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정재훈의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약이야기
<172> 술 마신 다음 날 불안한 이유
정재훈
입력 2025-02-19 08: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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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약사

안전한 음주량은 존재하지 않는다. 음주량이 많을수록 암 위험도 계단을 오르듯 비례하여 늘어난다. 중년 성인이 평소보다 음주량을 늘리면 암 위험이 증가한다.

2022년 해외학술지 JAMA Network 발표된 국내 연구에서 2009년과 2011년 국가건강검진에 참여한 40세 이상 성인 남녀 451만 3746명을 추적 관찰한 결과이다. 음주는 7가지 유형(구강암, 인두암, 식도암, 대장암, 간암, 후두암, 여성 유방암)의 암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09년에서 2011년 사이에 음주량이 증가한 것으로 보고한 참가자들은 이전의 음주 습관을 유지한 참가자들에 비해 알코올 관련 암의 발병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검진에서 비음주자였던 사람이 2011년 검진에서 저위험 음주자가 되면 암 발병 위험이 3%, 중위험 음주자가 되면 10%, 고위험 음주자가 되면 34%까지 높아졌다. 치매 위험, 사망률도 음주로 인해 높아진다.  

음주의 위험을 알면서도 술을 계속 마시게 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술 한 잔이 스트레스,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알코올이 체내로 들어오면 우리 뇌는 감마아미노부티르산(GABA)이라는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증가시키고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의 분비를 억제한다. 술을 마시면 긴장, 불안감,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평온한 느낌이 들게 되는 원리이다.

하지만 알코올과 불안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약간의 음주가 주는 유익은 연이어 술을 마시면 반대쪽으로 뒤집혀 불안을 자극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다. 과다 음주로 인해 알코올이 GABA의 작용을 계속하여 강화하면 뇌는 이러한 알코올의 억제 효과에 대응하기 위해 GABA를 더 적게 만들고 글루타메이트의 활성을 증가시킨다.

이렇게 뇌가 적응한 상태에서 갑자기 술을 안 마시게 되면 균형이 깨지면서 글루타메이트 활성이 우세해져서 금단 증상이 나타난다. 또한 뇌가 과도하게 흥분되어 공황발작과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매일 같이 과음하는 사람이 간혹 술 마신 다음 날 매우 불안해지는 이유다.

원래 불안 장애나 공황 장애가 있는 사람일 경우에는 이런 위험이 더 크다. 불안 장애가 있는 사람은 과음을 반복하기 쉽고 과음은 불안 장애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아캄프로세이트(acamprosate)와 같은 약물은 이럴 때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캄프로세이트는 과도한 글루타메이트 활성을 감소시키고 GABA의 작용을 강화하여 뇌의 흥분성/억제성 신경전달물질 시스템의 균형을 회복시킨다.

아캄프로세이트는 뇌의 글루타메이트 수용체인 NMDA 수용체를 억제하여 글루타메이트가 과도하게 작용하는 것을 막아준다. 아캄프로세이트를 꾸준히 복용 중일 때는 뇌의 GABA 시스템이 안정화되어서 술을 마셔도 평소보다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가 덜하게 느껴질 수 있다. 술을 마셔도 예전처럼 즐겁지 않으니 술을 덜 마시거나 금주를 지속하기 쉬워진다. 비슷한 효과를 내는 약으로 날트렉손도 자주 사용된다. 평소 술에 대한 갈망이 큰 사람이 특히 날트렉손에 더 잘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술을 적당히 마시면 건강에 약간의 유익을 준다고 생각했다. 가벼운 음주를 즐기는 사람이 술을 아예 마시지 않는 사람이나 과음하는 사람보다 치매 위험이 낫다는 식으로 음주와 위험에 J자 형태의 상관성이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멘델리안 무작위 분석을 이용한 2024년 중국 연구에서는 가벼운 음주를 포함하여 모든 수준의 음주가 치매 위험 증가와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음주량이 많을수록 치매 위험이 비례하여 증가했다. 가벼운 음주도 가볍지만 여러 방면에서 건강상 위험을 높인다는 게 최근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알코올 문제를 겪는 한국인은 무려 134만 명에 이른다. 보건복지부의 2021년 국민 정신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알코올 남용과 의존증을 포함한 국내 알코올 사용장애 1년 유병률 2.6%에 근거한 추산이다. 하지만 실제로 치료를 받는 사람은 이들 중 10%도 되지 않는다. 금주나 절주가 개인의 노력만으로 불가능할 때는 전문가의 상담과 약물 치료가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더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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