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성여자대학교 약학대학 명예교수/한국사진작가협회회원 권 순 경제주도 특산식물 중에 피뿌리풀 또는 피뿌리꽃 이라고 하는 식물이 있다. 이 식물은 남한에서는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고 다른 곳에는 자라지 않는다. 북한에는 황해도와 강계지방이 자생지로 알려졌지만 현재로서는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다.
만주, 몽골, 우수리 등지에도 분포하는 북방계식물이다. 피뿌리풀은 볕이 잘 드는 풀밭에 무리지어 자라며 팥꽃나무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식물로서 뿌리가 더덕처럼 생겼고 붉은 색을 띄고 있으며 여러 개의 줄기가 30-40 센티미터 정도 높이로 자라고 가지는 치지 않는다.
줄기의 아래서부터 위까지 바늘같이 뾰족한 잎이 어긋나며 수없이 많이 돋아나 있다. 5-7월경에 줄기 끝에 꽃이 15-22 송이 모여서 핀다. 꽃봉오리가 벌어지기 전에는 붉은 색을 띄고 있다가 꽃이 피면 꽃 내부가 흰색이다. 꽃봉오리가 노랗고 안쪽이 흰 꽃도 있다.
꽃잎처럼 보이는 부분은 꽃받침이 진화한 것이고 전체 모습이 통 모양으로 길고 끝부분이 5 가닥으로 갈라져 수평을 이루고 있다. 수술은 10개이고 5개는 길고 5개는 짧으며 암술은 1개이다. 뿌리의 색이 피처럼 붉기 때문에 피뿌리풀(꽃)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속명 스텔레라(Stellera)는 라틴어로 ‘별’의 뜻인 스텔라(stella)에서 그리고 종명 로제아(rosea)는 장미라는 ‘로제(rose)’에서 비롯되었다. 학명은 ‘별 같은 장미’라는 뜻이다.
피뿌리풀의 자생지가 제주도라는 사실에서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남한 어디에도 자생하지 않는 북방계식물인 피뿌리풀의 자생지가 하필이면 최남단 섬인 제주도라는 사실이다. 현재 설득력 있는 설명으로 몽고에서 망아지가 들어온 이후에 이 식물이 퍼졌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몽골초원에는 피뿌리풀이 지천으로 깔려있고 필자도 현지에서 사진촬영을 할 수 있었다. 역사서를 참고해보면 고려 말 삼별초 항쟁이 여몽연합군에 의해 진압된 후 몽골은 일본 정벌의 야망을 품고 1276년 군마 방목장소로 수산평(首山坪)에 탐라목장을 설치했다.
수산평은 오늘날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이다. 여름이 짧은 몽골의 초원보다는 겨울에도 따뜻한 제주도가 말을 키우기에 훨씬 좋은 조건이다. 몽골에서 종자 말을 들여올 때 말의 털이나 마구(馬具)에 씨앗이 붙어서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피뿌리풀 자생지도 제주도 동쪽에 위치한 성산 인근 오름 지역이다.
불행히도 제주도 특산식물인 피뿌리풀은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고 있다. 자생지가 일반에게 알려지면서 지금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사태가 악화되었다. 꽃이 예뻐서 캐가기도 했겠지만 다른 한편 약이 된다는 소문으로 남획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멸종 위기 종은 비단 피뿌리풀에 국한되지 않고 많은 식물이 위기를 맞고 있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어서 야생화의 아름다움까지도 개인의 소유물로 삼으려는 욕심이 근본 원인일 것이고 이것이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주머니의 푼돈이 되고 있으니 슬픈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피뿌리풀은 독성식물로서 먹을 수는 없고 뿌리 말린 것을 한방에서는 낭독(狼毒)이라 하며 중국 최고(最古)의 약물서인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과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수록되어 있다. 피부병과 인체기생충제거(구충제) 약으로 사용된 기록이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사용되지 않았다.
피뿌리풀은 몽골에서 많이 이용되었으며 징기스칸 시대에 병사나 말의 상처치료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피뿌리풀의 상처치유 효능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몽골과의 합동연구에서 확인된 바 있다. 추출물은 항염증, 항암, 항균, 살충효과도 입증되었고 기존 상처치유 원료인 병풀 추출물보다 창상 치유효과가 더 빠르다는 것이 동물실험결과 밝혀졌다.
중국과 티베트에서는 뿌리 섬유질이 로프와 고급 종이제조 원료로 사용되고 있으며 종이는 지폐제조와 같은 특수목적으로 이용된다. 중국에서는 책 보관에 방충제로 사용되기도 한다. 천연물 신약이나 기능성 화장품으로 산업화 가능성이 높아 앞으로 중요한 자원식물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근년에 국립산림과학원에서 피뿌리풀의 대량증식에 성공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