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으로 인해 사고가 날 때가 있다. 원인은 다양하다. 효과 없는 약을 잘못 사용하거나 약 부작용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약을 과용하거나 반대로 너무 적은 양을 쓰거나 또는 약과 약의 상호작용 때문에 해를 입을 수도 있다. 의사, 약사, 간호사, 환자 모두 사람이니 실수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약과 관련된 실수는 치명적이다. 의료진이 실수하지 않도록 체계를 잘 만들고 운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근에는 약을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 꼭 필요한 환자의 능동적 참여도 강조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환자참여를 중요시한다. 환자가 그저 주는 대로 약을 먹고 치료를 받는 식으로 수동적으로 움직일 게 아니라 의사, 약사와 함께 팀을 이룬 것처럼 적극적으로 치료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약국에서 약을 지어올 때도 간단한 확인 절차를 통해 약의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 우선 이름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확인해야 할 이름은 두 가지다. 처방전과 조제된 약이 자신의 것이 맞는지 체크하고 처방전에 기록돼 있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도 자신의 것과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생각보다 동명이인이 많다. 두 번째로 자신이 받은 약의 이름을 반드시 기억해 두는 게 중요하다. 특히 부작용이나 알레르기를 경험했을 때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 어떠한 약성분이 원인이 됐는지를 꼭 확인하여 이름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이때 구체적으로 어떤 부작용이나 알레르기 반응이 있었는지 함께 기억해두면 좋다. 두 번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서도 자신이 알레르기나 부작용을 경험한 약 이름은 평생 기억해두는 걸 습관으로 하길 권한다. 상품명이 성분명보다 더 기억하기 쉽다. 암기하기 어려울 때는 사진이라도 찍어두면 좋다.
약의 가짓수가 많아질수록 상호작용 위험도 커진다. 같은 약이 중복 처방되는 경우를 DUR 시스템으로 거르긴 하지만 완벽하진 않다. 모든 약이 처방약은 아니다. 처방약과 처방 없이 약국에서 구입한 일반약이 중복될 수도 있다. 약사라고 내가 집에 어떤 가정상비약을 두고 있는지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그러니 본인 스스로 자신이 복용중인 약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약의 상호작용이나 부작용, 그리고 중복 투약 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단골 약국 한 곳에서 '약력(藥歷) 관리'를 받는 것도 좋다. 약력이란 내가 사용 중인 약의 전체 리스트를 말한다. 현재 의료체계상 의사, 약사라도 내가 어떤 약을 복용 중인지 전체 리스트를 알 수 없게 되어 있다. 본인이 복용 중인 처방약(또는 처방전), 일반약(처방 없이 약국에서 구입 가능한 약), 건강기능식품을 한 곳에 모아두고 사진을 찍어두면 유용하다. 캐나다와 같은 나라에서는 이런 약들을 약국에 가져가서 약사와 환자가 함께 리뷰하면서 혹시 모르고 있는 약과 관련한 문제들이 있는지 점검하는 서비스를 국가 차원에서 지원해주기도 한다. 2019년 네덜란드 연구에 따르면 이렇게 하여 약 관련 문제를 한 건 찾아낼 때 무려 1100만원(8270유로)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
약사와 환자의 만남을 두 전문가의 만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약사는 약의 전문가이고 환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전문가이다. 누구든 자기 자신에 대한 정보는 본인이 제일 많이 알고 있다. 환자 본인이 그런 개인 정보를 의료진과 공유하고 치료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알약의 색깔이나 이름이 바뀌었을 때 의도적인 것인지 실수인지 환자가 체크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질문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지 말자. 의사나 약사가 질문을 기피하는 경우에는 더 좋은 병의원이나 약국을 찾아가자. 미래에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예방하는 길이다.
약의 올바른 복용방법과 부작용을 알아두는 것도 환자 스스로 챙겨야 할 몫이다. 아무리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을 해도 약의 실제 사용자인 환자가 그걸 기억못하면 소용이 없다. 약의 보관방법과 사용기한에 대해서도 잘 알아둬야 한다. 어린이의 손이 닿지 않게 약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