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준석 교수의 약업혁신
<66> 약국의 미래: Self Innovation?
편집부
입력 2022-08-0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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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약국의 미래: Self Innovation?
디지털 시대에 약국의 변혁은 누가 어떻게 추진해야 할까? 최근 필자는 디지털 시대 약국의 비전을 논하는 좌담회에 다녀왔다. 무려 3시간 동안 진행되었는데 정말 유익했다. 왜냐하면 약사회 집행부가 변화로 디지털 변화로 촉발된 약국 변화의 방향성과 속도를 이제야 좀 차분하게 논의하는 첫 발을 떼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할 일은 뚜렷하고도 단순하다. 비록 이런 주제가 개인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고 진행방향이 수용하기 힘들더라도 앞으로 간단없이 만나서 뜻을 모으고 혁신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 낸 수 있다면 첫 단추는 잘 꿰어진 것이다.
변화가 선택인가?
세계 각국은 환경위기를 극복하고자 노력 중인데, 이는 온난화 등으로 환경과 생태계가 악화되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변화와 대응은 이미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약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현재 상황만을 고수하면서 부분적 손질을 하는 점진적 개선을 하기보다는 급진적, 파격적 혁신을 준비해야 할 만큼 현실은 냉혹하다.
이번에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약사와 약업종사자들이 그동안 느껴왔던 만큼 우리의 약국이 디지털 변혁을 이끌어가는 주체들인 정부와 기업에게 그다지 매력적인 대상이 아니란 것이다. 약사들이 자주 푸념하는 말이 “약사는 희생하고 노력한 만큼 정부나 사회로부터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라는 표현이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외부에 있지 않다. 모두 약사 사회 내부에서 속히 찾아서 해결해야 한다.
약국은 변화된 생태환경의 피식자인가 포식자인가?
약국과 약사는 정글의 법칙이 통하는 유관산업 생태계 속에 형성된 먹이사슬 가운데 최상위 포식자가 아니다. 즉, 약업계 종사자는 최상위 포식자의 위치에 있고 싶은데 정작 먹이사슬의 상층부에 속해있지 않기에 희생하고 노력한 만큼 정부나 사회로부터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약국은 제약업이나 의료서비스업도 아니고 엄밀하게 말하면 양약 유통업에 정체되어 있다. 디지털 전환, 비대면 시대에 가장 빠르고 심하게 구조 조정되는 분야가 바로 유통 및 운송업 분야이다. 그러니 약국이 배송관련 가치사슬의 디지털 혁신이란 쓰나미의 영향권에 손쉽게 빨려 들어간 것이다.
약국은 믿을 수 있는, 가치 있는 변화의 파트너인가?
전투는 목숨을 맡길 전우와, 혁명은 뜻을 같이한 동지와, 비즈니스는 최적의 파트너와 하라는 말이 있다. 과연 약사 사회와 약국이란 비즈니스는 다른 산업분야의 주체와 비즈니스를 함께 전개할 파트너가 되기에 충분을 자격을 갖추었을까? 비즈니스 협업의 자격이란 주체가 보유한 자본이나 자원, 기술, 그리고 고객, 시스템, 채널 등으로 다양하다.
비즈니스 관계는 정보와 이익을 상호교환 또는 창출하거나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을 때 맺어지며 불이익이 일방에게 전가되면 성립되지 않는다. 산업의 관점에서 약국 비즈니스가 지금과 같이 급속히 변화하는 시대에 새로운 이익을 창출시킬 수 있을지는 중요한 판단요소이다. 비즈니스 관계는 ‘상호성’이 가장 중요하기에 디지털 전환에 따른 혁신의 결과가 약국(약사)에게 이익을 창출시킴과 동시에 다른 협업자에게도 생성되어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국은 자신은 물론 외부 협업자와 이익을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절충점을 속히 찾아내야 한다. 약국의 변혁을 위한 투자는 약국보다는 외부 협업자가 대폭 부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우선 전통적으로, 약국이 유통업태로서 판매채널로 활용되어 의약품과 외품 등 각종 재화의 거래로 인한 수익이 발생하기에 이를 협업자와 나눌 수 있었고, 의료서비스 제공처로 활용될 때는 국가가 원하는 수준의 내용을 약사가 제공한 뒤 사전에 정해진 의료수가 형태로 환급 받았다.
그러나 디지털 혁명시대에는 약국이 유통채널로서 판매수익이나, 의료전달채널로서 정부가 제공하는 의료수가수익 외에 새로운 수익과 약사의 가치를 바로 데이터에서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약국의 데이터도 수집-분류-분석-정제-가공-제공-활용이란 새로운 가치사슬 구조를 구축해야 가능하다. 그래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공동발전을 위한 협업 대상이 될 수 있다.
솔직히 약국은 협업 대상이자 가치창출 원천인 데이터의 수집, 분류, 분석, 정제, 가공, 활용을 위한 인프라나 기술, 표준화 규정이나 규칙, 자본을 모두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러니 미래 협업자인 정부, 기업, 타직능단체, 국민, 일반소비자가 약국을 변화와 공생의 파트너로서 협업할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실정이다
대등한 교환이나 협업 관계 형성이 불가하다면, 이제는 가치창출을 위해 점령하여 개발하거나 투자를 통한 활용 대상이 될 뿐이다. 가치를 창출을 위한 자원은 보유했으나 대등한 협업 대상이 아니었던 저개발국을 제국주의 국가들이 강제로 병합했던 가슴 아픈 사례를 참고할 수 있겠다.
변화 현상의 관찰과 비판은 누구나, 하지만 혁신의 설계도는 아무나 만들지 못한다
4차 산업혁명을 이해하고 대응하려면 먼저 제1차 산업혁명부터 상세히 공부해야한다는 선배 학자들의 조언을 처음에 필자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약국의 혁신과 디지털 혁신의 상세 전략과 방법론을 연구하면서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적이었는지 깨닫고 있다.
약국이 보유한 다양한 데이터는 분명히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자원이 될 수있다. 정부라는 정치세력과 기업이란 기술세력, 금융이란 자본세력은 이를 이미 알고있다. 저개발국은 막대한 인구와 지하자원을 보유하고도 그 가치를 측량, 채굴, 운반, 가공, 소비를 위한 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전략이나 기술, 자본, 시장을 모두 갖추지 못했기에 눈뜬 채 강제로 빼앗기고 대신 강대국이 만든 상품과 서비스의 단순 소비 시장으로 전락했었다.
산업혁명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산업혁명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성공시킨 시기와 그 국가들이 보유했던 해외 식민지의 면적과 산업생산력 그리고 국부의 축적과 세계적 영향력에는 상관성이 있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가 선발국이라면 독일, 러시아, 미국, 일본 등은 후발국이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독일의 산업혁명 모델을 벤치마킹했고 한국은 일본모델을, 중국과 동남아 및 아프리카 국가들은 한국의 산업혁명모델을 벤치마킹했다. 그래서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브랜드(brand)와 기술(technology)로 구별된다고 한다. 그 브랜드와 기술의 가치가 곧 1~3차 산업혁명에 성공했던 결과물이다.
영국, 미국, 프랑스 등 열강은 세계경영을 해본 덕에 거시적 시야와 미시적 시야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들의 진정한 힘과 역량은 시대 혁신의 설계도를 직접 그려 실행해 본 경험을 가졌다는 것이다. 남이 한 일에 대해 곁눈질과 비판은 쉽다. 그러나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할 때 그 시점과 방향을 판단하고 속도를 조절하는 역량은 아무나 가지는게 아니다.
누가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즐탁동시
약사 사회는 약업분야의 세계사에서 이렇다 할 혁신사례를 만들어 주도하거나 경험한 적이 없다. 선진국이 만들었던 약국 모델, 법규와 제도 모델, 면허자격 모델, 교육훈련 모델, 약료서비스 모델을 받아들여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정부와 기업들은 비록 지난 70여년 동안 자력에 의해 1~3차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약국을 중심으로 한 약업계는 이들의 역량과 경험을 활용하여 디지털 시대에 약업혁신을 감행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토록 우려해 온 ‘약국의 법인화’는 이제 논의할 필요도 없다. 정부와 기업들은 더 이상 약국의 법인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급속히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이제 기업들은 ‘디지털 전환’이 기업의 사활을 좌우한다고 받아들인다. 물론 정부도 적극 이러한 과정을 제도적으로 추진 중이다. 의료계는 진단-치료-케어-예방이란 의료의 본질 속에 과학기술을 적극 받아들여 각종 양질의 데이터를 창출할 수 있는 잠재성을 부각시켜 의료계 스스로 보유한 기술이나 자본이나 제도가 아닌, 정부와 기업의 역량을 자기의 산업 속으로 유입하여 4차 산업혁명을 착실히 추진중이다.
스스로 달걀껍질을 깨고 나오면 병아리가 되지만, 외부에서 억지로 깨면 달걀후라이가 된다. 그러나 부화의 과정에서 껍질 속의 병아리와 껍질 밖의 어미 닭이 껍질을 동시에 깬다고 한다. 이것을 이르는 말이 “즐탁동시(茁啄同時)”이다. 약사 사회 스스로 디지털 변혁을 스스로 추진할 수 있다고 오판하거나 사회변화의 방향과 속도를 역행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일은 약사 사회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다만 변화를 하겠다는 용기만 가지면 된다. 필자가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글귀가 있어서 여기에 소개한다(. 오리지널스; 1장 창조적 파괴’, 애덤 그랜트 <한국경제신문>).
심리학자 엘렌 위너는 신동이나 천재들은 어른이 되면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고 자기 조직에서 지도자가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신동들 가운데 아주 극소수만이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창의력을 발휘한다.” 고 말합니다.
신동이나 천재들은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평범한 방식으로 사용하지만,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은 자신의 평범한 능력을 천재적으로 발휘합니다. 예를 들면, 천재들은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되지만 기존 의료체계에 대한 비순응자들은 사람들이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 고장 난 의료체계를 바꾸기 위해 싸운다는 것입니다.
천재들은 불합리한 법을 바꾸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법률을 위반한 고객을 변호하는 변호사가 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불합리한 법에 맞서 새로운 시대를 엽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역사학자 잭 래코브는 미국의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이들은 혁명가적 기질이 전혀 없는 이들이었다고 합니다. 다만 두려움에 맞설 용기를 가진 이들이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이들은 적응력이 강한 천재들이기보다는 의심을 품고 편한 자리에서 내려와 아슬아슬한 모험을 즐길 줄 아는 용기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