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람을 무서워하는 나라, 일본(16) / 잃어버린 30년과의 연관성
며칠 전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분석한 동영상을 보았다. 그 내용은 일본이 우리나라와 달리 최근 30년간 발전이 정체된 까닭은, ① 매뉴얼 중심 문화, ② 연공서열, ③ 일본 내부에서만 인정받는 전문가를 길러내는 이른바 ‘갈라파고스 사회’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상당 부분 공감이 갔다. 나는 이 세 가지 현상의 바탕에 공통적으로 ‘사람(남)을 두려워하는 일본인의 특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사무라이 시대는 자칫 잘못하면 남의 칼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무서운 사회였다. 그런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남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본능적으로 남의 신경을 건드릴 우려가 있는 급격한 변화나 돌출된 행동을 삼가게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일본 문화의 저변으로 이어져 온 것은 아닐까? 얼마 전까지 일본에는 선진국 답지 않게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 상점이 많았는데 이것도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기 조심스러워하는 일본 국민성의 한 단면이 아닌가 싶다.
사람(남)을 두려워하는 일본인의 특성은 일상의 언어 생활에서도 잘 드러난다. 일본인은 대화 중 상대의 말을 중간에 끊지 않고, 맞장구를 자주 쳐줌으로써 상대의 말에 경청하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또 어떤 제안을 받으면 “노”라고 답해야 할 경우에도 “안됩니다"라고 단정적인 표현을 하는 대신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식으로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차마 ”노“라고 거절하기가 두려운 것이다.
일본어에서 능동적인 표현보다 "생각됩니다", "보여집니다"와 같은 완곡한 수동태 표현을 즐겨 쓰는 것도 상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일본인의 친절함과 예의 바름, 어떤 행사에 대한 철저한 사전 준비, 높은 질서 의식도 같은 맥락, 즉 상대방을 두려워하는 사회분위기의 영향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을 부를 때도 "여보세요" 대신 "스미마센 (죄송합니다)"이라고 한다. 남을 부르는 일조차 두려운 일인 것이다. 헤어질 때는 몇 번씩 돌아보며 인사를 반복한다. 이사를 가면 곧바로 이웃에게 선물을 돌리고, 여행을 다녀오면 직장이나 연구실 동료들에게 작은 과자라도 반드시 사다 주는 풍습도, 사람(남)을 두려워하는 사무라이 문화의 유산이 아닐까 싶다.
일본인의 식사 문화도 매우 흥미롭다. 그들의 식탁에는 우리처럼 함께 떠먹는 찌개 같은 메뉴가 거의 없다. 또 자기 쟁반에 날라온 음식을 쟁반에서 꺼내지 않고 각자 자기 쟁반에 놓인 음식을 먹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쟁반은 오직 운반의 도구일뿐이다. 날라온 음식들을 반드시 쟁반에서 꺼내 식탁에 진열해 놓고, 내 것 네 것 구분없이 먹는 것이 우리의 식습관이다. 일본의 쟁반이 면적을 많이 차지하지 않도록 직사각형이고 작은 것은 이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나라 쟁반은 운반용이기 때문에 싸이즈가 크고 원형이나 타원형이고 싸이즈가 크다. 그래야 운반 효율이 높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본인이 우리와 달리 각자 자기 음식을 별도의 그릇으로부터 떠먹는 것은, 위생 관념이 철저한 때문이 아니라, 예컨대 웃사람의 찌개 그릇에 내 수저를 집어넣어 음식을 뜨는 행위가 너무 조심스러워 식사를 즐길 수 없기 때문에 생긴 문화인 것이다. 이 역시 남을 무서워하는 사무라이 문화가 낳은 습관이 아닐까 한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분위기는 자연히 매뉴얼을 중시하는 문화로도 이어진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그들이 이재민에게 음료수를 공급하지 못했던 이유가 그런 대처방법이 매뉴얼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일본은 매뉴얼 공화국이다. 큰 사고 이후에도 "왜 융통성 있게 대처하지 못했는가"가 아니라 “그런 상황에 대비한 매뉴얼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는 점부터 반성한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사고가 나더라도 매뉴얼대로만 대처했다면 담당자의 책임을 크게 묻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그래서 만사를 매뉴얼에 따라 대처하는 것이 내가 위험에 처하지 않는 가장 현명한 처사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 나라 사회가 지나칠 정도로 개인의 판단과 융통성을 중시하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연공서열을 중시하고 해외 유학을 꺼리는 분위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능력 위주의 파격적인 인사를 했다가 주변의 반발을 사는 것보다 기존 질서에 따라 인사를 하는 것이 남의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적을 것이다. 이래서 일본 사회는 안정적이지만 역동성이 부족해 보이고, 반대로 우리는 변화는 빠르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역동적이라 사회적 혼란을 겪기도 한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문화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많은 수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였는데, 이는 연구자가 자리를 자주 옮기지 않고 한 분야를 오랫동안 묵묵히 파고드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일본인의 문화가 큰 장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사람을 두려워하는 일본인’이라는 시각이 일본 사회, 일본 문화 모두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회를 움직이는 힘은 제도보다 사람의 마음인 경우가 많다. 남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변화의 속도를 늦추는 요인이 되기도 했지만, 일본을 참착하고 신중하고 질서 있는 사회로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하였을 것이다.
반대로 우리는 변화에 대한 대처에는 능하지만 때로는 상대를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는, 즉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일본인과 한국인의 마음 중 어느 쪽이 더 좋거나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장점은 단점의 다른 얼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대방의 장점을 배우고 자신의 약점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남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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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어 순차적으로 발간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사람을 사람을 무서워하는 나라, 일본(16) / 잃어버린 30년과의 연관성
며칠 전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분석한 동영상을 보았다. 그 내용은 일본이 우리나라와 달리 최근 30년간 발전이 정체된 까닭은, ① 매뉴얼 중심 문화, ② 연공서열, ③ 일본 내부에서만 인정받는 전문가를 길러내는 이른바 ‘갈라파고스 사회’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상당 부분 공감이 갔다. 나는 이 세 가지 현상의 바탕에 공통적으로 ‘사람(남)을 두려워하는 일본인의 특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사무라이 시대는 자칫 잘못하면 남의 칼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무서운 사회였다. 그런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남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본능적으로 남의 신경을 건드릴 우려가 있는 급격한 변화나 돌출된 행동을 삼가게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일본 문화의 저변으로 이어져 온 것은 아닐까? 얼마 전까지 일본에는 선진국 답지 않게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 상점이 많았는데 이것도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기 조심스러워하는 일본 국민성의 한 단면이 아닌가 싶다.
사람(남)을 두려워하는 일본인의 특성은 일상의 언어 생활에서도 잘 드러난다. 일본인은 대화 중 상대의 말을 중간에 끊지 않고, 맞장구를 자주 쳐줌으로써 상대의 말에 경청하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또 어떤 제안을 받으면 “노”라고 답해야 할 경우에도 “안됩니다"라고 단정적인 표현을 하는 대신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식으로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차마 ”노“라고 거절하기가 두려운 것이다.
일본어에서 능동적인 표현보다 "생각됩니다", "보여집니다"와 같은 완곡한 수동태 표현을 즐겨 쓰는 것도 상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일본인의 친절함과 예의 바름, 어떤 행사에 대한 철저한 사전 준비, 높은 질서 의식도 같은 맥락, 즉 상대방을 두려워하는 사회분위기의 영향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을 부를 때도 "여보세요" 대신 "스미마센 (죄송합니다)"이라고 한다. 남을 부르는 일조차 두려운 일인 것이다. 헤어질 때는 몇 번씩 돌아보며 인사를 반복한다. 이사를 가면 곧바로 이웃에게 선물을 돌리고, 여행을 다녀오면 직장이나 연구실 동료들에게 작은 과자라도 반드시 사다 주는 풍습도, 사람(남)을 두려워하는 사무라이 문화의 유산이 아닐까 싶다.
일본인의 식사 문화도 매우 흥미롭다. 그들의 식탁에는 우리처럼 함께 떠먹는 찌개 같은 메뉴가 거의 없다. 또 자기 쟁반에 날라온 음식을 쟁반에서 꺼내지 않고 각자 자기 쟁반에 놓인 음식을 먹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쟁반은 오직 운반의 도구일뿐이다. 날라온 음식들을 반드시 쟁반에서 꺼내 식탁에 진열해 놓고, 내 것 네 것 구분없이 먹는 것이 우리의 식습관이다. 일본의 쟁반이 면적을 많이 차지하지 않도록 직사각형이고 작은 것은 이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나라 쟁반은 운반용이기 때문에 싸이즈가 크고 원형이나 타원형이고 싸이즈가 크다. 그래야 운반 효율이 높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본인이 우리와 달리 각자 자기 음식을 별도의 그릇으로부터 떠먹는 것은, 위생 관념이 철저한 때문이 아니라, 예컨대 웃사람의 찌개 그릇에 내 수저를 집어넣어 음식을 뜨는 행위가 너무 조심스러워 식사를 즐길 수 없기 때문에 생긴 문화인 것이다. 이 역시 남을 무서워하는 사무라이 문화가 낳은 습관이 아닐까 한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분위기는 자연히 매뉴얼을 중시하는 문화로도 이어진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그들이 이재민에게 음료수를 공급하지 못했던 이유가 그런 대처방법이 매뉴얼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일본은 매뉴얼 공화국이다. 큰 사고 이후에도 "왜 융통성 있게 대처하지 못했는가"가 아니라 “그런 상황에 대비한 매뉴얼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는 점부터 반성한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사고가 나더라도 매뉴얼대로만 대처했다면 담당자의 책임을 크게 묻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그래서 만사를 매뉴얼에 따라 대처하는 것이 내가 위험에 처하지 않는 가장 현명한 처사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 나라 사회가 지나칠 정도로 개인의 판단과 융통성을 중시하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연공서열을 중시하고 해외 유학을 꺼리는 분위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능력 위주의 파격적인 인사를 했다가 주변의 반발을 사는 것보다 기존 질서에 따라 인사를 하는 것이 남의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적을 것이다. 이래서 일본 사회는 안정적이지만 역동성이 부족해 보이고, 반대로 우리는 변화는 빠르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역동적이라 사회적 혼란을 겪기도 한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문화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많은 수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였는데, 이는 연구자가 자리를 자주 옮기지 않고 한 분야를 오랫동안 묵묵히 파고드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일본인의 문화가 큰 장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사람을 두려워하는 일본인’이라는 시각이 일본 사회, 일본 문화 모두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회를 움직이는 힘은 제도보다 사람의 마음인 경우가 많다. 남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변화의 속도를 늦추는 요인이 되기도 했지만, 일본을 참착하고 신중하고 질서 있는 사회로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하였을 것이다.
반대로 우리는 변화에 대한 대처에는 능하지만 때로는 상대를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는, 즉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일본인과 한국인의 마음 중 어느 쪽이 더 좋거나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장점은 단점의 다른 얼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대방의 장점을 배우고 자신의 약점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남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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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어 순차적으로 발간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