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의 학술지인 “약학사회지” 제7권이 최근 발간되었다. 실린 글들 중 특히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이하 마퇴본부)의 설립배경 및 발전 과정”이라는 논문이 눈길을 끈다. 이 논문은 이 주제로 열린 좌담회 내용을 필자인 내가 정리한 것이다.
1990년대 초반, 국내에서 마약류의 남용과 유통이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전문 조직이 필요해졌다. 이에 안필준 보건사회부(보사부) 장관이 대한약사회 권경곤 회장에게 마퇴본부의 설립을 제안하였고, 이에 따라 1992년 4월 22일 재단법인 마퇴본부가 대한약사회 주관으로 설립되었다.
마퇴본부는 2002년 12월,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한 법정단체로 전환되었고, 이듬해인 2003년 4월 기획재정부로부터 공익법인(구 지정기부급단체)으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 유일한 마약류 예방과 재활전문기관이었던 마퇴본부는 대한약사회 회원들의 회비 납부와 헌신적인 노력으로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이 마퇴본부가 2024년 1월 31일 기획재정부로부터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되어 약사회로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처로 업무 주관이 바뀌었다. 마약의 범람에 따른 예산 등의 문제가 배경이 되었을 터이지만 그동안 마퇴본부를 키워 온 약사회로서는 여간 서운한 일이 아닐 것이다.
이 시점에서 마퇴본부의 설립과 발전 과정을 되돌아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이에 당시 약사공론 편집국장 및 마퇴본부 사무총장을 역임한 강창덕 총장, 보사부를 출입한 약사공론 정동명 기자, 전 약사공론 신영호 사장 및 조동환 주간 등을 모시고 마퇴본부의 설립과 발전 과정에 관한 숨은 이야기를 들어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 그 내용을 일부 발췌하여 소개한다.
1991년 5월 27일 약사 출신 김정수 장관 후임으로 안필준씨가 보사부 장관이 부임했다. 노태우 정권의 마지막 보사부 장관이었다. 당시 사회적으로 가수 등 연예인들이 마리화나 필로폰 등 마약류 복용 사건이 종종 발생하고, 특히 청소년들이 마리화나나 필로폰 등을 사용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1991년 노태우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까지 선포하는 상황이었다.
약사회에서도 약사의 직능과 관련하여 마약퇴치를 위한 세미나도 여는 등 마약퇴치에 관심을 쏟고 있었다.
정기자는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안 나지만, 1991년 가을쯤에 권경곤 대한약사회장이 보사부에 들어오신다고 하여 제가 5층 약정국장실에서 기다렸다가 같이 4층 장관실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약사공론 기자는 대한약사회에서 임원이 오시면 국장실이나 장, 차관실까지 수행도 해드리고 했습니다. 약사회장과 인사를 나눈 안필준 장관이 약사회에 아주 귀한 선물을 주겠다는 의미로 다음과 같은 말을 꺼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마약이 크게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약제사들이 앞장서서 마약 · 각성제 남용 방지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대한약사회가 조직도 잘 되어 있고, 힘도 있는 단체이니 마약퇴치 운동 단체를 만들어 국민 캠페인 같은 것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마약은 약사들과 관련이 있으니, 약사회가 맡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합니다.” 정기자는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안장관이 대충 이런 내용의 말을 했다고 회고했다.
이 제안을 받은 약사회장이 숙고를 하는 와중에 다시 안장관의 독촉을 받아 1992년 4월 22일 ’재단법인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를 설립하게 되었다. 권경곤 대한약사회장이 초대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사무실은 약사회관 1층 서울시약사회 회의실에 설치하였다. 그리고 6월 21일 세계마약퇴치의 날에는 서울신문‧스포츠서울과 공동으로 장충공원에서 ‘마약류 및 약물 오남용 예방을 위한 국민 대행진’ 행사를 개최하였다. 이 행사에는 김대중, 박찬종 등의 정당 대표 등 각계 인사와 6,000여 명의 시민이 참석했다. 그후 약사회는 인천 부산 등지에 마퇴본부 지부를 설립하고 열정적으로 다양한 활동을 펴 왔다.
이렇게 발전해 온 마퇴본부가 금년에 식약처로 이관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약학사회지를 참조하며 아쉬움을 달래기 바란다.
![]() |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의 학술지인 “약학사회지” 제7권이 최근 발간되었다. 실린 글들 중 특히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이하 마퇴본부)의 설립배경 및 발전 과정”이라는 논문이 눈길을 끈다. 이 논문은 이 주제로 열린 좌담회 내용을 필자인 내가 정리한 것이다.
1990년대 초반, 국내에서 마약류의 남용과 유통이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전문 조직이 필요해졌다. 이에 안필준 보건사회부(보사부) 장관이 대한약사회 권경곤 회장에게 마퇴본부의 설립을 제안하였고, 이에 따라 1992년 4월 22일 재단법인 마퇴본부가 대한약사회 주관으로 설립되었다.
마퇴본부는 2002년 12월,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한 법정단체로 전환되었고, 이듬해인 2003년 4월 기획재정부로부터 공익법인(구 지정기부급단체)으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 유일한 마약류 예방과 재활전문기관이었던 마퇴본부는 대한약사회 회원들의 회비 납부와 헌신적인 노력으로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이 마퇴본부가 2024년 1월 31일 기획재정부로부터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되어 약사회로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처로 업무 주관이 바뀌었다. 마약의 범람에 따른 예산 등의 문제가 배경이 되었을 터이지만 그동안 마퇴본부를 키워 온 약사회로서는 여간 서운한 일이 아닐 것이다.
이 시점에서 마퇴본부의 설립과 발전 과정을 되돌아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이에 당시 약사공론 편집국장 및 마퇴본부 사무총장을 역임한 강창덕 총장, 보사부를 출입한 약사공론 정동명 기자, 전 약사공론 신영호 사장 및 조동환 주간 등을 모시고 마퇴본부의 설립과 발전 과정에 관한 숨은 이야기를 들어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 그 내용을 일부 발췌하여 소개한다.
1991년 5월 27일 약사 출신 김정수 장관 후임으로 안필준씨가 보사부 장관이 부임했다. 노태우 정권의 마지막 보사부 장관이었다. 당시 사회적으로 가수 등 연예인들이 마리화나 필로폰 등 마약류 복용 사건이 종종 발생하고, 특히 청소년들이 마리화나나 필로폰 등을 사용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1991년 노태우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까지 선포하는 상황이었다.
약사회에서도 약사의 직능과 관련하여 마약퇴치를 위한 세미나도 여는 등 마약퇴치에 관심을 쏟고 있었다.
정기자는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안 나지만, 1991년 가을쯤에 권경곤 대한약사회장이 보사부에 들어오신다고 하여 제가 5층 약정국장실에서 기다렸다가 같이 4층 장관실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약사공론 기자는 대한약사회에서 임원이 오시면 국장실이나 장, 차관실까지 수행도 해드리고 했습니다. 약사회장과 인사를 나눈 안필준 장관이 약사회에 아주 귀한 선물을 주겠다는 의미로 다음과 같은 말을 꺼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마약이 크게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약제사들이 앞장서서 마약 · 각성제 남용 방지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대한약사회가 조직도 잘 되어 있고, 힘도 있는 단체이니 마약퇴치 운동 단체를 만들어 국민 캠페인 같은 것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마약은 약사들과 관련이 있으니, 약사회가 맡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합니다.” 정기자는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안장관이 대충 이런 내용의 말을 했다고 회고했다.
이 제안을 받은 약사회장이 숙고를 하는 와중에 다시 안장관의 독촉을 받아 1992년 4월 22일 ’재단법인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를 설립하게 되었다. 권경곤 대한약사회장이 초대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사무실은 약사회관 1층 서울시약사회 회의실에 설치하였다. 그리고 6월 21일 세계마약퇴치의 날에는 서울신문‧스포츠서울과 공동으로 장충공원에서 ‘마약류 및 약물 오남용 예방을 위한 국민 대행진’ 행사를 개최하였다. 이 행사에는 김대중, 박찬종 등의 정당 대표 등 각계 인사와 6,000여 명의 시민이 참석했다. 그후 약사회는 인천 부산 등지에 마퇴본부 지부를 설립하고 열정적으로 다양한 활동을 펴 왔다.
이렇게 발전해 온 마퇴본부가 금년에 식약처로 이관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약학사회지를 참조하며 아쉬움을 달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