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정재훈의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약이야기
<145> 새로운 우울증 치료제 이야기
정재훈
입력 2023-12-15 09: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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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면 전에 잘 모르던 것을 알게 된다. 1970년대부터 MSG가 뇌에서 흥분독소로 작용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글루탐산염(glutamate)이 뇌에서 흥분성 신경전달물질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시작된 이야기이다. 이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연구하면 할수록 MSG가 뇌에 해를 입힐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사람의 뇌는 그리 만만하지 않다. 뇌는 글루탐산염을 스스로 만들어서 쓴다. 먹어서 섭취한 글루탐산은 혈관-뇌 장벽(Blood-Brain Barrier)을 거의 통과하지 못하므로 뇌세포에 해를 줄 수 없다. 뇌는 바보가 아니다. 글루탐산염은 뇌 입장에서 중요한 물질이므로 직접 만들어 쓴다.

사실 뇌에서 가장 풍부한 유리 아미노산이 글루탐산이다. 하루 MSG 150,000mg을 매일 6주까지 먹은 사람에게도 간혹 메스꺼움이 나타나는 정도로 가벼운 부작용에 그쳤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라면 한 봉지에 들어있는 MSG가 50~100mg이다. 하루 라면 스프로 치면 1,500~3,000개 분량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다. 그 정도로 많은 MSG를 먹도록 한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게 놀랍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먹어도 뇌 관련 부작용이 없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음에도 MSG가 흥분독소라는 주장을 꺾지 않는 이들이 있다. 놀랍지 않다. 사실이 밝혀져도 고집을 꺾지 않는 사람은 인류 역사상 늘 존재해 왔다.

우울증 환자의 대뇌피질에서는 글루탐산염 수치가 낮게 나타난다. 먹어서 적당량의 글루탐산염을 뇌로 보낼 수 있다면 우울증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글루탐산염을 그런 용도로는 개발할 수 없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뇌가 바깥의 글루탐산이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다른 길을 찾았다. 글루탐산염이 가서 결합하는 곳 중 하나인 후시냅스 NMDA 수용체에 대항제(antagonist)로 작용하는 약을 찾아나선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덱스트로메토르판(줄여서 DM)이라는 기침약 성분이다. 1958년 미국 FDA에서 기침을 억제하는 약으로 승인된 약이니 역사가 제법 길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종합감기약이나 기침감기약에도 이 성분이 들어있다. 이 약물은 뇌신경세포에서 글루탐산염이 더 많이 방출되도록 하여 우울증 증상을 완화해주는 효과가 있다. (정확한 기전은 아직 불분명하며 여러 기전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평소에 감기약을 먹고 기분이 나아지기는 어렵다. DM은 CYP2D6라는 약물대사효소에 의해 빠르게 약효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이 때 약물의 대사를 방해하는 다른 약물을 함께 넣어준다면 약효 지속시간을 늘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기초해 만든 신약이 2022년 8월 미국에서 승인됐다. 기존의 우울증 치료약 중 하나인 부프로피온을 DM과 함께 묶어 서서히 방출되도록 만든 제형으로 DM의 효과가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만든 약이다.

기침약 성분을 이용한 개량신약 복합제의 장점은 우울증 증상이 빠르게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우울증 치료제는 부분적으로 효과가 나타나는 데 1-2주 이상 시간이 걸리며 최대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4-6주가 걸린다. 이에 반해 DM/부프로피온 복합제(Auvelity)의 경우 임상시험에서 약을 먹고 1주일 만에 효과가 나타났다. 뇌 신경세포 간 연결을 회복시키며 작용 기전이 기존 약물과 다른 부분이 있어서 현재 우울증 치료약이 잘 듣지 않는 치료 저항성 우울증 환자들에게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아직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임상 연구가 부족하며 국내에서는 승인되지 않은 약이다.

아직도 구충제가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양 믿음을 거두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구충제가 신비의 명약이지만 돈이 안 되니까 정보를 숨긴다는 음모론도 횡행한다. 하지만 구충제에 정말 기생충 박멸 이상의 효과가 있다면 제약회사가 방치할 이유가 없다. 65년 된 기침약 성분(DM)도 새로 효과를 밝혀내기만 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개량신약을 만들어 출시한다. 구충제에 대해 조용한 이유는 간단하다. 기대한 만큼의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 밝혀진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맹목적 믿음인지 되돌아보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아마도 세상은 지금보다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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