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리의 워싱턴 약국일기
<150> 혈우병 (Hemophilia) 이야기
이덕근 CVS Pharmacy, Chief pharmacist
입력 2014-04-30 10:10
수정 최종수정 2014-04-30 10:33
▲ 이덕근 CVS Pharmacy, Chief pharmacist 혈우병 치료제 개발회사 Biogen의 연구 개발 책임자인 해밀턴 박사는 어느 날 아침 이상한 전화를 받았다. 자기 이름은 라스푸틴 인데 지금 러시아 황태자 알렉세이의 혈우병을 치료하고 있는 중이니 빨리 혈우병 Type B 치료제인 Alprolix를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라스푸틴 이라면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 2세 때 사람으로 러시아 황태자의 혈우병을 치료하여 황후의 신임을 얻은 자가 아닌가? 그 후 온갖 악행을 저질러 결국 러시아 혁명의 원인을 만든 그 장본인, 괴승 라스푸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전화 저쪽에서 라스푸틴은 Alprolix 뿐 아니라 혹시 모르니 임상실험중인 혈우병 Type A 치료제인 Eloctate도 같이 보내달라고 재촉한다.
아니 이런 황당한 일이? 이 사람이 어떻게 미래로 연락을? 라스푸틴이 도술을 부려 황태자의 혈우병을 치료했다더니 결국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가? 라스푸틴과의 통화는 계속 되었다. 그는 얼마 전에는 혈액응고 인자 Factor VIII의 분비를 촉진하는 Desmopressin도 써 봤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약은 mild한 혈우병에나 효과가 있는 약이라 알렉세이에게는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고. 그래서 라스푸틴은 유전자 조작법으로 만든 Factor VIII (Eloctate)과 Factor X (Alprolix)을 보내달라는 것이다. 이상한 전화지만 환자치료가 최우선이니 해밀턴 박사는 라스푸틴의 요구대로 두 약을 등기속달로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 황궁으로 보내 주었다. ㅎㅎ
혈우병은 멘델의 유전법칙이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유전질환이다. 여자에게는 잠재형으로 나타나며 이 잠재형의 여자와 건강한 남자 사이에서 50%의 확률로 혈우병을 가진 아들이 출생하게 된다.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 2세는 아내 알렉산드라와 결혼하여 딸 넷을 낳고 혈우병을 가진 알렉세이를 얻었는데 황태자의 어머니 알렉산드라가 혈우병 잠재형 이었던 것이다. 알렉산드라의 혈우병인자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에게서 왔는데 알렉산드라는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였고 빅토리아 여왕이 바로 혈우병 잠재형 이었기 때문이다. 혈우병은 유전병이기도 하지만 30% 정도는 돌연변이에 의해서도 발생한다. 빅토리아 여왕도 그의 조상에서 혈우병 환자가 발견되지 않기에 돌연변이에 의한 잠재형으로 추정되고 있다.
von Willebrand Disease도 혈액응고 인자 vWF가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질환이다. 혈우병과 달리 남녀노소 모두 이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으며 심지어 개나 돼지도 이 병에 걸릴 수 있다. 혈우병과 마찬가지로 혈액응고에 문제가 있으며 특히 이 병환자가 여성인 경우 월경시 과다출혈과 아이를 출산할 때 매우 위험하게 된다. 수혈과 유전자제제로 치료하고 예방하는데 2009년에 FDA에서 승인된 Lysteda (Tranexamic acid)도 이러한 목적으로 쓰인다.
라스푸틴이 어떻게 황태자 알렉세이의 혈우병을 치료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알렉세이의 혈우병이 이 후 크게 문제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황후의 신임을 얻은 라스푸틴이 러시아 정치에 개입하여 온갖 폭정을 행함으로써 러시아 혁명을 앞당긴 것도 또한 사실이다. 그로 인해 러시아 마지막 황태자 알렉세이는 아이러니하게도 혈우병이 아니라 볼세비키가 보낸 자객의 총격을 받고 죽었다. 그 때 그의 나이는 겨우 14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