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리의 워싱턴 약국일기
<153> 미국 약국과 한국 약국의 차이 II
이덕근 CVS Pharmacy, Chief pharmacist
입력 2014-06-11 10:10
수정 최종수정 2014-06-11 10:51
▲ 이덕근 CVS Pharmacy, Chief pharmacist 얼마 전에 한국을 방문하고 왔다. 친구약국을 방문했는데 미국 약국과 많이 다른 점을 알 수 있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약국크기에 차이가 많이 났다. 미국 약국은 드럭스토어에 슈퍼까지 포함되는 '자이언트' 비지니스 약국임에 비해 한국은 약국만 있는 소형 비지니스이니 약 5~10배 정도의 사이즈 차이가 났다.
처방전을 보면 한국은 인쇄된 처방전만 통용되고 있었는데 미국은 인쇄된 것 뿐 아니라 손으로 쓴 것, 그리고 팩스나 전자메일로도 처방전을 받고 있으며 심지어 전화로도 처방전을 받는다.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확실하게 인쇄된 처방전만 허용 하는 게 좋다고 생각되지만 환자의 편의를 위해서는 미국처럼 다른 방법도 괜찮다고 생각된다. 갑자기 약이 떨어졌을 때라든지 멀리 여행을 가서 아플 경우 종이 처방전이 아닌 다른 방법이 더 유효하기 때문이다. 사실 근본적으로 문화 차이인데 미국이 보다 신용사회라 인쇄 외의 다른 방법을 허용하고 있다고 본다. 전화 처방전 같은 경우는 서로를 신뢰 못하는 한국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기 때문이다.
처방전의 내용을 보면 한국은 전통적인 한방의 영향을 받아 한 처방전에 많은 약들을 함께 처방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항생제와 해열제, 소염제, 거기에 위장약 등을 함께 처방하고 있었는데 미국은 한 처방에 한 종류의 약만 처방한다. 같은 감기약 처방이라면 미국은 항생제만 처방하고 처방전이 필요 없는 OTC 해열제 등은 그냥 환자에게 알아서 사 먹으라고 한다. 그래서 미국에서 하루에 100개의 조제건수를 올렸다고 하면 그것은 100개의 처방전을 받아 100종류의 약을 조제했다는 말이 된다. 아이들 약이어선지 몰라도 한국에선 약을 갈아 주는 경우가 많던데 미국에는 가루약인 경우는 거의 없다. 오직 소아 항생제의 경우만 미리 ready made된 가루약에 약사가 물만 부어서 현탁액으로 전해준다.
한국은 동네약국과 문전약국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는데 미국은 그 차이가 별로 없다. 미국은 한국처럼 '문전'이란 의미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나오면 바로 약국이 있는 것도 아니고 차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굳이 병원 근처 약국을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집 근처 약국을 간다. 그게 훨씬 편리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약국 보조원이 조제를 할 수 있다. 물론 마지막 감수 부분은 약사가 한다. 모든 조제가 가루약이 아닌 제조회사에서 출시된 상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조제는 보조원이 하고 약사는 약이 제대로 들어 있나만 확인하면 된다. 한국은 한 처방에 여러 약이 섞여 있으므로 보조원의 조제를 약사가 감수하기가 너무 어렵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보조원의 조제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가장 큰 차이는 리필이다. 한국에는 리필이 없으므로 환자가 처방전을 들고 와야 일을 시작한다. 반면 미국은 리필이 있으므로 아침에 문을 열면 리필처방전이 컴퓨터에 잔뜩 쌓여있고 일과 중에도 수시로 전화나 온라인으로 리필 요청이 들어 온다. 비지니스면에서나 환자의 편의성을 위해서도 한국에서 리필은 꼭 도입돼야 한다.
또 한가지, 한국의 약사는 공부를 많이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기 비지니스이기 때문에 보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에 비해 미국의 약사들은 공부를 많이 하지 않는다. 약사들이 대부분 큰 회사의 종업원이고 달리 승진을 하는 것도 아니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메릴랜드의 경우 2년에 한 번 면허 갱신할 때 30개의 논문을 읽는 것이 거의 전부다. 이 점은 미국 약사들이 한국 약사들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