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사회의 모습을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미래 사회의 모습을 흔히 테크사회(super smart society), 초갈등 사회, 초고령 사회, 초개인화 사회, 초솔로 사회, 우울 사회, 위험 사회 그리고 수축 사회가 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더불어 최근의 사회적 트렌드를 ‘뉴노멀(new normal) 시대’라고 부르는데, 올드 노멀(old normal)시대를 이익, 표준, 집중, 경쟁 및 성장으로 표현한다면, 뉴노멀 시대는 지속가능성, 다양, 분산, 공감 및 개성이 중시되는 특성이 강조된다.
과학기술에 의한 제 4차 산업혁명
혁명적인 기술의 발전으로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등이 미래 사회의 생활모습과 산업근간을 바꾸어 놓을 기세이다. 물론 개개의 기술이 가진 영향력도 파괴적이지만 이들이 융합될 때의 파급력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미 약업현장에는 다양한 종류의 조제자동화기기, 전산관리시스템 등이 실용화되어 있는데 머지않은 장래에는 인공지능과 연동된 약국경영 및 환자관리시스템이 보편화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약사의 직능과 약국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는 약사의 직업윤리의식 확대 및 전문약사제도의 도입과 그 궤를 같이 하리라 예상되는데, 당장은 기술의 발전과 이에 따른 시장의 변화에 대하여 많은 약업종사자들은 제도와 법률의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기대하지만, 산업현장에서 다양한 변화와 혁신방안이 시도되고 이로 인한 문제점을 정리, 관리하는 수순으로 제도가 정비되는 것이 상례이다. 따라서 변화에 대한 혁신마인드의 제고가 약업종사자가 최우선적으로 갖춰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
혁신이란 현재까지의 관행이나 구형 시스템을 고치고 벗어나는 과정을 포함한다. 지금 약업현장은 한약사와의 직역 다툼, 인터넷 판매로 인한 유통질서의 변화, 코로나19로 인한 경영환경 악화 등이 주요 현안이지만, 이는 모든 직역이나 산업분야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반적인 현상일 수 있기에 보다 중요한 점은 각양 각색의 도전과 변화에 대하여 약사, 약사회, 약업종사자들이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는가와 고비를 극복할 역량을 축적하였는가 여부이다.
조직적 규모의 혁신을 경험하지 않고 현재의 구조적, 심리적, 관행적 장애물을 방치한 채 뭔가 현재의 난감한 상황을 타개할 묘수 만을 찾거나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는 것 외에는 다른 혁신을 거부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보아야 한다. 필자가 자주 주장하듯이 ‘약사법’이란 국회의원 약 150명만 찬성하면 언제든지 내용 변경이 가능한 법률체계에 불과하다. 그래서 약사 직능은 유관 법률조항에 의지하기 보다는 보다 근본적으로 사회에 기여함으로써 국민이 필요로 하며 국민의 가치를 높여 줌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존중 받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근래에 우리나라 대학이 존폐의 위협을 느낄 만큼 경영난을 겪고 있다는 기사가 많이 등장한다. 필자가 대학에 근무하다 보니 이는 사실이다. 하지만 대학의 존폐 위험은 급격한 학령인구의 감소나 반값 등록금 기조의 유지, 정부의 지나친 간섭, 그리고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2018년 이후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나, 반값등록금으로 인한 재정의 악화, 중앙정부의 대학에 대한 통제강화 등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예견되거나 지속되어 온 현상이기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약업분야도 혁신을 이루려면 우선 변화의 방향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혁신마인드를 제고시킨 후, 혁신의 추동력과 모멘텀을 이끄는 리더십을 강화해야 한다. 이에, 헬스케어 패러다임 변화의 방향성부터 고찰해보자.
헬스케어 개념의 확대와 시대적 발전
약업도 크게 보면 헬스케어 산업의 일부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우선 건강에 대한 개념이 지난 수십 년간 변화하였는데, 약업의 측면에서 볼 때 가장 큰 변화는 의약품 중심에서 환자 중심으로, 그리고 복지 중심으로 헬스케어 및 건강을 바라보는 소비자의 요구가 지속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그림1). 다만 아쉬운 점은 국민의 요구는 복지지향적(파란색 화살표)인데, 아직도 보건의료현장은 여전히 환자지향적(흰색 화살표)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림1. 헬스케어 개념의 확대 (출처: 필자 작성)
헬스케어 개념의 변화란 욕구의 지향점, 핵심기술, 소비트렌드, 전문인력구조 등 많은 사항이 변했다는 의미이며 이를 학문적, 산업적 관점에서 1~3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우선 헬스케어 산업의 범주는 (1)의료서비스, (2)의약품(제약/바이오), (3)의료기기, (4)화장품, (5)식품(건강기능식품)을 포함한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기대수명이 늘면서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Well-Aging, Wellness, Anti-Aging)’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사회적, 기술적 환경변화에 따라 외연이 꾸준히 확장되고 있다(그림2).
그림2. 헬스케어 개념의 시대적 변화 (출처: 삼성경제연구원)
이는 약국과 약사의 역할도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게 적응하고 변해야 한다는 것이므로 약사에게는 큰 자극과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헬스케어 산업은 부가가치가 높은 2가지 분야부터 ICT와 융합하여 고도화되는 양상이다. 우선 의료서비스 분야는 개인맞춤형 예방과 관리에 건강정보(big-data)와 AI를 활용하여 이른바 '4P (예측, 예방, 개인화, 참여)시대'에 진입하였다. 그리고 제약바이오(신약발굴) 분야는 미충족의료수요도가 높은 만성질환을 중심으로 축적된 학술정보(big-data)에 AI를 이용한 신약후보개발시스템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커지고 있다. 물론 우리의 약업시장은 의료서비스 분야에 속한다고 정의하는 것이 합당하다.
헬스케어 분야와 ICT의 융합양상
필자가 지난번에 고령자를 위한 기술을 ‘시니어 테크’라는 용어로 설명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고령화와 같은 인구학적(demographic) 변화에 기술(technology)를 결합시킨 ‘데모테크’ 라는 말이 헬스케어 분야의 발전양상을 표현해 주고 있다. 헬스케어에도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양식에 따라서 진보하여 E헬스케어에서 U헬스케어로, 스마트헬스케어를 지나 IT헬스케어로 발전 중이다(그림3).
현재 우리나라는 ‘스마트 헬스케어’가 구현되는 시점이지만 조만간 ‘IT헬스케어’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이는 고속통신망(5G), 생체신호센서와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과학과 클라우드 컴퓨팅, 그리고 양자컴퓨터와 인공지능(AI) 기술의 성숙도에 따라 순차적으로, 아니면 급격히 구현될 것으로 예견되는데, 어쩌면 IT헬스케어의 인프라 기술이 완성될 2040년 무렵이 그간 미래학자들이 예견한 초인공지능의 출현 시점인 ‘기술특이점(Singularity point)’ 시대의 개막과 겹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약사와 약국과 약료서비스는 바로 이 ‘IT헬스케어’ 시대에 적합한 직능과 역할, 기능, 그리고 서비스 모델을 구축하고 운영되도록 끊임없이 혁신하고 발전해야 한다.
그림3. 헬스케어와 ICT의 융합트렌드 (출처: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세기적 기술 및 사회 혁신은 헬스케어 영역으로부터
선진 산업국가의 정부는 특정 제도를 정비하거나 직능단체 혹은 이익집단을 보호하기에 앞서 산업적, 경제적 효과를 우선시 하는 경향이 있다. 미래의 스마트 헬스케어 패러다임은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보유한 정보통신 기술과 융합되기 쉬우며 더불어 유관 산업의 발전과 경쟁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모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술을 발전시켜 시장에 적용하면 국민의 보건의료수준과 삶의 질이 향상되며 건강보험 재정까지 절감되는 효과를 먼저 고려한다. 그래서 이제는 의료와 약료 서비스는 직능의 관점(직능 차별성과 배타성, 안전성)보다는 시스템의 관점(경제사회적 효율성, 산업경쟁력, 소비자 가치)에서 판단하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란 데 정부나 소비자들은 큰 이견이 없는 듯 하다.
정체된 제도나 시스템이나 사회구조는 개혁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래서 선제적 전략과 대응이 중요하다. 변화와 위기를 조율하고 대응하는 것이 혁신이고 진정한 실력이다. 약업은 분명히 헬스케어 산업의 일부분으로 해석되고 잇다. 그래서 ICT가 융합된 스마트 헬스케어, 그리고 IT헬스케어 패러다임 속에 놓였기에 이러한 변화의 트렌드를 이해하고 스스로 혁신을 이루어야 한다.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