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정재훈의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약이야기
<137> 발효식품 팩트체크
정재훈
입력 2023-07-26 10:1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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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해도 다 받아주던 시절이 있었다. “서양 사람의 혓바닥에는 전혀 발달돼있지 않은 맛난 맛 – 곧 발효미 지각미역이 우리 한국사람에게 가장 발달돼있다”는 이야기가 그렇다. 과거 큰 인기를 끌었던 조선일보 이규태 칼럼 1987년 8월 7일자에 나오는 글이다. 서양 음식에는 발효식품이 거의 없다시피 한데 한국인의 밥반찬은 대부분 발효식품이므로 한국인의 발효미 감지능력이 세계 최고라는 주장이 1985년부터 1997년까지 다섯 번 이상 반복됐다.

근거 없는 주장이다. 학계 추산에 따르면 세계인이 소비하는 음식의 1/3은 발효식품이다. 된장, 간장, 김치만 발효식품이 아니다. 빵, 맥주, 와인, 치즈는 전부 발효식품이다. 피클, 사워크라우트 같은 채소절임도 발효식품이다. 초리조, 살라미 같은 육가공품도 발효식품이다. 카카오를 초콜릿으로 만드는 과정에도 발효가 필수적이다.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유기산과 알코올은 음식의 보존성을 향상시킨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발효는 음식을 오래 보관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오래 둔 음식이 상한 줄 알았는데 먹어보니 탈나지 않고 오히려 맛이 좋아지는 발견을 통해 만들기 시작한 발효식품도 많았을 것이다. 발효식품은 세계 전역에서 두루 먹어 왔다. 동아시아 전역에 발효 생선, 발효 콩 식문화가 나타난다. 한국, 중국, 일본은 물론이고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에도 다양한 발효식품과 소스가 있다. 한국인의 발효미 감지능력이 가장 발달돼있다는 주장 역시 과학적 근거가 전무하다.    

특별히 한국인의 신맛, 짠맛 감지 능력이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는 없다. 그런데도 1990년대 사람들은 이규태 칼럼에 반복되는 틀린 이야기에 별일 없이 넘어갔다.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던 시절이었으니 우리가 최고라는 말이 솔깃했을 법하다. 하지만 숨겨진 또 하나의 이유는 발효의 냄새다. 방송에서 외국인이 한국 음식을 즐겁게 먹는 장면이 종종 비춰지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안 그랬다. 한국에 처음 방문한 외국인이 장류, 젓갈, 김치와 같은 발효식품을 맛보고 얼굴을 찡그리는 장면이 흔했다. 먹어보면 얼마나 맛있는데 저걸 모르나 싶었을 거다. 하지만 후천적으로 배워서 얻는 입맛이며 정확히 말해 냄새에 대한 선호도이다. 냄새를 더 잘 맡거나 감지하는 게 아니다. 대학시절 내 친구는 1996년 LA 공항 식당에서 샐러드에 끼얹은 블루치즈 드레싱을 처음 맛보고 그 냄새에 질려 이틀 동안 음식을 제대로 입에 대지 못했다.

발효된 음식의 냄새가 부패한 음식 냄새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게 아마도 그런 혐오의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막상 먹어보고 별탈이 없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되고 또한 냄새에 자주 노출되어 익숙해지면 거부감이 줄어들고 맛을 즐기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전적으로 특정 발효식품 냄새를 극복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유럽인이라고 전부 치즈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치즈 혐오에 대한 연구로 이그노벨상을 탄 장-피에르 로예트에 따르면 프랑스인 11.5%가 치즈 냄새를 혐오한다. 치즈가 상한 음식으로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음식이 아닌 어떤 것으로 보일 정도라는 거다.

하지만 막상 먹고 나면 발효식품이 속에 더 편안하다. 미생물에게 소화의 일부를 외주로 주어 미리 음식의 일부를 소화시킨 뒤여서 그럴 수 있다. 흥미롭게도 발효에 해당하는 영어단어 fermentation은 끓인다는 뜻의 라틴어 fervere에서 왔다. 발효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스로 인한 거품이 액체가 끓을 때와 비슷하게 보이는 데서 착안한 말이다. 발효식품은 원래 음식보다 소화가 잘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우유를 마시면 속이 불편한 유당불내증이 있는 사람도 대개 요거트나 치즈는 어느 정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유당이 전부 발효되는 것은 아니고 일부 남아있어서 유당불내증이 심한 사람은 치즈나 요거트를 먹어도 배가 아플 수 있다.) 미생물 발효로 비타민, 항산화물질, 항염증물질 등의 건강에 유익한 기능성 성분이 생겨난다. 2021년에는 발효식품을 자주 먹으면 장내 미생물군집의 다양성을 늘리고 염증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우리만 발효식품을 먹는 건 아니지만 다양한 발효식품이 세계인의 건강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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