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옆 사람 휴대폰 화면이 살짝 눈에 들어온다. 녹색창에 약 이름을 검색 중인가보다. 인터넷으로 약에 대한 정보를 찾는 사람 수는 최소 백만 명 이상이다.
네이버 한 군데에서만도 타이레놀정 조회수가 106만 뷰, 소론도정 94만 뷰, 페니라민정이 84만 뷰에 이른다. 상위권에 든 약들은 일주일에 조회수가 5천-1만씩 늘어난다. 하지만 과연 소비자들이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을까 의문스럽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약에 대한 정보는 어려운 의약학 용어로 가득한 전문가 버전뿐이다. 엄청난 양의 정보가 단순히 나열되어 있다. 타이레놀정에는 메트헤모글로빈혈증이 있을 경우, 이 약의 복용을 즉각 중지하고 의사, 치과의사, 약사와 상의하라는 지시문이 나온다.
소론도정에는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으로 ‘중심성 장액성 맥락망막증’이 등장한다. 설명을 읽으라는 말인가, 아니면 어차피 읽어도 모를 말이니 포기하라는 뜻인가. 읽는 이가 내용을 이해하느냐 마느냐에 제조사는 아무 관심이 없다는 게 정답일 것이다.
해외 의약정보 사이트에서 전문가 버전과 환자 버전을 나누어 환자용 정보에는 쉬운 말로, 보기 쉽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약 복용 뒤에 혹시라도 시력에 이상이 있을 경우 병원이나 약국에 문의하라는 설명은 있어도, 중심성 장액성 맥락망막증과 같은 난해한 부작용을 열거하진 않는다.
하지만 국내 의약정보 사이트는 일반 대중에게도 날것 그대로의 전문용어를 강요한다. 일이십 개의 부작용을 나열하고 부작용 각각마다 다시 6-7가지 세부사항을 나열하면서도 정작 환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할지는 언급하지 않는다.
정보의 중요도나 부작용의 빈도에 따라 가중치가 표시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인터넷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 영화, 책에 대해 찾아볼 때와 약에 대한 정보를 찾을 때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흔히 나타나는 가벼운 약 부작용으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인지, 드물지만 심각한 부작용으로 증상을 경험하는 즉시 의사, 약사에게 알려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다.
106만 명의 사람이 궁금해서 찾아본 타이레놀정 의약품 정보에는 정작 음식과 함께 복용해야 하는지, 음식과 관계없이 복용 가능한 약인지와 같은 기본 사항이 빠져있다.
건강정보 이해능력(health literacy)이 낮을수록 질병, 건강악화, 응급치료, 입원의 위험이 높아진다. 2015년 일본 연구팀의 발표에 따르면, 건강정보 이해능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흡연, 지나친 음주, 운동 부족과 같은 해로운 습관을 가질 확률이 낮으며 따라서 건강을 유지할 가능성이 더 높다.
약도 마찬가지다. 내가 왜 이 약을 복용하는지, 약을 어떻게 복용해야 가장 효과적인지, 약의 부작용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 수 있으며, 그런 경우 어떻게 하면 되는지에 대해 알면 꾸준히 약을 복용하는데 도움이 된다. 치료 목적을 모르고, 부작용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속으로 키울수록 약 복용을 제대로 하기 어렵고, 이로 인해 문제가 터질 위험은 높아진다.
숫자만 봐도 겁을 먹는 사람들도 많다. 건강 정보에 숫자만 더해져도 이해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의 수가 40% 이상 증가한다. 그림, 도표, 그래프와 같은 식으로 시각화한 인포그래픽스가 인기를 끄는 시대에 약 사용 설명서만 텍스트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전문용어로 가득한 약 설명서는 치우고, 이해하기 쉬운 약 설명서로 바꿔야 할 때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지금도, 제약회사들이 자사의 약을 광고하기 위해 만든 홈페이지에는 소비자들이 보기 쉽게 정리된 정보가 한가득이다.
나 하나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더 사람이 지식을 공유하고, 지식을 찾기 쉬워질수록 사회는 질적으로 변화한다. 지식의 공유는 심지어 그 사회의 패러다임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 저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말하는 지식 혁명이다. 더 쉬운 상담, 더 보기 쉬운 자료로 약과 건강에 대한 정보를 대중과 공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아마 언젠가는 약업계의 혁명도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