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의 힘든 선택
얼마 전 캄보디아에서 사역 중인 A 선교사님으로부터 안부 문자를 받았다. 내가 2014년 7월 우리 교회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캄보디아 아웃리치를 갔을 때 처음 만났던 분이다. 벌써 12년이 흘렀지만 이따금씩 인사를 해오신다. 특히 그때 내가 의약품을 많이 마련해 주었다며 감사해하신다.
캄보디아로 출발할 때만 해도 내가 거기로 가는 의미가 무엇인지 막연하였다. 그런데 프놈펜에 도착해 B라고 하는 젊은 한국인 부부 선교사의 사역 현장을 방문하는 순간부터 이상하게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 모임에서 대표 기도를 드리는 동안 생전 처음으로 내내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웃리치는 받는 사람보다 가는 사람이 더 큰 은혜를 받는다는 목사님 말씀이 사실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만난 A 선교사 부부의 신실하고 근면한 사역 모습은 그 자체가 감동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에 더하여 자기들보다 몇 살 후배인 C라고 하는 선임 선교사의 지휘에 순종하는 모습에 더 큰 감동을 받았다. 아무리 선교사라 해도, 때로는 생각이 다른 젊은 보스의 지휘에 순종하는 것이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 쉽지 않았을 터인데 말이다.
며칠 동안 A 선교사 내외분과 깊은 교감을 나누었던 우리 아웃리치 팀원들은 마지막 날 공항에서 작별할 때에 서로 눈물로 기도하며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12년 전의 그 때를 잊지 않고 안부를 물어주시는 A 선교사님께, 선교사님의 극구 사양에도 불구하고, 진심에서 우러나는 작은 후원금을 보내 드렸다.
예전의 나는 ‘선교사란 우리와 달리 처음부터 특별한 소명을 갖고 태어난 사람, 또는 선교하기를 즐거워하는 체질의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180도 바꾸게 된 계기가 내게 있었다.
30여 년 전의 일이다. 같은 교회에 다니던 D라고 하는 50대 후반의 남자 교사 한 분이 교직을 내려놓고 아내와 함께 아프리카 보츠와나에 선교사로 떠나셨다. 나는 D선교사 내외분이 처음부터 선교사로 태어나신 분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분들이 선교지로 떠난 지 6개월쯤 되었을 때 D선교사가 혼자 일시 귀국해 들려주신 이야기는 내게 큰 충격이었다.
그는 그곳이 너무 덥고 생활이 힘들어 거기 있는 것이 너무 괴롭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몸이 좀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일시 귀국했는데, 아내 선교사는 빨리 돌아오라고 전화로 매일 성화를 하신단다. 그래서 D선교사는 이런저런 핑게를 대며 차일피일 출국 날짜를 미루고 있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듣고 매우 놀랐다. 선교사도 우리와 똑같이 선교 생활이 힘들고, 그래서 선교지에 가기 싫고, 선교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지만, 끝내 그 마음을 이기고 선교지로 가는 길을 선택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말씀을 듣고 나니 모든 선교사 내외분들이 엄청 존경스러워졌다. 문득 예수님의 십자가가 생각난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가 즐거워서 지신 것은 아닐 것이다. 가셔야 할 사명의 길이었기에 사람으로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그 고난의 길을 끝까지 감당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D 선교사님은 결국 다시 보츠아나로 돌아가 오랫동안 사역을 해 오시며, 이따금씩 일시 귀국하신다. 그분의 요즘의 고민은, 정작 본인은 은퇴 후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은데 아내는 그곳에 뼈를 묻자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 말씀을 숙연한 마음으로 들었다.
이런 선교사님들로부터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게 된다. 오늘날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지만, 이런 선교사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본다면 그런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D선교사님을 비롯한 모든 선교사님들의 건강과 믿음과 마음의 평안을 간절히 기원한다.
이번 여름에도 우리 교회 공동체에서는 여러 명이 중앙아시아의 한 나라로 아웃리치를 다녀왔다. 현지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 가족을 격려하고, 현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한 여행이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아웃리치는 현지 사람들보다 오히려 다녀오는 사람들이 더 큰 은혜를 받는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된다면 교인이든 아니든 되도록 많은 분들이 해외 아웃리치를 경험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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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어 순차적으로 발간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선교사의 힘든 선택
얼마 전 캄보디아에서 사역 중인 A 선교사님으로부터 안부 문자를 받았다. 내가 2014년 7월 우리 교회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캄보디아 아웃리치를 갔을 때 처음 만났던 분이다. 벌써 12년이 흘렀지만 이따금씩 인사를 해오신다. 특히 그때 내가 의약품을 많이 마련해 주었다며 감사해하신다.
캄보디아로 출발할 때만 해도 내가 거기로 가는 의미가 무엇인지 막연하였다. 그런데 프놈펜에 도착해 B라고 하는 젊은 한국인 부부 선교사의 사역 현장을 방문하는 순간부터 이상하게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 모임에서 대표 기도를 드리는 동안 생전 처음으로 내내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웃리치는 받는 사람보다 가는 사람이 더 큰 은혜를 받는다는 목사님 말씀이 사실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만난 A 선교사 부부의 신실하고 근면한 사역 모습은 그 자체가 감동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에 더하여 자기들보다 몇 살 후배인 C라고 하는 선임 선교사의 지휘에 순종하는 모습에 더 큰 감동을 받았다. 아무리 선교사라 해도, 때로는 생각이 다른 젊은 보스의 지휘에 순종하는 것이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 쉽지 않았을 터인데 말이다.
며칠 동안 A 선교사 내외분과 깊은 교감을 나누었던 우리 아웃리치 팀원들은 마지막 날 공항에서 작별할 때에 서로 눈물로 기도하며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12년 전의 그 때를 잊지 않고 안부를 물어주시는 A 선교사님께, 선교사님의 극구 사양에도 불구하고, 진심에서 우러나는 작은 후원금을 보내 드렸다.
예전의 나는 ‘선교사란 우리와 달리 처음부터 특별한 소명을 갖고 태어난 사람, 또는 선교하기를 즐거워하는 체질의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180도 바꾸게 된 계기가 내게 있었다.
30여 년 전의 일이다. 같은 교회에 다니던 D라고 하는 50대 후반의 남자 교사 한 분이 교직을 내려놓고 아내와 함께 아프리카 보츠와나에 선교사로 떠나셨다. 나는 D선교사 내외분이 처음부터 선교사로 태어나신 분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분들이 선교지로 떠난 지 6개월쯤 되었을 때 D선교사가 혼자 일시 귀국해 들려주신 이야기는 내게 큰 충격이었다.
그는 그곳이 너무 덥고 생활이 힘들어 거기 있는 것이 너무 괴롭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몸이 좀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일시 귀국했는데, 아내 선교사는 빨리 돌아오라고 전화로 매일 성화를 하신단다. 그래서 D선교사는 이런저런 핑게를 대며 차일피일 출국 날짜를 미루고 있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듣고 매우 놀랐다. 선교사도 우리와 똑같이 선교 생활이 힘들고, 그래서 선교지에 가기 싫고, 선교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지만, 끝내 그 마음을 이기고 선교지로 가는 길을 선택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말씀을 듣고 나니 모든 선교사 내외분들이 엄청 존경스러워졌다. 문득 예수님의 십자가가 생각난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가 즐거워서 지신 것은 아닐 것이다. 가셔야 할 사명의 길이었기에 사람으로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그 고난의 길을 끝까지 감당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D 선교사님은 결국 다시 보츠아나로 돌아가 오랫동안 사역을 해 오시며, 이따금씩 일시 귀국하신다. 그분의 요즘의 고민은, 정작 본인은 은퇴 후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은데 아내는 그곳에 뼈를 묻자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 말씀을 숙연한 마음으로 들었다.
이런 선교사님들로부터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게 된다. 오늘날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지만, 이런 선교사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본다면 그런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D선교사님을 비롯한 모든 선교사님들의 건강과 믿음과 마음의 평안을 간절히 기원한다.
이번 여름에도 우리 교회 공동체에서는 여러 명이 중앙아시아의 한 나라로 아웃리치를 다녀왔다. 현지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 가족을 격려하고, 현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한 여행이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아웃리치는 현지 사람들보다 오히려 다녀오는 사람들이 더 큰 은혜를 받는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된다면 교인이든 아니든 되도록 많은 분들이 해외 아웃리치를 경험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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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어 순차적으로 발간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