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정재훈의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약이야기
<117> 항산화제 이야기
편집부
입력 2022-09-29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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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선악을 가르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항산화제는 건강에 좋은가 나쁜가? 그때그때 다르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난 뒤에 항산화제를 섭취하는 것은 운동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
운동을 하면 인체가 에너지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활성산소종이 생겨난다. 산소가 쇠를 녹슬게 하듯 우리 몸의 노화를 촉진한다는 바로 그 산화물질이다. 그러니 운동을 하고 나서 비타민C, 비타민E 같은 항산화제를 섭취하면 몸에 활성산소종이 끼치는 영향을 줄여 건강에 더 유익할 것만 같다. 운동 뒤에 항산화제가 근육 통증을 줄이고 빠른 회복을 돕는다는 생각에 운동을 마치고 나서 바로 항산화제를 삼키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2017년 코크란 리뷰에서 50건의 연구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내놓은 결론이다. 운동 뒤에 항산화제를 보충해줘도 근육통이 특별히 더 빨리 줄어들지 않는다. 운동 뒤 6시간이 지나도 그렇고,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나도 별다른 효과가 없다. 예상과는 정반대의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2014년 노르웨이 연구팀이 54명의 젊은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항산화제가 운동 효과를 오히려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쪽은 비타민 C 1,000mg, 비타민 E 235mg을 주고 다른 한쪽에는 플라시보를 주어 비교한 결과이다. 일주일에 3~4회 고강도 운동 프로그램을 11주 동안 계속한 뒤에 보니 세포의 발전소로 불리는 미토콘드리아의 생성과 관련된 지표가 플라시보 그룹 쪽에서 더 분명하게 증가한 것이다. 반대로 항산화제를 운동 뒤에 섭취한 쪽 참가자에게서는 증가가 덜 나타났다.
적포도주 속 항산화물질로 잘 알려진 레스베라트롤을 섭취한 경우에도 결과가 비슷했다. 2013년 덴마크 연구팀은 27명의 60대 남성을 대상으로 한쪽에는 레스베라트롤 250mg, 다른 한쪽에는 가짜약을 주고 2개월의 운동 뒤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했다. 운동은 확실히 건강에 유익했다.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나 동맥 혈압과 같은 심혈관계 건강 지표가 향상됐다. 하지만 운동하면서 가짜약을 먹은 플라시보 그룹에 비해 레스베라트롤 투여 그룹은 그 효과가 떨어지거나 아예 나타나지 않았다.
운동을 한 뒤에 생겨나는 활성산소종을 절대악으로 생각한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다. 하지만 활성산소종은 절대악이 아니다. 인체에 침입한 세균과 바이러스를 제거할 때도 사용되고 손상된 인체 세포의 복구를 위한 신호로 작용할 수도 있다. 운동은 근육을 미세하게 손상시킨다. (같은 맥락에서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인체에 부담을 주는 과도한 운동은 해로울 수 있다.) 하지만 손상된 근육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근육이 더 튼튼해지며 인체는 더 건강해진다. 운동 뒤에 항산화제를 고용량으로 섭취하면 이런 복구과정을 이끄는 신호가 약해져서 운동의 건강 증진 효과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설득력 있는 가설이다.
그렇다고 항산화제를 섭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섣부르다. 한 가지 항산화제를 너무 고용량으로 섭취하지 않는 정도면 충분하다. 사실 항산화물질은 어디에나 있다. 채소, 과일에 풍부하고 커피에도 많이 들어있다. 채소를 많이 먹지 않는 사람의 경우 하루 섭취하는 항산화물질의 절반 이상이 커피에서 온다. 커피 한 잔에는 200~550mg의 항산화물질이 들어있다. 음식, 음료 속의 항산화물질은 다양하다. 음식을 하나의 성분처럼 여기는 환원주의를 피해 골고루 다양한 음식을 섭취하면 된다. 염증을 줄이고 노화를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당뇨치료제 메트포르민의 경우에도 운동의 효과를 떨어뜨린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작용기전상 추측이 가능한 결과이다. 메트포르민은 미토콘드리아에서 일어나는 세포호흡을 줄인다. 미토콘드리아에서 에너지대사 반응이 제한되니까 인체 세포는 그에 대한 반응으로 미토콘드리아 기능을 더 활성화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메트포르민이 암 예방이나 수명 연장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게 과학자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운동을 할 때 미토콘드리아에서 에너지를 더 많이 만들어내면서 건강이 향상되는 효과는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뇨병 환자들이 메트포르민을 중단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는 아니지만 장수에 도움이 될까 봐 메트포르민을 복용 중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내용이다. 약에는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다. 유익을 최대로 하고 해를 최소로 줄이는 용량과 용법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