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정재훈의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약이야기
<144> 코감기약 성분이 퇴출 기로에 선 이유
정재훈
입력 2023-11-22 09: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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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없는 걸 효과없다고 하는 데 20년이 걸렸다. 코감기약 이야기다. 지난 9월 미국FDA 자문위원회는 코막힘 완화에 사용되어온 먹는 감기약 성분 페닐에프린이 효과없다는 만장일치 결론을 내렸다.

페닐에프린은 미국에서 지난 50여 년 동안 의사의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판매되어온 약이다. 미국에서 이 성분이 들어있는 약만 최소 250종에 작년 판매액이 2조 3천억 원(18억 달러)에 이른다. 국내 유통 중인 감기약 중에도 이 성분이 들어있는 제품이 상당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론이 도출된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이 문제는 제대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기억해야할 점은 미국에서 판매 중인 일반의약품이 생각보다 매우 느슨한 잣대에 따라 승인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미국 식품의약청(FDA)이 창설된 후 초창기에는 약의 효과는 물론이고 안전성에 대해서도 제대로 규제가 이뤄지지 않았다.

1937년 항생제 물약에 독성 용매를 사용하여 사망자가 107명이나 발생하는 비극이 벌어지고 나서야 1938년 식품-의약품-화장품 규제법령(Food, Drug, and Cosmetic Act)이 의회에서 통과됐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주로 약품의 안전성에 방점을 찍고 효과는 뒷전으로 밀렸다. 1962년 입덧완화약, 수면제로 판매되던 탈리도마이드로 인해 만 명이 넘는 기형아가 태어나는 비극이 일어나면서 비로소 개정안이 나온다. 안전성에 더해서 의약품이 반드시 효과가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규제는 여전히 느슨했다. 2006년부터 페닐에프린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미국 플로리다 대학교 명예교수이며 약사인 레슬리 헨델레스는 1970년대 초 기준에 못 미치는 일부 약품이 퇴출된 걸 제외하면 “지난 50년 동안 효과가 없다고 시장에서 퇴출된 약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헨델레스가 페닐에프린의 효과에 대해 처음 의문을 제기했던 때만 해도 결론은 지금과 달랐다. 2007년 12월 미국 FDA 자문위원회는 페닐에프린 10mg이 코막힘 완화에 효과가 있다고 찬성 11대 반대 1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페닐에프린에 대한 임상연구 자료가 부족하니 새로운 연구가 필요하며 더 고용량인 25mg이 효과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제약회사 연구에 따르면 40mg으로 용량을 네 배로 늘려도 효과가 없었다. 정확히 말해 딱 플라세보(위약)만큼만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대체 왜 2007년에는 효과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인가.

당시에는 비강기도 저항이라는 방법으로 코에서 공기 흐름이 어떤지 보는 방식을 약효의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약효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것은 환자의 증상 완화를 척도로 삼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기계적으로 콧속 공기 흐름을 보면 약간의 효과가 있어보였지만 환자 입장에서 코막힘 증상 완화 정도는 약을 먹었을 때나 가짜약을 먹었을 때가 별 차이가 없었단 얘기다. 이렇게 되는 것은 페닐에프린이 먹는 약으로서 흡수가 잘 안 되기 때문이다. 장에서 이미 대사되어 실제로 전신흡수되는 약효 성분은 38% 밖에 되지 않는다. 코에 직접 뿌리는 약일 때나 수술시 저혈압을 치료하기 위해 주사로 사용할 때는 효과적이지만 먹는 약으로 사용할 때는 별 효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집에 있는 페닐에프린 함유 감기약을 버려야 하는 건 아니다. 효과가 없을 뿐 안전하긴 하다. 나도 이 글을 쓰기 전에 페닐에프린과 아세트아미노펜을 함유한 감기약을 여러 번 테스트해봤다. 아주 약간 코가 덜 막히는 느낌은 있지만 미미하다. 다만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이 들어있으니 진통 효과는 난다.

아직 최종 결론이 난 건 아니지만 이제야 겨우 페닐에프린이 퇴출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FDA 인력이 확대되고 일반의약품도 처방약처럼 효과와 안전성에 대해 더 엄격한 검증을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이다. 다음 타자는 어떤 약 성분이 될지 지켜봐야할 일이다.

이번 기회에 하나 더 기억할 점이 있다. 미국은 건강기능식품에 대해서도 아주 느슨한 기준을 가진 나라이다. 미국FDA는 식이보충제를 따로 승인하지 않는다. 1994년 식이보충제에 대한 법안이 통과되고 나서부터는 질병을 치료, 진단, 예방, 치유한다는 문구만 안 들어가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식 문구는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쓸 수 있는 나라이다. 그런데도 미국FDA를 내세워 제품을 홍보하는 국내 광고가 넘쳐난다. 그런 제품은 믿고 걸러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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