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한이라고 다 같은 기한이 아니다. 원래부터 약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약에 표시된 기한은 사용기한이다. 사용기한이 지난 약은 판매도 할 수 없지만 사용해서도 안 된다. 유통기한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식품에도 유통기한이 아니라 소비기한이 표시된다. 그렇다면 건강기능식품은? 건강기능식품도 식품이다. 이제부터는 건강기능식품에도 소비기한이 표시된다.
소비기한이란 식품에 표시된 보관방법에 따라 보관할 경우 먹어도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한을 말한다. 유통기한은 80년대의 유산이다. 그때는 냉장 유통, 진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식품이 지금보다는 쉽게 상했다. 지금은 다르다. 냉장고에 개봉하지 않고 넣어둔 식품은 유통기한이 지났지만 멀쩡할 때가 많다. 음모론에 끌리는 사람은 요즘 식품에 전보다 보존제를 많이 넣어서 그런 거라고 의심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저 식품의 제조, 유통, 보관 기술이 좋아졌을 뿐이다. 소비기한은 품질변화시점까지 기간을 100%라고 하면 그 80-90%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이 된 유통기한은 식품 품질변화시점까지의 60-70%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유통기한을 버리고 소비기한을 채택한 것은 혼란을 막기 위함이다. 유통기한은 영업자 중심의 표시제이다. 파는 사람은 더 이상 팔 수 없는 기한이다. 하지만 소비자 관점에서 유통기한을 그렇게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다수는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처럼 생각한다. 유통기한만 지나면 버리는 사람이 많단 얘기다. 소비자에게 유통기한의 의미를 일일이 설명하기보다 그냥 용어를 바꾸는 게 이번 변화의 핵심이다. 소비기한은 소비자 중심의 표시제이다. 명시된 기간까지만 소비하고 그 날짜가 지나면 버리라는 거다.
정리해보자. 약은 사용기한, 건강기능식품은 소비기한이다. 용어가 다르지만 소비자 관점에서 의미는 같다. 기한이 지나면 버리면 된다. 약은 환경을 생각하여 그냥 버리면 안 되고 약국이나 보건소에 가져다 줘야 한다. 언론 보도와 블로그에는 보건소나 약국, 주민센터에 비치된 별도의 전용수거함에 버리면 된다고들 한다. 하지만 약국에 그런 전용수거함을 갖춘 곳은 드물다. 건강기능식품은 식품이니까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도 될 것 같은데 막상 찾아보면 정확한 규정이 없다. 우리 대부분은 환경에 예민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둔감한 사람들이다. 포장지나 용기에서 알약만 꺼내서 봉투에 따로 담아 버리는 것조차 귀찮아한다. 사용기한이 지난 약이나 소비기한이 지난 건강기능식품을 버리고 나면 잊어버린다. 하지만 폐기에는 과정이 필요하며 비용이 든다. 불필요한 폐기를 줄이기 위해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바꾼 건 잘한 일이다. 이제는 그래도 발생하는 약품과 건강기능식품 폐기를 어떻게 제대로 다룰 것인가 논의해야 한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맘껏 소비만 하고 지르면서 살던 시절은 잊자. 자고 일어나면 언제 또 감기약, 해열제조차 구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조금 꺼림칙하면 버리면 된다고 생각하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버리기 전에 정말 버리는 게 맞나 고민이 필요하다.
이번에 변경된 소비기한은 건강기능식품에 해당한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약은 사용기한이다. 그런 약의 사용기한을 설정할 때는 장기보존시험과 가속시험 결과를 사용한다. 장기보존시험은 의약품의 저장조건에서 사용기간을 설정하기 위해 실제로 오래 보관시 안정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가속시험은 그런 저장조건을 벗어나 단기간에 조금 더 가혹한 조건에서 안정성이 어떤지 보는 거다. 가속시험 결과와 다르게 장기보존을 해보면 오랫동안 별다른 변화없이 약효를 유지하는 경우가 흔하다. 코로나19로 의약품 품절대란에 시달린 세계 각국에서 정부가 나서서 일부 의약품의 사용기한을 연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온도,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보관한 약품은 사용기한 이후 15년이 지나도 사용에 문제가 없었다는 미국 FDA 연구 결과를 참고할 만하다. 약이나 건강기능식품은 주방이나 화장실처럼 습도가 높은 곳을 피해 직사광선이 닿지 않는 선반에 보관하는 게 좋다. 약의 사용기한이나 건강기능식품의 소비기한은 모두 개봉하기 전의 이야기다. 개별 포장된 제품을 제외하고는 개봉 뒤에는 기한이 줄어들 수 있다. 보관과 기한 문제에 더 진지한 관심을 갖자. 아껴야 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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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건강기능식품 소비기한 이야기
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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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3-02-08 10:45
수정 최종수정 2023-02-08 10:46
기한이라고 다 같은 기한이 아니다. 원래부터 약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약에 표시된 기한은 사용기한이다. 사용기한이 지난 약은 판매도 할 수 없지만 사용해서도 안 된다. 유통기한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식품에도 유통기한이 아니라 소비기한이 표시된다. 그렇다면 건강기능식품은? 건강기능식품도 식품이다. 이제부터는 건강기능식품에도 소비기한이 표시된다.
소비기한이란 식품에 표시된 보관방법에 따라 보관할 경우 먹어도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한을 말한다. 유통기한은 80년대의 유산이다. 그때는 냉장 유통, 진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식품이 지금보다는 쉽게 상했다. 지금은 다르다. 냉장고에 개봉하지 않고 넣어둔 식품은 유통기한이 지났지만 멀쩡할 때가 많다. 음모론에 끌리는 사람은 요즘 식품에 전보다 보존제를 많이 넣어서 그런 거라고 의심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저 식품의 제조, 유통, 보관 기술이 좋아졌을 뿐이다. 소비기한은 품질변화시점까지 기간을 100%라고 하면 그 80-90%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이 된 유통기한은 식품 품질변화시점까지의 60-70%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유통기한을 버리고 소비기한을 채택한 것은 혼란을 막기 위함이다. 유통기한은 영업자 중심의 표시제이다. 파는 사람은 더 이상 팔 수 없는 기한이다. 하지만 소비자 관점에서 유통기한을 그렇게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다수는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처럼 생각한다. 유통기한만 지나면 버리는 사람이 많단 얘기다. 소비자에게 유통기한의 의미를 일일이 설명하기보다 그냥 용어를 바꾸는 게 이번 변화의 핵심이다. 소비기한은 소비자 중심의 표시제이다. 명시된 기간까지만 소비하고 그 날짜가 지나면 버리라는 거다.
정리해보자. 약은 사용기한, 건강기능식품은 소비기한이다. 용어가 다르지만 소비자 관점에서 의미는 같다. 기한이 지나면 버리면 된다. 약은 환경을 생각하여 그냥 버리면 안 되고 약국이나 보건소에 가져다 줘야 한다. 언론 보도와 블로그에는 보건소나 약국, 주민센터에 비치된 별도의 전용수거함에 버리면 된다고들 한다. 하지만 약국에 그런 전용수거함을 갖춘 곳은 드물다. 건강기능식품은 식품이니까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도 될 것 같은데 막상 찾아보면 정확한 규정이 없다. 우리 대부분은 환경에 예민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둔감한 사람들이다. 포장지나 용기에서 알약만 꺼내서 봉투에 따로 담아 버리는 것조차 귀찮아한다. 사용기한이 지난 약이나 소비기한이 지난 건강기능식품을 버리고 나면 잊어버린다. 하지만 폐기에는 과정이 필요하며 비용이 든다. 불필요한 폐기를 줄이기 위해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바꾼 건 잘한 일이다. 이제는 그래도 발생하는 약품과 건강기능식품 폐기를 어떻게 제대로 다룰 것인가 논의해야 한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맘껏 소비만 하고 지르면서 살던 시절은 잊자. 자고 일어나면 언제 또 감기약, 해열제조차 구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조금 꺼림칙하면 버리면 된다고 생각하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버리기 전에 정말 버리는 게 맞나 고민이 필요하다.
이번에 변경된 소비기한은 건강기능식품에 해당한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약은 사용기한이다. 그런 약의 사용기한을 설정할 때는 장기보존시험과 가속시험 결과를 사용한다. 장기보존시험은 의약품의 저장조건에서 사용기간을 설정하기 위해 실제로 오래 보관시 안정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가속시험은 그런 저장조건을 벗어나 단기간에 조금 더 가혹한 조건에서 안정성이 어떤지 보는 거다. 가속시험 결과와 다르게 장기보존을 해보면 오랫동안 별다른 변화없이 약효를 유지하는 경우가 흔하다. 코로나19로 의약품 품절대란에 시달린 세계 각국에서 정부가 나서서 일부 의약품의 사용기한을 연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온도,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보관한 약품은 사용기한 이후 15년이 지나도 사용에 문제가 없었다는 미국 FDA 연구 결과를 참고할 만하다. 약이나 건강기능식품은 주방이나 화장실처럼 습도가 높은 곳을 피해 직사광선이 닿지 않는 선반에 보관하는 게 좋다. 약의 사용기한이나 건강기능식품의 소비기한은 모두 개봉하기 전의 이야기다. 개별 포장된 제품을 제외하고는 개봉 뒤에는 기한이 줄어들 수 있다. 보관과 기한 문제에 더 진지한 관심을 갖자. 아껴야 잘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