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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모양으로 약을 판단하지 말자. 25년 전 어느 날 내가 입에 거품을 물고서 몸으로 배운 교훈이다. 약국에서 발포정을 씹어 삼켰던 것이다. 변명하자면, 향긋한 과일향의 납작한 알약은 새내기 약사였던 내 눈에는 츄어블 비타민제처럼 보였다. 미리 물에 녹여서 마시는 대신 알약을 씹어 삼키고 물을 마시면 마찬가지일 듯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발포정 속 탄산수소나트륨은 위산과 만나 쉴 새 없이 이산화탄소 기체를 만들어냈고, 꿉꿉한 거품이 식도를 타고 올라와 입 속을 채웠다. 약국에 누가 오기라도 할까 걱정하며 물을 더 마셔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입 속 거품이 전부 사라지기까지는 삼사 분 정도 시간이 더 걸렸다.
그날 내가 발포정을 씹었던 건 약간의 게으름과 호기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알약을 삼키기 어려워서 부득이하게 씹어 삼키거나 가루로 만들어 먹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알약을 갈아 먹어도 될까? 답은 약마다 다르다. 코팅하지 않은 일반 정제는 가루로 만들거나 씹어 먹어도 무방하다. (대신 맛은 보장할 수 없다.) 여기에도 예외는 있다. 골다공증 약처럼 식도 점막을 손상시킬 수 있는 알약은 씹거나 입에서 천천히 녹여 먹어서는 곤란하다. 서서히 약성분을 방출하도록 특별히 설계된 알약은 쪼개 먹으면 안 된다. 약성분이 한 번에 너무 많이 흡수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장에서 녹도록 특수하게 코팅한 알약도 갈면 안 된다. 그대로 복용해야 한다. 알약을 삼키기 어려울 때는 자르거나 갈아서 복용해도 되는지 약사에게 물어보는 게 좋다.
가루약을 복용할 때도 주의가 필요하다. 가루를 입에 털어 넣고 물을 마시는 방식은 위험하다. 식도로 들어가야 할 가루약이 기도로 들어가면 호흡 곤란이나 흡인성 폐렴을 일으킬 수 있다. 가루약은 복용 직전에 소량의 물에 타서 복용하는 게 좋다. 구강붕해정, 구강용해필름처럼 입에서 바로 녹는 약, 물 없이 사용 가능한 약도 있다. (다만 이들 제형이라고 약물 흡수가 더 빠른 건 아니다.) 알약을 삼키기 어려운 경우 붙이는 패치, 좌약, 또는 주사제를 쓸 수도 있다.
약을 물 대신 차나 커피와 함께 복용해도 될까? 답은 그때그때 다르다. 반드시 맹물이 아니어도 된다. 물 대신 다른 음료를 마셔도 괜찮다. 역삼투압 정수기로 거른 물이나 미네랄워터만큼이나 보리차나 옥수수차도 무방하다. 약을 위장까지 시원하게 쓸어내려 보내기 위해 한 컵을 쭈욱 마시면 된다. 너무 뜨겁거나 차가운 음료는 한 번에 마시기 어려우니 피해야 한다.
홍차나 커피와 같은 카페인 음료는 어떨까? 이 경우도 대체로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몇몇 예외가 있다. 복합진통제, 감기약처럼 카페인이 들어있는 약을 커피와 같은 카페인 음료와 함께 먹으면 한 번에 너무 많은 카페인을 섭취하게 되어 부작용이 심해질 수 있다. 커피를 여러 잔 마셨을 때와 마찬가지로 불안하거나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메스꺼운 증상을 경험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갑상선 호르몬제와 골다공증 약도 커피, 홍차, 콜라는 피하는 게 좋다. 이들 약은 카페인 음료와 함께 복용하면 흡수가 줄어들어서 약효가 떨어진다.
약을 과일 주스와 함께 마시는 것도 대개 무방하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고지혈증 치료제로 사용되는 스타틴 계열의 약을 복용 중일 때 자몽주스는 금기다. 자몽 속의 쓴맛 성분이 알약 한 알의 부작용을 2.5알 복용했을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높이기 때문이다. 자몽주스를 약과 다른 시간대에 마시는 것도 안 된다. 자몽주스가 약에 미치는 효과는 72시간까지 지속된다. 반대로 자몽, 오렌지 및 사과주스는 항히스타민제 펙소페나딘의 흡수를 방해하여 효과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앞서 스타틴의 경우와는 반대로 알약을 한 알 먹었는데, 효과가 반 알로 줄어들게 된다. 유기음이온 운반체(OATP)를 통한 약물 흡수를 저해하기 때문이다.
복잡해서 머리 아프다는 소리가 나올 만하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내가 쓸 약에 대해서만 알아 두면 충분하고, 잘 모를 땐 물어보면 된다. 약은 다 똑같지 않다. 저마다 사용방법이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약마다 그에 맞게 대해 주자. 용법과 주의사항을 잘 알고 쓰는 게 입에 거품을 무는 것보다 훨씬 나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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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모양으로 약을 판단하지 말자. 25년 전 어느 날 내가 입에 거품을 물고서 몸으로 배운 교훈이다. 약국에서 발포정을 씹어 삼켰던 것이다. 변명하자면, 향긋한 과일향의 납작한 알약은 새내기 약사였던 내 눈에는 츄어블 비타민제처럼 보였다. 미리 물에 녹여서 마시는 대신 알약을 씹어 삼키고 물을 마시면 마찬가지일 듯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발포정 속 탄산수소나트륨은 위산과 만나 쉴 새 없이 이산화탄소 기체를 만들어냈고, 꿉꿉한 거품이 식도를 타고 올라와 입 속을 채웠다. 약국에 누가 오기라도 할까 걱정하며 물을 더 마셔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입 속 거품이 전부 사라지기까지는 삼사 분 정도 시간이 더 걸렸다.
그날 내가 발포정을 씹었던 건 약간의 게으름과 호기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알약을 삼키기 어려워서 부득이하게 씹어 삼키거나 가루로 만들어 먹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알약을 갈아 먹어도 될까? 답은 약마다 다르다. 코팅하지 않은 일반 정제는 가루로 만들거나 씹어 먹어도 무방하다. (대신 맛은 보장할 수 없다.) 여기에도 예외는 있다. 골다공증 약처럼 식도 점막을 손상시킬 수 있는 알약은 씹거나 입에서 천천히 녹여 먹어서는 곤란하다. 서서히 약성분을 방출하도록 특별히 설계된 알약은 쪼개 먹으면 안 된다. 약성분이 한 번에 너무 많이 흡수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장에서 녹도록 특수하게 코팅한 알약도 갈면 안 된다. 그대로 복용해야 한다. 알약을 삼키기 어려울 때는 자르거나 갈아서 복용해도 되는지 약사에게 물어보는 게 좋다.
가루약을 복용할 때도 주의가 필요하다. 가루를 입에 털어 넣고 물을 마시는 방식은 위험하다. 식도로 들어가야 할 가루약이 기도로 들어가면 호흡 곤란이나 흡인성 폐렴을 일으킬 수 있다. 가루약은 복용 직전에 소량의 물에 타서 복용하는 게 좋다. 구강붕해정, 구강용해필름처럼 입에서 바로 녹는 약, 물 없이 사용 가능한 약도 있다. (다만 이들 제형이라고 약물 흡수가 더 빠른 건 아니다.) 알약을 삼키기 어려운 경우 붙이는 패치, 좌약, 또는 주사제를 쓸 수도 있다.
약을 물 대신 차나 커피와 함께 복용해도 될까? 답은 그때그때 다르다. 반드시 맹물이 아니어도 된다. 물 대신 다른 음료를 마셔도 괜찮다. 역삼투압 정수기로 거른 물이나 미네랄워터만큼이나 보리차나 옥수수차도 무방하다. 약을 위장까지 시원하게 쓸어내려 보내기 위해 한 컵을 쭈욱 마시면 된다. 너무 뜨겁거나 차가운 음료는 한 번에 마시기 어려우니 피해야 한다.
홍차나 커피와 같은 카페인 음료는 어떨까? 이 경우도 대체로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몇몇 예외가 있다. 복합진통제, 감기약처럼 카페인이 들어있는 약을 커피와 같은 카페인 음료와 함께 먹으면 한 번에 너무 많은 카페인을 섭취하게 되어 부작용이 심해질 수 있다. 커피를 여러 잔 마셨을 때와 마찬가지로 불안하거나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메스꺼운 증상을 경험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갑상선 호르몬제와 골다공증 약도 커피, 홍차, 콜라는 피하는 게 좋다. 이들 약은 카페인 음료와 함께 복용하면 흡수가 줄어들어서 약효가 떨어진다.
약을 과일 주스와 함께 마시는 것도 대개 무방하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고지혈증 치료제로 사용되는 스타틴 계열의 약을 복용 중일 때 자몽주스는 금기다. 자몽 속의 쓴맛 성분이 알약 한 알의 부작용을 2.5알 복용했을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높이기 때문이다. 자몽주스를 약과 다른 시간대에 마시는 것도 안 된다. 자몽주스가 약에 미치는 효과는 72시간까지 지속된다. 반대로 자몽, 오렌지 및 사과주스는 항히스타민제 펙소페나딘의 흡수를 방해하여 효과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앞서 스타틴의 경우와는 반대로 알약을 한 알 먹었는데, 효과가 반 알로 줄어들게 된다. 유기음이온 운반체(OATP)를 통한 약물 흡수를 저해하기 때문이다.
복잡해서 머리 아프다는 소리가 나올 만하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내가 쓸 약에 대해서만 알아 두면 충분하고, 잘 모를 땐 물어보면 된다. 약은 다 똑같지 않다. 저마다 사용방법이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약마다 그에 맞게 대해 주자. 용법과 주의사항을 잘 알고 쓰는 게 입에 거품을 무는 것보다 훨씬 나은 선택이다.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