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준석 교수의 약업혁신
<71> 약국의 미래: 정보 전문가로서 약사의 가치창출
편집부
입력 2022-10-31 17:35
수정 최종수정 2022-10-31 17:44
<71> 약국의 미래: 정보 전문가로서 약사의 가치창출
약사들은 약의 전문가라고 불린다. 약의 전문가란 의미는 매우 광범위하다. 왜냐하면 의약품과 관련한 연구와 개발, 정책수립과 실행, 제조와 품질관리, 유통과 판매, 임상적 사용과 사후관리 등 넓은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을 언급하면서 약사는 연구, 개발, 임상, 기타 어느 분야에 종사하던지 의약정보의 전문성을 보유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더구나 내년부터 시작될 전문약사면허 자격의 종류 중에는 ‘의약정보’ 영역이 포함되어 있기에 매우 시의적절하다.
필자는 예전부터 의약품에 대해 교육할 때는 ‘의약품이란, 정보라는 꼬리표가 붙은 의료용 수단’이라고 정의해왔다. 그렇기에 약사가 약효물질인 약을 다룬다는 것은 그 본질적 영역인 정보란 속성이 더욱 부각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물리적 실체로서 의약품에 대한 전문성과 더불어 물리적 실체는 거의 없지만 가치를 지닌 정보라는 것에 대한 전문성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하기에 약사는 정보에 대한 원론적 인식부터 새로이 정립할 필요가 있다(그림1).
그림1. 정보라는 꼬리표가 붙은 의료용 수단으로서 의약품
이제 ‘데이터’와 ‘플랫폼’이 주요 가치 창출의 대상이자 무대가 될 미래시대 약사의 활동상을 고려할 때, 물리적 실체로서 의약품과 무형의 가치속성의 정보를 다룰 양수겸장의 전문가로 발전하기 위해서 특히 정보가 만들어 내는 가치의 속성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보도록 하자.
정보의 특성
‘정보’란 어떤 목적에 맞게 정리된 자료(데이터)를 말한다. 자연이나 사회 또는 인간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데이터와 지식을 모아둔 것을 자료라고 말하고, 이 자료가 어떤 목적에 맞게 체계적으로 정리된 것을 정보라고 부른다. 정보는 글, 그림, 부호, 소리, 언어, 음악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정보는 경험재이다
정보는 실제 사용해야만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경험재이다. 이는 특성이나 품질을 구매하기 전에 쉽게 판단할 수 있는 탐색재와 비교된다. 정보재는 그 정도가 물리적 제품에 비하여 심하다. 정보는 소비자가 경험하기 전에는 가치를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 개인마다 느끼는 가치의 편차가 심하다는 점이 정보의 가격결정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이다. Shareware와 같이 정보를 사용하고 나서 원하는 만큼 지불할지, 견본품을 사용해 보고 미리 정해진 만큼 지불할지, 공짜로 사용하고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벌지 등의 다양하고 복잡한 상황이 정보화 시대에는 자주 발생한다.
정보는 가공성이 크다
정보는 쉽게 쪼개거나 더하거나 붙일 수 있다. 즉 물리적 제품에 비하여 낮은 비용으로 여러가지 형태로 정보를 차별화하여 제공할 수 있다. 전자책의 일부를 발췌하여 무료샘플로 제공하거나, 다수의 전자책 부분들을 발췌하여 판매하거나, 한 저자가 슨 책들을 한데 묶어 판매하거나, 상이한 독자들에게 적합하도록 개인화된 책을 만들어 제공할 수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로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어떻게 편집하거나 엮을지가 중요한 의사결정 대상이다. 물론 패키지(또는 버전)마다 어떻게 가격을 책정할 지가 어려운 문제이다.
정보는 공짜가 되기를 바란다
정보는 공짜가 되기를 바란다(Information wants to be free)란 흔히 해커들이 주장하는 말이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되는데 첫째, ‘정보는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 ‘정보는 공짜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얻게 된 장점은 많은 뉴스나 이메일 등 각양각색의 컨텐츠나 서비스를 공짜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의 모형에 의하면, 완전경쟁시장에서 가격이 한계비용(marginal cost)에 수렴한다. 무한한 공급과 한정된 수요를 나타내는 인터넷 시장은 가장 완전한 경쟁시장에 가까운데 인터넷 상에서 제공되는 정보의 경우 한 단위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데 드는 비용(즉 한계비용)은 0이라 할 수 있기에 정보의 가격이 0에 수렴하는 것이다.
정보의 한계비용은 0이다
정보재의 생산비 구조는 물리적 제품의 그것과는 다르다. 후자는 고정비 비중이 낮고 변동비 비중이 높은 반면, 전자는 고정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즉, 정보관련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상당한 고정비용이 소요되지만 추가생산에 필요한 한계비용은 거의 0이다. 정보의 비용구조는 인터넷 속에 떠다니는 많은 컨텐츠와 서비스의 가격을 무료에 가깝게 만든다. 정보가 무료일 수 있는 것은 한계비용이 0이기 때문이며 이러한 비용구조는 원가에 근거한 가격 설정을 무의미하게 만든다(그림2).
그림2. 정보의 한계비용
이런 비용구조가 소위 ‘규모의 경제’ 현상을 초래하는데 제조업 분야에서 말하는 규모의 경제 현상과 상이하다. 물리적 제품은 한계비용 체증현상이 있기에 생산량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규모의 불경제’가 나타나 결국 손실이 생기므로 물리적 제품의 경우는 ‘최적생산량’이란 개념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보재의 경우에는 제품의 고정비가 높고 한계비용은 0에 가깝고 한계비용의 체증이나 생산용량의 제약도 없으므로 생산량이 증가할수록 규모의 경제에서 얻는 이익이 증가한다.
그래서 정보에 가격을 매기는 것은 물리적 제품의 가격결정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고정비가 100만원인 전자책을 1천원 받는 것이 합리적일지, 아니면 100원을 받는 것이 적당한지, 아니면 공짜가 적정한지 쉬운 결정은 아니다. 이렇듯 원가가 기준이 될 수 없다면 정보재 가격의 새로운 기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공유는 가격을 낮춘다.
정보기술은 과거에 불가능했던 규모의 정보나 지식의 공유를 가능케 해준다. 대규모의 정보와 지식 공유는 공짜대안을 만들어 내는데 여기에는 합법적 및 불법적 공유라는 두가지 형태가 있다.
먼저 합법공유의 대표적 예는 위키피디아나 오픈소스 소프트웨어(Open Source Software)와 같은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다. 위키피디아는 다수의 저자가 자신의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류의 대안을 만든 예이다.
반면, 불법공유의 대표적 예는 불법복제(piracy)이다. 이것은 첫째, 많은 네티즌들이 불법복제를 불법이라 생각하지 않으며 적발하기도 어렵고, 둘째, 불법이지만 품질면에서 떨어지지 않기에 합법적 유료정보(컨텐츠)에 비해 매우 저렴한 대안이기에 근절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불법공유를 완벽히 제거할 방법은 없거나 있다해도 너무 많은 비용이 들기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정보는 불법복제가 흔하다
정보는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 저렴한 비용으로 품질에 차이 없는 복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물리적 제품이라면 개인적 차원의 불법복제는 곤란하며 불법복제가 반드시 저렴한 비용 때문에 일어나지도 않는다. 다수의 경우는 저작권 문제 때문에 합법적 경로로 정보재를 구할 수 없을 때 불법복제가 발생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인터넷에서 불법복제가 흔하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DRM (Digital Right Management) 기술이 도입되었지만 비용대비효과는 크지 않다. DRM을 적용하는 경우 이를 적용하는 사용된 직접비 외 DRM 기술의 표준화가 불충분하거나 지연되어 발생하는 플랫폼의 파편화, 혁신의 둔화, DRM으로 인해 겪는 소비자의 불편 등 부수적 비용도 크다.
한편, 불법복제는 매출손실 같은 부정적 측면도 있지만, 제품의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시장을 확대시키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게다가 불법복제를 근본적으로 막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불법복제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가 아니라 불법복제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정보의 가격은 공짜?
정보기술의 빠른 확산과 더불어 태어나서 성장한 세대는 인터넷 상의 정보가 공짜라는 사실을 당연시한다. 이런 심리적인 기준가(anchor price)는 소비자가 어떤 제품에 대해 보유한 기대 가격인데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인터넷 세대는 인터넷 정보가 공짜이어야 한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품질에 대한 기대치도 높다. 이런 저변의 인식과 심리적인 거래비용(mental transaction cost)을 고려할 때 정보에 대한 유료화가 굳이 불가능하지는 않아도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Free의 저자 크리스 앤더슨은 세상에는 공짜와 공짜가 아닌 두 가지 가격이 존재하며 이것을 창출하는 시장은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사실 공짜는 신규시장에 진입할 때 가장 효과적인 무기이자 동시에 잠재적 경쟁자의 시장진입을 제어할 수 있는 효과적인 무기이다.
거의 무의미할 정도의 낮은 가격이라도 지불해야 하는 경우에는 소비자는 구매하려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과연 충분한 가치를 가지는지 고려한다. 이것을 ‘심리적 거래비용(mental transaction cost)’이라고 하는데, 이런 심리적 비용 때문에 0원과 100원의 차이가 100원과 10,000원의 차이보다 더 크며, 무료에서 유료로 전환하는 것이 기존의 가격을 올리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이에 약사들은 가시적 의약품이 아닌, 데이터와 정보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고 여기에 가격을 매기는데 앞으로 더욱 고심해야 한다.
약사는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여 디지털 기반 약료와 헬스케어의 중신자로 전환을 모색 중이다. 그런데 약국이 가진 데이터를 활용하도록 디지털화를 추진하면서 약사가 활용가능한 정보를 이용한 사업을 전개한다고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를 대비하는 것은 아니다. 정보의 가치를 어떻게 매기고 인정받을지는 전문약사 시대를 대비하는 약사들에게 커다란 의미로 다가온다. 전문약사라고 완전히 신약들만 자신들의 약료활동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의약품들을 어떻게 사용하고 더구나 근거중심의료행위를 시행하면서 기존 의약품에 더하여 정보화된 고도의 임상적 지식과 술기를 어떻게 사용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가는 새로운 도전이다(그림3).
그림3. Canadians Embracing Expanded Role of Pharmacists (출처: 캐나다약사회)
전문약사란 이제 약사가 기존 약의 전문가임을 주장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무슨 질병에 대해서 어떤 약물요법과 환자케어서비스를 어떻게, 얼마나 더 효과적으로 시행하여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보건의료자원을 합리적으로 분배할 수 있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로 진입한다는 의미도 가진다. 이제 약사는 더 똑같은 수준의 의약품 전문가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