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약품청(EMA)은 현지 시각 3월 18일자 보도자료를 통해 이부프로펜이 코로나19(COVID-19)의 악화와 연관된다는 과학적 근거는 현재 없다고 밝혔다. EMA는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으며 이 문제와 관련된 새로운 정보가 나오는 대로 리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코로나19와 관련하여 열이나 통증 치료를 해야할 경우 환자와 의사는 파라세타몰(아세트아미노펜의 유럽명)이나 (이부프로펜을 포함한)NSAID를 포함한 모든 이용 가능한 치료약을 검토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해열제로 열을 내리는 것은 감염성 질환의 증상을 가리워서(masking) 진단을 지연시킬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코로나19만 그런 게 아니라 독감 같은 다른 감염성 질환에도 그렇다. 증상이 더 오래가도록 만들어서 그만큼 바이러스 전파가 가능한 기간을 늘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이부프로펜(애드빌, 부루펜)만 그런 게 아니라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도 마찬가지다. 효과가 나타나는 최저 용량으로 가능한 한 짧게 쓰도록 권하는 이유다. 이런 식으로 짧게, 권장 용량대로 쓸 때 굳이 이부프로펜을 피하고 아세트아미노펜을 택해야 할 근거는 미약하다.
일부 전문가는 3월 11일 의학저널 랜싯에 실린 스위스 바젤대학 연구팀의 독자투고(correspondence)를 들며 이부프로펜이 해로운 게 맞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하지만 딱 한 페이지의 짧은 원고에 이부프로펜이 단 한 번 언급된다.
이부프로펜이 ACE2(안지오텐신전환효소2)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논란이 가열되자 3월 16일 해당 연구팀은 바젤대학 홈페이지를 통해 랜싯 독자투고가 환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연구자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밝히는 글을 게재했다.
ACE2는 인체에서 조직 재생을 촉진하는 매우 중요한 단백질이지만 이번 코로나19를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가 이 단백질에 결합하여 세포에 침투하므로 ACE2의 양을 늘릴 수 있는 약물과 코로나19와의 관계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를 하려 했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어떤 약을 쓰라, 쓰지 마라하는 말이 아니고 새로운 가설에 대해 검증하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올리비에 베랑 프랑스 보건부 장관이 개인 트위터를 통해 "열이 있다면 이부프로펜 대신 파라세타몰(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하라"고 쓴 게 지난 14일이다. 공식 보도자료도 아닌 개인 트위터에 그가 쓴 글 때문에 엄청난 양의 가짜뉴스가 쏟아지고 논란이 불거졌다.
한국에서는 그 트위터 글을 한 전문가가 페이스북으로 퍼나르면서 소동이 커졌다. 안 그래도 대중의 공포심과 스트레스가 엄청난데 거기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아직 새로 밝혀진 사실은 없다. 그저 전에 다른 질환에 대한 일부 연구 결과를 토대로 추측을 하고 있을 뿐이다.
나흘이 지나 마침내 유럽의약품청에서 보도자료를 내놨다. 관련해서 Medscape도 3월 17일에나 관련 기사를 내놓았고 뉴욕타임즈 과학, 의학 칼럼니스트 지나 콜라타도 3월 17일에야 칼럼을 썼다. BBC 기사도 마찬가지로 17일자다. 신중하게 사안을 조사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3월 18일 유럽의약품청의 발표가 있고 나서 세계보건기구(WHO)도 입장을 바꿨다. 트위터에 인포그래픽과 함께 올린 Q&A에서 현재 알려진 사실에 근거하여 WHO는 이부프로펜의 사용을 피할 것을 권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해열제가 필요할 때 이부프로펜을 비롯한 소염진통제를 피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짧게 권장 용량에 맞춰 쓰는 게 좋고 열이 계속되면 가까운 병의원에 방문하거나 질병관리본부 1339콜센터에 전화해보아야 한다.
코로나19에 대해서는 아직 아는 게 많지 않다. 증거기반의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시간을 들여 제대로 알아보고 말하는 게 현명하다. 프랑스의 보건부 장관이 한 말인데 근거가 없겠냐는 식으로 권위에 기대는 방식은 이제 버려야 한다. 코로나19와 싸울 때는 빠름이 완벽함보다 낫지만 가짜뉴스와 싸울 때는 신중함이 빠름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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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이부프로펜 써도 될까
정재훈 약사 기자
webmaster@yakup.com
입력 2020-03-25 10:50
수정 최종수정 2020-03-25 10:50
▲ 정재훈 약사
유럽의약품청(EMA)은 현지 시각 3월 18일자 보도자료를 통해 이부프로펜이 코로나19(COVID-19)의 악화와 연관된다는 과학적 근거는 현재 없다고 밝혔다. EMA는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으며 이 문제와 관련된 새로운 정보가 나오는 대로 리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코로나19와 관련하여 열이나 통증 치료를 해야할 경우 환자와 의사는 파라세타몰(아세트아미노펜의 유럽명)이나 (이부프로펜을 포함한)NSAID를 포함한 모든 이용 가능한 치료약을 검토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해열제로 열을 내리는 것은 감염성 질환의 증상을 가리워서(masking) 진단을 지연시킬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코로나19만 그런 게 아니라 독감 같은 다른 감염성 질환에도 그렇다. 증상이 더 오래가도록 만들어서 그만큼 바이러스 전파가 가능한 기간을 늘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이부프로펜(애드빌, 부루펜)만 그런 게 아니라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도 마찬가지다. 효과가 나타나는 최저 용량으로 가능한 한 짧게 쓰도록 권하는 이유다. 이런 식으로 짧게, 권장 용량대로 쓸 때 굳이 이부프로펜을 피하고 아세트아미노펜을 택해야 할 근거는 미약하다.
일부 전문가는 3월 11일 의학저널 랜싯에 실린 스위스 바젤대학 연구팀의 독자투고(correspondence)를 들며 이부프로펜이 해로운 게 맞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하지만 딱 한 페이지의 짧은 원고에 이부프로펜이 단 한 번 언급된다.
이부프로펜이 ACE2(안지오텐신전환효소2)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논란이 가열되자 3월 16일 해당 연구팀은 바젤대학 홈페이지를 통해 랜싯 독자투고가 환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연구자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밝히는 글을 게재했다.
ACE2는 인체에서 조직 재생을 촉진하는 매우 중요한 단백질이지만 이번 코로나19를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가 이 단백질에 결합하여 세포에 침투하므로 ACE2의 양을 늘릴 수 있는 약물과 코로나19와의 관계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를 하려 했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어떤 약을 쓰라, 쓰지 마라하는 말이 아니고 새로운 가설에 대해 검증하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올리비에 베랑 프랑스 보건부 장관이 개인 트위터를 통해 "열이 있다면 이부프로펜 대신 파라세타몰(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하라"고 쓴 게 지난 14일이다. 공식 보도자료도 아닌 개인 트위터에 그가 쓴 글 때문에 엄청난 양의 가짜뉴스가 쏟아지고 논란이 불거졌다.
한국에서는 그 트위터 글을 한 전문가가 페이스북으로 퍼나르면서 소동이 커졌다. 안 그래도 대중의 공포심과 스트레스가 엄청난데 거기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아직 새로 밝혀진 사실은 없다. 그저 전에 다른 질환에 대한 일부 연구 결과를 토대로 추측을 하고 있을 뿐이다.
나흘이 지나 마침내 유럽의약품청에서 보도자료를 내놨다. 관련해서 Medscape도 3월 17일에나 관련 기사를 내놓았고 뉴욕타임즈 과학, 의학 칼럼니스트 지나 콜라타도 3월 17일에야 칼럼을 썼다. BBC 기사도 마찬가지로 17일자다. 신중하게 사안을 조사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3월 18일 유럽의약품청의 발표가 있고 나서 세계보건기구(WHO)도 입장을 바꿨다. 트위터에 인포그래픽과 함께 올린 Q&A에서 현재 알려진 사실에 근거하여 WHO는 이부프로펜의 사용을 피할 것을 권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해열제가 필요할 때 이부프로펜을 비롯한 소염진통제를 피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짧게 권장 용량에 맞춰 쓰는 게 좋고 열이 계속되면 가까운 병의원에 방문하거나 질병관리본부 1339콜센터에 전화해보아야 한다.
코로나19에 대해서는 아직 아는 게 많지 않다. 증거기반의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시간을 들여 제대로 알아보고 말하는 게 현명하다. 프랑스의 보건부 장관이 한 말인데 근거가 없겠냐는 식으로 권위에 기대는 방식은 이제 버려야 한다. 코로나19와 싸울 때는 빠름이 완벽함보다 낫지만 가짜뉴스와 싸울 때는 신중함이 빠름보다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