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훈 약사 아껴야 잘 산다고 뭐든 버리려고 내놓으면 다시 들고 오는 사람이 있다. 우리 몸이 딱 그렇다. 인체는 당을 아주 소중히 여긴다. 신장에서 걸러서 소변에 버려지는 포도당을 남김없이 100% 재흡수한다. 이렇게 하여 버리지 않고 다시 거둬들이는 포도당이 하루에 180그램이다.
칼로리로 치면 밥 두 공기 반에 해당하는 양이다. 칼로리 과잉을 걱정하는 현대인에게는 버리고 싶은 유혹이 생길만한 분량이지만, 식량이 부족하던 과거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체가 매일 이만큼의 포도당을 소변으로 버리고 다녔다면 생존이 가능했을까 싶은 분량이다.
신장 사구체에서 걸러진 포도당은 근위 세뇨관에서 다시 재흡수된다. 이때 80-90%는 SGLT2라는 수송체 분자를 통해, 나머지 10-20%는 SGLT1를 통해 재흡수된다. 혈당이 증가하여 재흡수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가면 소변으로 포도당이 흘러나간다.
보통 혈당이 180-200mg/dL에 이르면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문제는 당뇨병에 걸렸을 때다. 이 경우 핏속에 돌아다니는 당이 워낙 많으니까 소변으로 걸러져나가는 포도당의 양도 늘어나는데, 인체는 여기에 나쁜 방향으로 적응한다.
더 많이 버려지는 포도당을 어떻게든 다시 들고 오려고 재흡수 수송체 SGLT2를 더 많이 만들어낸다. 높은 혈당치를 낮추기 위해 어떻게든 핏속의 포도당을 덜어내면 좋으련만, 아끼는 데 익숙한 우리 몸은 어떻게든 포도당을 다시 들고 오려고 애쓰는 셈이다.
SGLT2 억제제는 인체가 소변으로 버린 당을 다시 가지고 들어오는 걸 막아서 혈당치를 떨어뜨리는 약이다. 소변 속 당의 양은 도리어 많아지니까 역발상처럼 들리지만, 췌장에서 분비하는 인슐린의 작용과 관계없이 혈당을 낮춘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더해 체중을 감소시키고 혈압도 약간 떨어진다. 체중이 감소하는 것은 이 약을 복용하면 평소보다 소변으로 버리는 당의 양이 늘어나기 때문인데, 포도당의 양으로 치면 하루 70그램, 칼로리로 환산하면 280kcal 정도가 된다. 하루 밥 한 공기만큼을 줄이게 되는 셈으로 체중이 2-3kg 감소하지만 그 이상 줄어들진 않는다. 이에 더해 늘어난 소변 속 당으로 인해 삼투성 이뇨제와 같은 효과가 나타나 혈압도 조금 낮아진다.
신약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 약 무슨 약이냐, 당장 나도 그 약을 써봐야겠다 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새로운 약일수록 임상 경험과 부작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SGLT2 억제제에는 소변량 증가와 소변횟수 증가, 생식기 진균 감염, 요로 세균 감염과 같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소변으로 배출되는 포도당이 미생물 감염 위험을 높일 수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드물지만 당뇨병성 케톤산혈증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이 약을 써도 별 효과를 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기본적으로 이들 약은 신장에 작용해서 효과를 나타내는 약이다보니 신장기능이 심하게 저하된 환자들에게는 효과를 나타내기 어렵다. 당뇨병환자, 특히 혈당조절이 어렵거나 심혈관질환을 동시에 가진 환자에서는 원래 감염과 궤양 위험이 높다.
그런데 SGLT2억제제 중에서도 카나글리플로진에 의한 발가락 절단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이러한 부작용이 명확하게 약물에 의한 것인지 인과관계는 아직 분명치 않다. 다파글리플로진와 엠파글리플로진 등 다른 SGLT2억제제를 이용한 임상시험에서는 이러한 위험이 높아지지 않았다.
아직 임상 자료가 축적되지 않은 만큼, 다른 SGLT2억제제에서도 동일한 위험이 높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SGLT2 억제제의 개발에는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더 숨어있다. 역발상처럼 당뇨를 심하게 만들어서 당뇨병을 치료하는 이 약이 개발된 것은, 드물지만 유전적 변이로 SGLT2 수송체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심한 당뇨를 경험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 덕분이다.
이들에 대한 수십 년의 추적 연구 결과 소변 속 당 배출 외에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나 합병증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이를 당뇨병 치료의 타겟으로 삼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신약의 개발만큼 다양한 학문 간의 협력과 융합이 필요한 분야도 없다. 알약 하나를 삼킬 때야말로 우리가 서로 생명을 빚지고 도와가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가장 좋은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