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염제와 해열제 중에 뭐가 나을까? 일상에서 이 둘을 용도에 따라 구분해서 써야 할 일은 거의 없다. 해열, 진통을 목적으로 사용할 때 약을 하루에 두 번 또는 세 번, 시간과 회수를 지켜가며 여러 날 꾸준히 복용하는 경우라면 차이가 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보통 병의원에 가서 의사에게 진통제를 처방받을 때다. 일상에서 가벼운 두통이나 근육통으로 진통제를 찾을 때는 소염제, 해열제 중 어느 것을 선택해도 무방하다.
대표적 진통제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해열진통제와 해열소염진통제다. 타이레놀(아세트아미노펜) 같은 해열진통제는 열을 가라앉히고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되지만 염증에는 효과가 없다.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구입 가능한 해열제는 아세트아미노펜 한 가지다.) 애드빌, 부루펜(이부프로펜), 낙센, 탁센(나프록센)과 같은 해열소염진통제는 해열, 진통에 더해 염증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다. 소염제(NSAID)면 해열진통효과도 있는 거지 염증에만 효과가 있는 게 아니다. 보통 용어를 축약해서 해열제, 진통제, 해열진통제, 소염진통제 등으로 이야기하니까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약 성분에 따라 체내에 머무르는 시간이 달라서 같은 소염진통제여도 지속시간이 6~8시간인 이부프로펜은 하루 3번, 최대 12시간까지 지속되는 나프록센은 하루 2번 복용해야 한다.
가정상비약으로 해열제와 소염제를 용도에 따라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은 주로 용량 때문이다. 약국에 이부프로펜은 200mg, 400mg 두 종류가 있다. 보통 하루 400mg으로 세 번을 복용한다. 그러면 하루 복용량은 1200mg이 된다. 이 정도를 복용할 경우에는 염증을 완화하는 효과가 크지 않다. 이부프로펜을 하루 2400mg 복용하면 항염 작용이 나타난다. 하지만 이 정도 용량에서도 해열진통제인 아세트아미노펜과 효과 차이가 크지 않다. 무작위 이중맹검 임상시험으로 아세트아미노펜 4000mg/일, 이부프로펜 저용량 하루 1200mg/일, 이부프로펜 2400mg/일을 4주 동안 복용하도록 하고 무릎 골관절염 증상 완화를 비교한 결과 세 그룹 간 차이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4주라는 기간은 이러한 임상시험 기간으로서는 짧지만 실제 가정에서 이 약을 사용할 때는 해당하지 않을 정도로 긴 시간이다. 이부프로펜 사용설명서 상에 표시된 기간을 보자. 감기에 복용할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5일, 의사 또는 약사의 지시 없이 통증에 사용하는 기간은 성인 10일, 소아 5일, 발열에는 3일 이상 복용하지 않도록 되어 있다. 이렇게 짧은 기간을 일반적 복용법에 따라 사용할 때 해열제인 아세트아미노펜과 소염제인 이부프로펜이 유의미한 차이를 내긴 어렵다. 예외적으로 생리통(월경통)의 경우에는 이부프로펜, 나프록센 같은 소염제가 해열, 진통만 있고 소염 작용이 없는 아세트아미노펜보다 낫다. 생리통을 겪는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프로스타글란딘 혈중 수치가 2-4배 정도 높은데 소염제는 이들 염증매개물질이 더 적게 만들어지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 버틸수록 통증유발물질이 증가한다. 초기에 약을 복용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방송에서 자주 보여주는 약에 대한 설명이 실제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어떤 경우에 소염제를 먹어야 하고 어떤 경우에 해열제를 먹어야 할까 용도에 따라 구분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복용 방법 상 주의사항과 부작용에 대해서는 알아두는 게 좋다. 소염진통제는 빈속에 먹으면 속이 쓰리거나 복통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위장관계 부작용은 하루 1200mg을 복용할 경우보다 2400mg을 복용할 때 좀 더 자주 생긴다. 식후에 바로 복용하는 게 제일 좋고 공복일 때는 우유나 요거트라도 함께 먹는 게 낫다. 해열제는 빈속에 먹어도 무방하다. 소염제 복용 뒤에 피부 붉어짐, 두드러기, 안면부종(얼굴 특히 눈이나 입술 주변이 붓는 것) 같은 과민반응이 있었던 사람은 사용을 피해야 한다. 특히 술 마신 다음 날은 이런 부작용이 더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 드물지만 해열제에도 과민반응이 있는 사람이 있다. 신장, 심장 기능이 손상되거나 심부전이 있었던 사람은 의사, 약사와 상의 없이 소염진통제 복용을 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