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세정제 대란이다. 내 주변에도 손세정제를 구하기 어렵다며 걱정하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완제품을 구할 수 없으니 직접 만들어 쓰는 방법에 대한 관심도 높다. 알코올과 글리세린을 섞는 비율에 대한 논란이 생길 정도였다.
집에서 직접 손세정제를 만들어 쓸 때는 알코올(에탄올)을 조금 넉넉히 쓰는 게 좋다. 알코올 60-95%(v/v) 함유 손소독제가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코올이 세균, 바이러스의 단백질을 변성시켜서 효과를 내려면 물이 있어야 하지만 시중에 판매되는 소독용 알코올에 이미 20% 가량 물이 함유되어 있으니 추가로 물을 더 넣을 필요는 없다.
글리세린은 살균에는 효과가 없고 피부 보습을 위해 넣는 것이다. 알코올과 글리세린 비율을 8:2 또는 9:1 정도로 하면 적당하다. 하지만 나는 굳이 이렇게까지 하여 손소독제를 구비하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손세정제가 필요하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병원에서 12시간 일하는 동안 최대 100번까지 손을 씻어야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자주 손을 씻어야 하는 환경에서는 매번 비누로 씻기가 어렵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손소독제가 최선의 선택이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다르다. 손세정제가 없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드물다.
손세정제는 비누로 손을 씻을 수 없을 때만 사용하면 된다. 알코올을 60% 이상 함유한 손세정제에도 항균,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비누와 물로 손을 씻는 게 여러모로 더 유익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비말감염으로 전파된다. 기침할 때 튀어나오는 미세한 액체방울에 바이러스가 섞여 나와서 이걸 만지면 감염된다는 이야기다.
이 액체방울은 점액질, 쉽게 말하면 가래를 포함한다. 2019년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래 속의 점액질 때문에 손소독제는 효과가 떨어진다. 끈끈한 점액질이 바이러스를 감싸서 알코올로부터 보호하는 바람에 30초면 나타나야 할 손소독제의 효과가 4분 이상 지연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손을 비누로 씻으면서 문질러주면 바이러스는 쉽게 제거됐다. 옆사람이 재채기를 할 때 입을 옷소매나 티슈로 가려주면 좋으련만 공중에 대고 해서 내 손에 가래가 묻었다고 생각해보자. 더러운 상황이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손소독제를 쓸 것인가 비누로 손을 씻을 것인가.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나라면 얼른 화장실에 가서 비누로 씻는 편을 택할 것이다.
요즘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를 제일 걱정하지만 겨울철에 주로 문제를 일으키는 노로바이러스도 옮아서 좋을 게 없다. 알코올 60% 이상 함유 손세정제는 노로바이러스에는 효과가 없다. 노로바이러스는 외막이라 불리는 단백질로 된 겉껍질이 없기 때문이다.
세균 중에 Clostridium difficile와 같이 포자로 생존이 가능한 것들도 손세정제로는 제거할 수 없다. 비누로 씻으면 포자를 제거할 수 있다. 손세정제는 세균과 바이러스를 불활성화시켜 주지만 잔해는 비누로 씻지 않는 이상 그대로 손에 남는다.
더러운 기름때, 흙먼지, 중금속, 잔류농약도 손세정제로는 안 없어진다. 화장실에서 볼일 본 뒤에 손세정제를 쓰는 것보다는 흐르는 물에 비누로 손을 30초 이상 충분히 씻어주는 게 더 깨끗한 느낌이 드는 이유가 있다. 실제로 그게 더 깨끗하기 때문이다.
삶에는 예외가 있는 법, 부득이하게 손세정제를 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손 전체가 충분히 덮일 정도로 넉넉한 양을 써서 손바닥, 손등, 손가락에 골고루 바르고 마를 때까지 비벼줘야 한다. 이렇게 하는 데 보통 20초 정도 시간이 걸린다. (앞서 언급한 연구에서는 손세정제를 바른 뒤 비벼주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가래가 묻었을 때도 손세정제를 비벼주면 그냥 바르는 것보다는 나을 것으로 추측한다.)
일상생활에서 대부분의 경우 손씻기가 손세정제보다 낫다. 특히 코 풀고 난 뒤, 쓰레기 버린 뒤, 밥 먹기 전에는 손세정제보다 비누로 손씻기를 추천한다. 만약 요리사가 비누로 손씻는 대신 손세정제를 쓰는 식당이라면 안 가는 게 최선이다. 비누와 깨끗한 물이 없는 환경이라면 모를까 손세정제가 없다고 걱정할 이유가 없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를 포함한 겨울철 감염병 예방에는 손씻기와 기침 예절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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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손 세정제 제대로 알고 쓰자
정재훈 약사 기자
webmaster@yakup.com
입력 2020-02-12 09:21
수정 최종수정 2020-02-12 09:21
▲ 정재훈 약사
손세정제 대란이다. 내 주변에도 손세정제를 구하기 어렵다며 걱정하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완제품을 구할 수 없으니 직접 만들어 쓰는 방법에 대한 관심도 높다. 알코올과 글리세린을 섞는 비율에 대한 논란이 생길 정도였다.
집에서 직접 손세정제를 만들어 쓸 때는 알코올(에탄올)을 조금 넉넉히 쓰는 게 좋다. 알코올 60-95%(v/v) 함유 손소독제가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코올이 세균, 바이러스의 단백질을 변성시켜서 효과를 내려면 물이 있어야 하지만 시중에 판매되는 소독용 알코올에 이미 20% 가량 물이 함유되어 있으니 추가로 물을 더 넣을 필요는 없다.
글리세린은 살균에는 효과가 없고 피부 보습을 위해 넣는 것이다. 알코올과 글리세린 비율을 8:2 또는 9:1 정도로 하면 적당하다. 하지만 나는 굳이 이렇게까지 하여 손소독제를 구비하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손세정제가 필요하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병원에서 12시간 일하는 동안 최대 100번까지 손을 씻어야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자주 손을 씻어야 하는 환경에서는 매번 비누로 씻기가 어렵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손소독제가 최선의 선택이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다르다. 손세정제가 없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드물다.
손세정제는 비누로 손을 씻을 수 없을 때만 사용하면 된다. 알코올을 60% 이상 함유한 손세정제에도 항균,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비누와 물로 손을 씻는 게 여러모로 더 유익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비말감염으로 전파된다. 기침할 때 튀어나오는 미세한 액체방울에 바이러스가 섞여 나와서 이걸 만지면 감염된다는 이야기다.
이 액체방울은 점액질, 쉽게 말하면 가래를 포함한다. 2019년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래 속의 점액질 때문에 손소독제는 효과가 떨어진다. 끈끈한 점액질이 바이러스를 감싸서 알코올로부터 보호하는 바람에 30초면 나타나야 할 손소독제의 효과가 4분 이상 지연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손을 비누로 씻으면서 문질러주면 바이러스는 쉽게 제거됐다. 옆사람이 재채기를 할 때 입을 옷소매나 티슈로 가려주면 좋으련만 공중에 대고 해서 내 손에 가래가 묻었다고 생각해보자. 더러운 상황이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손소독제를 쓸 것인가 비누로 손을 씻을 것인가.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나라면 얼른 화장실에 가서 비누로 씻는 편을 택할 것이다.
요즘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를 제일 걱정하지만 겨울철에 주로 문제를 일으키는 노로바이러스도 옮아서 좋을 게 없다. 알코올 60% 이상 함유 손세정제는 노로바이러스에는 효과가 없다. 노로바이러스는 외막이라 불리는 단백질로 된 겉껍질이 없기 때문이다.
세균 중에 Clostridium difficile와 같이 포자로 생존이 가능한 것들도 손세정제로는 제거할 수 없다. 비누로 씻으면 포자를 제거할 수 있다. 손세정제는 세균과 바이러스를 불활성화시켜 주지만 잔해는 비누로 씻지 않는 이상 그대로 손에 남는다.
더러운 기름때, 흙먼지, 중금속, 잔류농약도 손세정제로는 안 없어진다. 화장실에서 볼일 본 뒤에 손세정제를 쓰는 것보다는 흐르는 물에 비누로 손을 30초 이상 충분히 씻어주는 게 더 깨끗한 느낌이 드는 이유가 있다. 실제로 그게 더 깨끗하기 때문이다.
삶에는 예외가 있는 법, 부득이하게 손세정제를 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손 전체가 충분히 덮일 정도로 넉넉한 양을 써서 손바닥, 손등, 손가락에 골고루 바르고 마를 때까지 비벼줘야 한다. 이렇게 하는 데 보통 20초 정도 시간이 걸린다. (앞서 언급한 연구에서는 손세정제를 바른 뒤 비벼주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가래가 묻었을 때도 손세정제를 비벼주면 그냥 바르는 것보다는 나을 것으로 추측한다.)
일상생활에서 대부분의 경우 손씻기가 손세정제보다 낫다. 특히 코 풀고 난 뒤, 쓰레기 버린 뒤, 밥 먹기 전에는 손세정제보다 비누로 손씻기를 추천한다. 만약 요리사가 비누로 손씻는 대신 손세정제를 쓰는 식당이라면 안 가는 게 최선이다. 비누와 깨끗한 물이 없는 환경이라면 모를까 손세정제가 없다고 걱정할 이유가 없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를 포함한 겨울철 감염병 예방에는 손씻기와 기침 예절이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