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청구항의 역할은 특허 권리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특허법은 공중이 특허의 청구항을 읽고 자신이 만들거나 이용하고자 하는 기술이나 제품이 해당 특허의 권리 범위에 속하는 지의 여부를 어느 정도의 명확(clarity)하게 결정할 수 있도록 청구항을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적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이나 물건에 관한 권리의 범위와 달리, 손에 쥐어지지 않는 아이디어를 언어를 사용하여 범위를 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불명료한 청구항을 이유로 하여 무효로 되는 흔한 경우는, 청구항에 여러 방법으로 측정될 수 있는 물성이나 수치의 범위를 측정 방법의 한정 없이 기재하고 있거나, 측정 조건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는 물성에 대해 측정 조건을 정의하지 않은 채 기재하고 있는 경우, 혹은 기능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기재하고 있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공중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기 전에 혹은 개발 초기에 제3자 특허를 침해하는 지의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Freedom-to-operate (FTO) 분석을 하게 되는데, 해당 특허의 청구항이 A라는 범위를 갖도록 해석될 수도 있고 B라른 범위를 갖도록 해석될 수 도 있고, 그 해석되는 범위에 따라 침해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면, 꽤 골치아픈 일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특허권은 특허명세서와 청구항을 작성하는 시점이 아니라 향후 10년 20년에 생길 수 있는 경쟁제품이나 기술로부터 자사의 기술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기술용어와 법률용어가 어우러져 작성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읽는 사람과 판단 시점의 기술 수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밖에 없는 위험을 내재하고 있기도 하다. 특허 청구항의 범위는 “당업자”가 특허명세서를 참조로 하여 읽었을 때 명확하게 그 권리범위를 정하고 있어야 하는데, 당업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결정을 하는 판사나 배심의 주관적인 기준의 개입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런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특허 명세서에 특정 용어들과 관련하여 출원인이나 발명자가 생각하는 범위의 정의를 기재하거나 청구항에 포함된 수치 범위를 측정하는 방법이나 조건을 적시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발명자들은 흔히 실험실에서 내부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들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특히 해당 기술 분야에서 널리 확립되어 사용되는 용어가 아니라면, 본인들이 의도하는 의미나 정의를 명세서에 기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물론 특허변호사나 변리사는 발명자가 제공한 정의가 특정 구현예만에 국한되지 않고, 의도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다른 구현예들도 포함할 수 있도록 정의를 편집해야 할 것이다.
또 심사과정 중에 심사관과 출원인 사이의 소통 (즉, 거절이유통지서와 의견서, 혹은 인터뷰)을 통해 청구항의 범위를 정의할 수 있는 기록을 남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만약 명세서에 정의되어 있지 않은 청구항 용어가 특정 정의를 갖도록 의도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선언서를 통해 설명하거나 혹은 의견서에 기재하거나 심사관 면담을 통해 설명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한편, 미국특허법에서는 출원의 심사과정 중에는 청구항의 범위를 가장 넓게 해석하여 심사를 하고 (소위, broadest reasonable interpretation), 일단 특허가 등록된 이후의 청구항 해석은 “당업자가 이해하는 일반적인 의미 (customary and ordinary meaning interpretation)” 기준을 적용한다. 이는 심사과정 중에는 청구항의 보정이 가능하고 그 의미가 불명확한 용어 등을 의견서 등을 통해 명확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에 일단 넓게 해석하여 심사를 시작하고 심사과정을 통해 심사관과 출원인이 공동으로 이해하고 동의하는 정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반면, 일단 등록된 특허는 보정이 쉽지 않고 이미 확정된 권리이므로 공중은 어느 정도는 확실성을 갖고 그 범위를 정할 수 있도록 하면서 동시에 언어가 갖는 내재적인 한계를 인정하여 특허권자도 보호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를 포함하고 있다.
2017년 Eli Lilly v. Teva Parenteral Medicines 사건에서는 Lilly 특허 청구항에 포함된 “vitamin B12”의 범위가 쟁점이 되었다. Vitamin B12는 상황에 따라 cyanocobalamin을 지칭할 수도 있고, 또 넓게는 cyanocobalamin의 약학적 유도체를 포함하는 일군의 화합물들을 지칭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명세서에서는 이 두 가지 경우를 모두 포함하는 방식으로 vitamin B12가 기재되어 있었고, 피고인 Teva는 명세서 기재 및 심사기록을 볼 때 두가지 해석이 모두 가능하도록 사용된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당업자가 그 범위를 어느 정도의 확실성을 갖고 결정할 수 없으므로 무효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특허권자 Lilly는 청구항은 환자에게 vitamin B 보충제를 투여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는 방법에 관한 것이고, 이런 문맥상으로 볼 때 당업자라면 vitamin B12를 cyanocobalamin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할 것이기 때문에 그 범위가 명료하다라고 항변하였다. 지방법원과 순회항소법원은 모두 의료업계에서 처방되는 vitamin B12는 구체적으로 cyanocobalamin을지칭하는 것이다라고 증언한 Lilly측 전문가의 증언에 근거하여 특허가 유효하다고 판단하였다.
한편 2015년 Dow Chemical Co. v. Nova Chemicals Corp. 사건에서 순회항소법원은 청구항 기재사항 중 “An ethylene polymer composition comprising: at least one homogeneously branched linear ethylene/α-olefin interpolymer having: … and (vi) a slope of strain hardening coefficient greater than or equal to 1.3; …” 때문에 청구항의 범위가 불명료하다고 판단하였다. 위 기재사항이 불명료하다고 결정한 근거는, 최고 경사도를 결정하는 여러 측정방법이 있었고 그 측정방법에 따라 상이한 결과가 얻어지고, 특허 명세서에는 이중 어느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 지에 대한 기재가 전혀 없고, 또 당업자가 이들 방법중 어느 것을 선택할 지에 대한 전문가 증언이나 심사기록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분자량 (molecular weight), 점도(viscosity), per cent (%) 등과 같이 그 측정방법, 측정 조건, 단위 등이 여러 가지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특히 주의를 기울여 그 측정조건이나 단위를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어로 작성된 명세서를 영어로 번역하여 미국출원을 하는 출원의 경우에 청구항의 불명료한 기재를 이유로 하는 거절이유가 많이 나오는데, 영문 번역이 발명자가 의도하는 정의와 일치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고, 단수/복수, 관사의 사용 (a, the, at least one 등)의 사용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선희 변호사는 30여년 동안 한국과 미국에서, 특허출원 뿐만 아니라, 특허성, 침해여부, 및 Freedom-to-operate에 관한 전문가 감정의견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해오고 있다. 또한 생명과학, 의약품, 및 재료 분야 등에서 특허출원인이 사업목적에 맞는 특허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도록 자문을 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한미약품이 아스트라제네카를 대상으로 하여 승소하였던 미국뉴저지 법원의 에스오메프라졸 ANDA 소송을 담당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