어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그에 대한 관점을 정립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는데, 현재 각급 학교에서 진행하는 디지털 교육은 단순한 기기활용 능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에 청소년의 디지털 문해력 수준을 향상시키기에는 매우 부족하다.
또한, 미디어 교육학자 루블라와 베일리는 디지털 문해력을 '디지털 기술을 언제 어떻게 사용할지 아는 능력'이라고 정의했고, 미국도서관협회(ALA)는 '디지털 정보에 대한 탐색·평가·창조·소통 능력'이라고 정의하였다. 즉 기술과 도구 사용 능력, 뉴스 등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이해력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디지털 문해력 수준이 국가의 디지털 경쟁력을 좌우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2021년 세계 디지털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64개국 중 12위였는데 이는 1년전 8위에서 4단계나 낮아졌다(그림1).
디지털 경쟁력 평가에서 스마트폰 보급률과 인터넷 속도 등 하드웨어 인프라의 중요성은 낮아지고,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플랫폼과 접목하는 능력이 중시되었다. 이는 디지털에 대한 한국인의 이해와 디지털 정보를 다루는 역량이 디지털 발달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림1. 세계 상위권 국가의 디지털 경쟁력 순위 (출처: IMD, 연합뉴스)
한국 청소년의 디지털 문해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매우 낮았다. 2020년 OECD가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1세기 독자: 디지털 세상에서의 문해력 개발' 보고서에서 회원국의 만 15세 학생 순위에서 상위권인 덴마크, 캐나다, 일본, 네덜란드, 영국과 대비하여 멕시코, 브라질, 콜롬비아, 헝가리 등과 더불어 한국은 최하위 집단에 머물렀다.
한국 청소년의 디지털 정보에 대한 사실과 의견 식별율도 OECD 회원국 평균이 47%인 반면, 26%로서 최하위권이었다. 이는 '정보가 주관적이거나 편향적인지 식별방법을 교육받았는가 질문에 호주, 캐나다, 덴마크, 미국은 70% 이상이었지만 한국은 49%로 폴란드, 이탈리아, 그리스, 브라질과 함께 평균 이하 그룹에 속한 것을 볼 때 당연한 결과이다.
디지털 문해력 수준이 국가의 디지털 경쟁력을 좌우
성인의 문해력도 위험한 수준이다. 한국의 조사대상 25개 OECD 국가 중 22위로 하위 8%에 머물렀다. 근래 유튜브나 블로그에는 ‘3줄 요약’, ‘1분 요약’ 등을 흔히 볼 수 있다. 지금은 읽기 편하고 쉽게 정리된 것을 좋아한다. 사고하고 분석하고 고민보다는 단순히 추종하기 좋아하고 힘든 학습과정을 피하려 한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이런 추세를 ‘반지성주의’라 부르기도 한다.
직업인이나 대학생조차 문제상황을 접하면 인터넷 검색한 내용을 답으로 제시하는 것을 쉽게 만나게 된다. 심지어 찾은 내용에 대한 충분한 이해나 고민하는 과정 없이 즉흥적으로 표현하며 어떤 경우는 검색하여 얻은 타인의 자료를 자신의 생각인 양 표현한다. 일말의 고민이나 양심조차 없기에 문제해결역량은 기대할 수 없고 향후 유사한 상황을 만나도 문제해결역량을 발휘하지 못한다.
인간의 뇌는 고민하는 과정을 겪어야 학습이 되는데 이 과정을 생략했기에 학습조차 이뤄진 것이 없다. 더욱 무서운 것은 배우지 않고 고민하지 않는 사고방식도 습관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인은 학습하지 않고 아카이빙(archiving)만 한다(그림2).
△그림2. OECD 주요국의 디지털 정보파악 능력
약업생태계의 디지털 문해력을 높이기 위하여
디지털 정보의 사실과 거짓 여부를 판단하는 교육도 강화되어야 한다. 디지털 문해력 수준이 높은 국가는 대체로 디지털 정보에 대한 비판, 문제해결, 가공활동을 많이 교육한다. 어릴 때부터 디지털 문해력의 기초를 형성할 교육을 받아야 성인이 되어서 제대로 된 정보판단능력을 갖출 수 있다. 유년기부터 신문기사 읽기활동을 통해 어휘수준을 높이고, 정보에 대한 자기생각을 발표하며 비판적 사고를 길러야 정보의 진위를 판단하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또한, 디지털 문해력 교육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유튜브, 인스타그램과 같은 미디어 플랫폼이 어떤 성격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어떤 플랫폼에서 어떻게 표현해야 효과적인지에 대한 교육이 꼭 필요하다. 그래서 유튜브 알고리즘이 개인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수준 높은 디지털 문해력 교육을 통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구조와 특징을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힘을 배양해야 한다(그림3).
△그림3. 디지털 문해력의 활용분야(출처: 구글이미지)
더불어, 디지털 문해력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지려면 전문지식을 갖춘 교육자도 필요하다. 디지털 문해력에 대한 교수법 연수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이 분야의 인적자원 개발이 절실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디지털 문해력에 대한 개념이 일천하기 때문에 전문성을 갖춘 인재집단이 이를 표준화하고 실제 교육과정에 적용해야 한다.
근래 약계에도 디지털 시대를 헤쳐 나갈 역량을 강화할 목적으로 디지털 기술 트렌드 교육 과정이 늘고 있다. 약업계 종사자들은 디지털 신기술도 터득해야 하고 이것이 초래할 미래 세상의 순작용과 역작용까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 신기술은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던 비즈니스모델이나 산업생태계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결과물이 우리 국민의 삶의 질과 약사나 약국산업의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깊이 고민하고 꾸준히 학습해야 한다.
만약 필요 시 미래의 예측과 대안의 수립을 위해 적절한 가설을 세우고 실증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디지털 문해력의 핵심이 사실과 의견을 구분할 줄 아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 말한다. 그래서 근거가 부족한 지나친 염려나 추측, 막연한 낙관주의, 패배주의에 빠진 과도한 공포감, 집단 이기주의적 선동행위도 모두 지양해야 한다.
미래는 준비하고 노력하고 증명하는 자의 편에 서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올 해도 희망이 가득한 약업생태계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