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14%를 넘어서며 우리나라도 ‘고령 사회’로 접어들었다. 2000년도에 7.2%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지 18년 만이다. 독일과 일본이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 사회로 전환되는 데 각각 40년, 24년이었음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매우 빠른 편이다.
여기에 COVID-19의 확산 우려로 언택트(비접촉)적 소비경향이 확산되는 가운데, 세계적으로 시장의 핵심 소비자층을 중∙장년층이 차지하고 있다. 건강하며 활동적인 중∙장년층을 뜻하는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가 가속화되는 인구구조 변화와 더불어 시장의 ‘큰 손’으로 부상한 것이다. 액티브 시니어란, 미국 시카고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인 Bernice Neugarten이 “오늘의 노인은 어제의 노인과 다르다”라고 설명한 것에서 유래했으며, 특히 뉴가튼 교수는 55세 정년을 기점으로 75세까지를 젊은 노인(Young Old‧YO)이라고 구분하여 이들의 특성과 잠재성에 주목하였다.
액티브 시니어 계층의 등장
이들은 은퇴 후에도 건강과 외모를 꾸준히 관리하는 것은 물론, 육체적, 경제적, 정신적 측면에서 활기차며 여가와 문화생활에서 적극적인 소비활동을 즐기는 형태가 특징이다. 특히 자기계발과 사회적 문제에도 관심이 많고 연금과 자녀부양에 의지하는 수동적 이미지의 ‘실버 세대’와 뚜렷이 구별된다. 영국 시사주간지 The Economist는 ‘The World in 2020’에서 “65~75세 젊은 노인(YO)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며 “이들의 선택이 앞으로 소비재, 서비스, 금융시장을 뒤흔들 것”이라고 전망했다(그림1).
우리나라에서는 산업화의 주역이자 고속성장을 이끌었던 ‘오팔 세대’가 주목받고 있다. 오팔(OPAL)이란, ‘Old People with Active Lives’의 약자로, 신중년이자 베이비부머 세대를 대표하는 58년생을 뜻하기도 한다. 한국전쟁 이후인 1955년에서 1963년까지 9년간 출생한 1차 전후세대의 첫 그룹인 1955년생이 소위 ‘젊은 노인’으로 편입되는 2018년이 인구∙경제 변화의 시작점이며, 2011년 전체인구의 11%였던 65세 비율은 2020년 15.7%, 2025년에는 20.3%로 꾸준히 증가할텐데, 현재의 전체 노인 수에 버금가는 규모이기에 불과 9년후에는 지금의 노인인구가 2배로 증가한다는 실로 엄청난 변화에 직면한 것이다(그림2).
이를 당연지사로 여길 수 있겠으나, 얼마전 까지만 해도 노인이란 다양한 만성질병에 시달리는 힘겨운 부양의 대상이요, 사회 전체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사실에, 고령화 문제를 접하는 대부분의 선진국은 ‘저출산 고령화’란 사회적 변화가 미래 국가의 노동력 부족과 내수시장의 감소를 우려했었다.
하지만, 불과 10여년 전부터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기를 직접 경험한 선진국에서부터 시니어 세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여기에 4차 산업혁명의 물결까지 빠르게 확산되면서 산업화∙정보화 시대의 성공경험과 전문성, 사회적 네트워크 등 막강한 경쟁력을 갖춘 시니어 그룹이 노동 및 소비시장에서 재평가를 받으면서, 새로운 소비군이자 기회요인으로 여기는 움직임이 설득력을 얻고있다.
<그림2>. 2020년 이후 우리나라 노령층의 규모
액티브 시니어 비즈니스 시대의 도래
우리나라의 생산연령 인구는 이미 감소세로 전환됐으며, 정년이나 퇴직 후 일선에서 은퇴한다는 통념까지도 급격히 바뀌고 있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고령층(55~79세) 3명 중 2명(64.9%)이 여전히 일하기 원하며 구직을 희망하는 연령은 평균 73세까지라고 한다. 결국 사회 전반적으로 노인층이 소비주체로서의 비중은 확대될 것인데 이는 사회 전체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쓰는 돈보다 노인들이 쓰는 돈의 규모가 더 커진다는 뜻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2015년 보고서에 의하면, 50세 이상 인구 중 액티브 시니어가 16~20%를 차지하는데, 50대(18.9%)와 60대(16.7%)는 2~3%p 격차에 불과하지만 70대는 반으로(8.9%)으로 줄어든다. 50~60대가 비슷한 분포인 것은 베이비부머라는 ‘세대적 특수성’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전후 출생한 이들은 기존 고령층에 비해 학력이 높고, 문화적 개방성도 크며, 개인주의적인 성향도 강한 편이고, 자신을 위한 소비에도 적극적이다.
2015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의 분석자료에 따르면, 액티브 시니어들은 월평균 신용카드 사용액은 177만원으로 30·40대보다 훨씬 많았고, 50~64세 일반 시니어의 115만원과 비교해도 두드러진다. 이들은 지난 1년간 26%가 해외여행을 다녀왔으며(타 연령층 대비 2배) 28%는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추구하며, 67%가 외모를 꾸미기 위해 지출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응답해 57~65%로 응답했던 30~40대보다도 높았다.
현재 액티브 시니어라고 부르는 집단의 등장은 단지 특수하게 형성된 소비자 집단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고, 여러가지 변화에 따른 자연스런 사회적 현상으로 바라보는게 옳다. 그렇다면 앞으로 약업계와 기업들은 어떻게 액티브 시니어 시대를 준비해야 할까?
시장세분화부터 다시 시작하자
노년층 소비자를 대상으로 면밀한 시장세분화(Market Segmentation)가 절실하다. 실제로 고령 사회에서 촉망받는 산업, 사업, 품목으로는 용구∙용품, 주거∙교통, 유통∙배달, 여가∙여행, 문화컨텐츠, 금융상품, 요양∙복지, 커뮤니티케어 서비스, 호스피스∙웰다잉 등 매우 많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가 진행중인 일본의 사례도 참고할 만 하다. 단카이 세대(한국의 베이비부머 세대에 해당) 은퇴 초기엔 시니어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이들이 65세를 넘어 본격적으로 연금수혜를 받기 시작한 2012년부터 고령층이 내수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했고 2013년부터 60~69세 가구의 소비증가율이 일본 전체 소비증가율을 지속적으로 앞지르고 있다. 일부 흥미로운 현상도 있다. 인구감소와 함께 신차 판매량이 급격히 감소하는 일본의 자동차 시장에서 유일하게 매출이 성장하는 차종은 스포츠카이다. 자녀양육을 끝낸 50대 이상 연령층에서 스포츠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인데, 일본 자동차업계는 이러한 트렌드에 맞추어 스포츠카 모델을 다양화하여 장년층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한편, 새로운 시장생성을 환영하면서도 액티브 시니어를 포함한 노년인구가 앞으로 경제주체로서 역할을 지속할 수 있도록 사회적 제도개선과 환경구축도 필요하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일본가계의 경제구조 변화 및 시사점’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도 일본처럼 노년인구의 소비증가가 예견되지만 우리나라의 고령층은 소득수준이 낮고 금융자산이 빈약하여 시간이 갈수록 소비여력이 위축될 가능성을 지적했다. 이것은 시니어 산업과 시장이 예상과 달리 활성화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며 기업이 시장세분화와 목표고객, 상세전략 없이 무작정 노년층의 수적 증가에만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 금융투자업계 전문분석에 따르면, 체감할 정도로 유통·소비재 분야의 변화가 없어 보일뿐 시니어 산업의 성장은 분명하며, 특히 의약품, 건강관리, 요양산업 부문은 연평균 10% 이상씩 성장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비교적 체감이 쉬운 유통·소비재 시장 쪽에서 성장이 더디게 보이는 것은 시니어 산업 전체에서 유통·소비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은 이유이겠지만 어쩌면 이미 시장에 반영됐는데도 너무 익숙해서 잘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액티브 시니어를 주목하자
고령 사회로 진입하면서 액티브 시니어 비즈니스의 성장 기대가 커지고 있다. 물론 아직 구체화 된 것은 많지 않다. 이 비즈니스는 건강관리, 헬스케어, 의약품, 유통∙소비재의 다양한 부분이 어우러진 복합형 산업이므로 약업계 관련 기업들이 전략적으로 대비해야 할 영역이다.
액티브 시니어 비즈니스는 당장 큰 수익을 내는 분야는 아니다. 그래서 기업들이 관련 사업에 진출하거나 규모의 확대에 조심스러운 발걸음이지만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이 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2026년 예상·통계청 전망)하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지금부터 액티브 시니어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적절한 대응한 개인과 기업만이 초고령 사회에서 진정한 승자이자, 초고령화가 암울한 잿빛 시대가 아닌, 고상하고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는 인구 다수의 니즈를 충족시켜주는 사회적 기여의 주역이 될 수 있다.
또한, 이처럼 제약∙바이오, 헬스케어, 유통분야는 물론이고, 교육당국과 직능단체들도 2022년부터 시작될 6년제 교육과정, 실무실습, 국가시험, 인력양성에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잘 적응하는 우수한 인력을 양성해 주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