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정재훈의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약이야기
<122> 치매신약 이야기
편집부
입력 2022-12-16 16:54
수정
지난 9월 말 알츠하이머 병 치료제 레카네맙 3상 임상시험 결과가 발표되면서 개발사인 바이오젠 주가가 40% 이상 뛰었다. 18개월 동안 초기 치매환자 1,795명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 임상시험에서 약을 투여한 쪽이 위약보다 인지기능 저하가 27%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신약의 효과에 대해 제약회사에서 내세우는 수치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상대위험감소(RRR)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플라시보 그룹보다 27% 감소라지만 실제로는 치매 증상을 평가하는 18점 척도에서(CDR-SB) 겨우 0.45점의 차이에 불과하다. 절대위험감소(ARR)로 보면 다소 애매한 수치다. 초기 치매환자는 임상시험에 사용한 척도를 기준으로 1년에 0.5~1.4 정도씩 점수가 낮아진다. 영국 런던대학에서 치매를 연구하는 론 하워드 교수는 1년에 최소한 1점의 차이를 내야 약효가 의미 있다고 본다. 18개월에 0.45점은 임상적으로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을만한 결과이다.
게다가 2B상 임상시험에서 이미 결과가 편향됐다. 약물을 고용량으로 투여하다보니 치매위험인자인 APOE4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투여군에서만 중도에 탈락했고 그로 인해 위약군은 치매위험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71%로 투여군(30%)에 비해 높았다. 이렇게 되면 약효 때문에 차이가 있었던 건지 아니면 양쪽 그룹에 치매위험도에 차이가 있어서 결과가 다르게 나온 건지 알 수가 없다. 12개월에 비해 18개월로 투여 기간이 늘어나자 약효가 줄어드는 듯 보였다는 걸 지적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신약의 효과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전문가도 많다. 초기 알츠하이머 병으로 진단받은 사람이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기간을 보통 평균 6년으로 본다. 레카네맙의 효과가 6년 이상 지속된다면 그 기간을 19개월 더 늘릴 수 있다. 아직까지 알츠하이머 병 치료에 효과적인 약이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이 정도만 해도 상당한 효과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문제는 안전성이다.
지난 11월말 뉴 잉글랜드 의학저널(NEJM)에 연구 결과가 실리면서 이번 임상 3상 시험 데이터가 공개됐다. 임상시험에 참여한 사람 2명이 뇌출혈로 사망했다. 개발사인 에자이는 이들 사망자가 레카네맙 때문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낮다고 밝혔다. 하지만 레카네맙이 작용하는 기전을 살펴보면 약으로 인한 부작용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레카네맙과 같은 항체치료제는 알츠하이머 병을 앓는 환자의 뇌와 혈관에서 베타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 덩어리를 제거한다. 항체가 이들 단백질에 달라붙으면 인체의 면역체계가 작동하여 이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염증이 생길 수 있다. 쉽게 말해 혈관에 달라붙은 베타 아밀로이드 찌꺼기가 청소되면서 혈관이 약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혈관이 약해진 상태에서는 뇌출혈이 생기기 쉽다. 이번 임상시험 레카네맙 투여군에서는 13명이 뇌출혈이나 뇌졸중 증상이 나타난데 반해 위약군에서 그런 증상이 나타난 경우는 2명에 불과했다. 뇌졸중 치료나 예방을 위해 혈전 용해제나 항응고제를 사용할 경우에는 레카네맙 투여시 뇌출혈 위험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내년 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레카네맙을 신약으로 승인하더라도 이 약을 누구에게 사용할 것인가 까다롭게 기준을 정해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대단한 성공은 아니다. 하지만 성공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방치해도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질 수 있다. 아밀로이드 단백질에 직접 작용하는 항체 대신 플라크 속 아포지단백 E (ApoE)에 결합하는 항체를 사용하여 단백질 덩어리를 제거하는 항체(HAE-4)도 연구 중이다. 동물실험에선 플라크를 없애면서도 염증으로 뇌가 붓거나 뇌출혈이 생기는 부작용이 덜한 것으로 나타났다. 알츠하이머 병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되는 타우 단백질이 엉겨 붙는 것을 막는 신약(hydromethylthionine mesylate, HMTM)도 개발 중이다. 이 약은 경구, 즉 먹는 약이라는 점에서 주사제보다 편리하다. 임상 3상 시험에 실패하긴 했으나 위약으로 사용한 물질(메틸렌 블루)에도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개발사측 설명도 일리 있다. 과학은 이렇게 실패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