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한국표준산업분류체계 제10차 개정판이 통계청에 의해 발표되었다. 이는 생산단위 수행 활동을 유사성에 따라 21개 대분류, 77개 중분류, 232개 소분류, 495개 세분류, 1,196개 세세분류 등 5단계로 분류한 것인데 산업통계자료의 정확성과 가용성을 높이기 위해 국가의 모든 통계작성기관은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여기서 산업이란 ‘유사한 성질을 갖는 활동에 종사하는 생산단위의 집합’이며, 산업활동이란 ‘각 생산단위가 노동, 자본, 원료 등을 투입하여,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 또는 제공하는 일련의 활동과정’을 뜻한다.
보건복지부 산하기관 중 국민의 보건의료영역을 산업으로 육성, 발전시키는 업무를 기획, 지원하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KHIDI)’이 있다. 이 기관의 존재목적(mission)은 ‘보건산업 국제경쟁력 강화와 국민보건 향상’이며, 정체성(vision)은 ‘보건산업의 미래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진흥 전문기관’이다. 주요 추진목표는 (1)국민건강 중심 보건산업 육성, (2)보건산업 글로벌 경쟁력 강화, (3)보건산업 혁신성장생태계 조성, (4)사회적 가치기반 경영체계의 구축이다(그림1). 비슷한 맥락에서, 복지부 산하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KOHI)의 6가지 교육분야는 (1)글로벌 헬스케어, (2)병원, (3)제약, (4)화장품, (5)의료기기, (6)4차산업 및 특화 부문으로서 보건산업진흥원의 육성대상 영역과 거의 일치한다.
그림 1. 한국보건산업진흥원 10대 보건의료기술(출처: https://www.khidi.or.kr/)
그렇다면 보건산업진흥원과 보건복지인력개발원이 주관하는 ‘보건산업’의 범주에 약국이 포함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필자가 약업의 혁신방안을 연구하면서 늘 안타까운 점은 아직도 약업이 독립된 산업군으로 인정받지 못하며 육성대상조차 아니란 사실이다. 자, 그럼 계속해서 경영전략수립을 위한 산업환경 분석에 대해 알아보자.
산업환경 분석이란?
경영전략 수립 시 산업환경을 분석하려면 ‘산업(industry)’에 대한 개념정립이 필요하다. 산업에 대한 명확한 경계선은 없다. 표준산업분류체계는 정부의 통계조사를 위한 도구이지 기업간 경쟁영역이나 범위를 정확히 표현하지 못한다. 하버드대 마이클 포터 교수는 “같은 시장 안에서 경쟁하는 일련의 회사들 또는 조직들을 산업”이라고 정의했다. 그래서 산업환경이란, 경계선을 그려놓은 산업테두리 안에 존재하는 여러 기업에게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뜻하며, 이 요인을 분석하는 행위가 산업환경 분석인데, 어떻게 산업이 분류되는지 아는 것보다 모형이나 기법 등을 활용하여 상호작용을 규명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1 SCP Model
SCP란 구조(Structure), 행동(Conduct), 성과(Performance)를 줄인 말로써, 산업내 경쟁자 수, 진입장벽, 퇴거장벽 같은 구조가 기업(약국)의 행동과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모델인데, 주로 기업의 경쟁환경 위협분석에 이용한다. ’구조’란 경쟁기업의 수, 제품의 유사성, 진입과 퇴거의 원가 등을 포함하며, ‘행동’이란 경쟁우위를 획득하기 위한 기업전략을 포함하고, ‘성과’란 기업수준(경쟁우위, 경쟁등위, 경쟁열위)과 사회수준(생산과 분배의 효율성, 고용수준, 진보)을 포함한 개념이다.
우리나라 약국모델은 위치, 면적/규모, 레이아웃, 경영방식, 수익구조, 제품/서비스 등의 기준에 따라 다양하며 각 모델을 정량적 데이터에 근거하여 연구한 경우도 많지 않아 표준화된 모델구조가 취약하므로 경영학적 이론체계나 사례분석의 신뢰성도 낮다.
2 5-forces Model
이것은 5가지 경쟁요인이 증가하면 기업의 수익도 감소하며 더욱 위협적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아래 5가지 요인을 열거했는데(그림2), 이미 잘 알려진 SWOT분석법이 위협-기회, 강점-약점의 비교분석이라면, 5-forces model은 5가지 세력의 포지셔닝 상태를 분석하는 방법이다.
1) 신규 진입자의 위협(Threat of New Entrants)
신규 진입자가 지닌 새로운 능력은 기존 산업에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가격경쟁이나 원가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기존기업의 수익성이 낮아진다. 이를 막기 위한 신규 진입장벽 요인에는 규모의 경제, 제품 차별화, 원가우위, 정부정책, 브랜드, 교체비용, 소요자본, 유통채널 접근, 투입 원재료, 디자인, 예상되는 기존 경쟁자의 보복 등이 있다.
2) 구매자의 협상력(Buyer's Bargaining Power)
구매자는 가격인하 및 품질제고 압력 혹은 판매경쟁자간 수익성을 저하시킴으로써 기존 기업과 경쟁한다. 구매자의 협상력을 결정하는 2가지 요소는 (1)구매자의 가격에 대한 민감도, (2)공급자에 대한 구매자의 상대적 교섭능력인데, 구매자의 협상력 결정요인은 구매비중, 구매규모, 교체비용, 구매자의 정보력, 후방통합능력, 대체품의 존재, 가격민감도, 제품차별성, 브랜드, 품질 및 성능효과에 관한 구매영향정도, 구매자 이익, 구매의사결정자의 인센티브를 고려할 수 있다.
그림 2. 마이클 포터의 5-forces model의 5-forces factors
3) 기존 경쟁자간 경쟁(Rivalry Among Existing Competitors)
이는 경쟁자들이 경쟁위치(competitive position) 개선에 대한 압력을 느끼거나, 그 기회를 찾을 때 발생한다. 경쟁양상은 가격경쟁, 광고 및 홍보 전쟁, 제품출시 등으로 표현되며, 대부분의 산업에서 경쟁강도와 산업 전체수익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그 산업의 시장참여자(기존 경쟁자)사이의 경쟁관계이다. 이들의 경쟁강도 결정요인에는 산업성장, 고정비, 과잉 생산능력 및 설비, 제품차별성, 브랜드, 교체비용, 집중과 균형, 정보의 복잡성, 경쟁자의 다양성, 이해관계자, 철수장벽 등이 있다.
4) 공급자의 협상력(Bargaining Power of Suppliers)
공급자는 가격인상이나 품질저하를 위협하여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며, 강력한 협상력을 가진 공급자들일수록 더 이상 원가를 상승시킬 수 없을 정도로 수익성을 잠식할 수 있다. 공급자의 협상력 결정요인에는 투입 원재료의 차별성, 교체비용, 대체 원재료의 출현, 공급자 집중도, 공급물량의 규모, 총구매가 차지하는 상대적 비용, 원가 또는 차별화에 관한 원재료의 영향도, 전후방 통합 위협 등이 있다.
5) 대체재의 위협(Threat of Substitute Product or Services)
대체재는 기업이 받아들일 정도의 가격상한선을 설정함으로써 기존 기업의 잠재적 수익을 제한시킨다. 만일 산업의 수익성이 구매자가 그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기꺼이 지불할 가격에 의해 결정된다면, 산업의 수익성은 대체재 유무에 따라 매우 큰 차이가 난다. 왜냐하면, 대체재가 많을수록 기업이 자신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높은 가격을 매길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대체재로 인한 위협을 결정하는 요인에는 대체재의 상대적 가격 및 성능효과, 교체비용, 대체재에 대한 구매자의 성향, 대체품의 특성 등이 있다.
동네 철물점은 못, 철사, 삽, 테이프, 전구, 공구를 판매하는 곳이다. 하지만 다양한 철물, 합성수지, 전동기구를 취급한다고 철물점을 철강산업이나, 화학산업, 또는 전자산업에 속한다고 여기지 않고 오히려 ‘소비재 유통산업’에 속한다고 판단한다. 더구나 근래에는 대형쇼핑몰, 저가형소비재유통점, 인터넷쇼핑몰이 혁신전략과 융합기술을 바탕으로 동네 철물점의 물품을 취급하면서 강력한 경쟁자이자 대체재로 등장하였다.
약국생태계가 국민의 보건의료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고 실제적이지만, 관련 정책과 법안을 다루는 이해관계자에게 약국이란 ‘보건산업’의 구성원이 아니란 것도 현실이다. 이에 대해 문제인식을 가졌던 필자가 보건산업진흥원의 제약바이오산업 진흥정책을 총괄하던 지인에게 왜 복지부나 진흥원은 전국의 2만3천여개 약국집합체를 발전시킬 정책개발과 연구개발지원금을 할당하지 않는지 문의했었다.
지인의 대답은 간단했다. 행정적, 실무적으로, 약국은 보건산업의 구성요소가 아니며, 국가의 미래 성장동력산업으로 육성 받기에 합당한 산업생태계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약국 스스로 요건을 충족하면서 국민보건의료나 국가경제에 미칠 기대효과를 적시하여 정부측에 지원을 요구할 수 있는데, 이상하게도 약국은 보건산업 속 다른 산업군처럼 산업진흥 및 육성정책의 수립이나 지원금 요청을 공식적으로 한번도 제안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의료, 제약, 화장품, 식품/건기식, 의료기기 산업계는 4차 산업혁명,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란 용어가 등장하기도 전부터 연구중심병원, 의료관광, 스마트 헬스케어, 노인중심병원, 인공지능활용 신약개발, 바이오시밀러 제약기업육성, 의료기기 국산화 개발같은 목표를 도출하여 유무선 통신사, 인터넷 포털사 같은 ICT기업과 연계해서 병원의료전산화사업, 인공지능중심의료기술사업, 의료빅데이터 활용기반구축사업, 의료전산망 표준화/통합화사업, 의료기기 및 의료로봇 개발사업 등을 추진했고, 심지어 지난 주 정부가 발표한 뉴딜 사업의 수혜자로 선정되기에 적합한 인프라와 역량을 지속적으로 갖춰왔다는 점이 약업계와 매우 대조적이다.
올해 정부의 과학기술 연구개발지원 예산규모가 24조원이다. 이와 별도로 디지털 뉴딜(Digital New Deal), 그린 뉴딜(Green New Deal) 등의 정책추진에 76조원을 2025년까지 추가로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약국이 조제와 복약지도, 건강관리라는 전통적 영역에 머물고 있을 때, 정부와 국민은 약국을 산업으로 인정하거나 육성시킬 합당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국민은 국제경쟁력을 가진 R&D 역량과 신제품/서비스, 네트워크/플랫폼 기반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여 보건산업 생태계 에 기여할 미래비전과 가능성을 제시해야만 비로소 약국을 보는 관점이 변화될 것이다.
한국병원약사회는 지난 30년간 약료전문성을 심화시키는 데 기여했고 병원산업의 미래발전전략과 궤를 같이하는 중이다. 또한, 작년에 출범한 ‘한국산업약사회’는 4,500여명의 산업약사가 정책적 혜택과 교육개선을 추구하되, 산-학-업 협력체제를 구축하여 산업약사 직역을 공고히 하고, 전문성을 심화시키며, 인적네트워크를 통한 이익창출 및 공유한다는 비전을 제시하였다. 이 두 약사회의 공통점은 보건산업인 의료산업과 제약산업 안에서 활동하며 국내외 큰 흐름이 만들어 내는 기회를 포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기술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약국은 ‘보건산업’의 범주가 아닌, 단지(한약을 제외한) 의료제품을 소매하는 유통산업의 변두리에 머물러있으면 안된다. 전국의 약국이 국민의 건강을 위한 중추산업으로 육성되려면, 헬스케어에 특화된 ICT기업과 제휴하여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도록 플랫폼 역할을 가진 사업모델로 신속히 전환되어야 한다. 정부가 현행 ‘약사법’을 ‘의약품법’으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 중이란 소식도 들린다. 옛말에 기술이 가장 먼저 변하고, 이어서 그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이 변하며, 제도와 법률은 가장 늦게 변한다고 했다. 약업이 법률과 제도가 변화한 이후까지 정체되어 있지 않고 가장 빨리 변화하는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보건산업에 편입되는 것은 물론, 미래 변화를 선도할 수 있으면 좋겠다.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