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학의 특성을 여러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이번에는 ‘약학의 평가과학(評價科學)적 특성’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과학은 크게 순수과학, 응용과학, 그리고 평가 과학의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우선 순수과학(pure science)이란 ‘사물의 메커니즘(why?)’ 즉 왜 그럴까를 연구하는 학문을 말합니다. 두번째, 응용과학(applied science)은 얻어진 지식을 실생활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how to apply?)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마지막 세번째 과학인 평가과학은 좋고 나쁨의 판단의 기준을 어디 (which)에 놓을까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영어로는 regulatory science라고 합니다만 우리는 규제과학, 일본은 평가과학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평가과학의 대표적인 학문이 바로 약학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약학의 사명 중 하나는 약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저울질해서 특정 질환의 환자에게 써도 좋을지 여부를 판단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어떤 약의 좋고 나쁨을 고정된 한 개의 기준으로 잘라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어려운 일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국가 기관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입니다.
예컨대 항암제는 얼마나 안전하면 암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 감기약에 대해서는 사소한 부작용만 있어도 개발을 승인하지 않는 식약처가, 항암제에 대해서는 탈모나 구토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 경우에도 곧잘 개발을 승인합니다. 다소 부작용이 있더라도 암환자에게 사용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개발을 승인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약의 승인 기준은 그때그때 다르고, 또 달라야 합니다. 두 팔 저울을 사용하여 유효성과 안전성을 평가할 때에 두 팔의 받침돌을 어디에 놓아야 할까요? 이는 그 약을 무슨 병에 쓸 것인가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평가를 내리는 사람의 역할은 법으로 치자면 마치 검사와 변호사의 의견을 종합하여 판결을 내리는 판사와 비슷해 보입니다. 이처럼 사안에 따라 저울의 받침대 위치를 바꾸어 가며 올바른 판단을 내릴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매우 균형 잡힌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런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바로 약학 교육의 사명입니다.
순수과학자나 응용과학자들은 어떤 메카니즘을 규명하거나 응용가능성을 발견하면 금방 흥분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폴리머(polymer)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국제 학회에 가 봤더니, pH나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새로운 기능성 풀리머를 발견했는데, 이 물질이 새로운 의료용 물질로서 그 응용성이 크게 기대된다는 식의 발표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질문을 했습니다. 그 폴리머를 사람에게 쓸 수 있겠냐고요. 그랬더니 그거는 자기의 관심사가 아니래요. 자기는 이런 메커니즘이 재미있어 연구를 할 따름이라는 거예요. 자기가 재미있어서 연구한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인체에 대한 안전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아무리 기능성이 좋아도 무용지물이 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안전성을 입증하는 것은 새로운 약의 안전성을 입증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저로서는 쉽사리 그분들의 흥분에 동참할 수가 없었습니다.
약학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은 기능성(유효성)을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부작용(안전성)을 걱정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폴리머의 신기한 기능성을 확인하고도 그 응용성에 대해 쉽사리 낙관하지 않습니다. 흥분하지 않는 것은 물론 종종 비관적인 견해를 갖습니다. 새로운 물질 하나를 얻었다고 흥분했다가 결과가 좋지 않아 머쓱해지는 사례를 많이 봐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학자들은 흔히 매사에 소심(小心)하다는 평을 듣습니다. 유효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고려하고 평가해보면 그 물질의 앞날에 대해 걱정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는 어떤 면에서는 평가과학자인 약학자가 기꺼이 감당해야 마땅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약학의 평가과학적 특성, 그리고 이에 따른 약학자의 소심성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이야기는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약학의 특성을 여러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이번에는 ‘약학의 평가과학(評價科學)적 특성’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과학은 크게 순수과학, 응용과학, 그리고 평가 과학의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우선 순수과학(pure science)이란 ‘사물의 메커니즘(why?)’ 즉 왜 그럴까를 연구하는 학문을 말합니다. 두번째, 응용과학(applied science)은 얻어진 지식을 실생활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how to apply?)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마지막 세번째 과학인 평가과학은 좋고 나쁨의 판단의 기준을 어디 (which)에 놓을까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영어로는 regulatory science라고 합니다만 우리는 규제과학, 일본은 평가과학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평가과학의 대표적인 학문이 바로 약학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약학의 사명 중 하나는 약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저울질해서 특정 질환의 환자에게 써도 좋을지 여부를 판단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어떤 약의 좋고 나쁨을 고정된 한 개의 기준으로 잘라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어려운 일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국가 기관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입니다.
예컨대 항암제는 얼마나 안전하면 암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 감기약에 대해서는 사소한 부작용만 있어도 개발을 승인하지 않는 식약처가, 항암제에 대해서는 탈모나 구토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 경우에도 곧잘 개발을 승인합니다. 다소 부작용이 있더라도 암환자에게 사용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개발을 승인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약의 승인 기준은 그때그때 다르고, 또 달라야 합니다. 두 팔 저울을 사용하여 유효성과 안전성을 평가할 때에 두 팔의 받침돌을 어디에 놓아야 할까요? 이는 그 약을 무슨 병에 쓸 것인가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평가를 내리는 사람의 역할은 법으로 치자면 마치 검사와 변호사의 의견을 종합하여 판결을 내리는 판사와 비슷해 보입니다. 이처럼 사안에 따라 저울의 받침대 위치를 바꾸어 가며 올바른 판단을 내릴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매우 균형 잡힌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런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바로 약학 교육의 사명입니다.
순수과학자나 응용과학자들은 어떤 메카니즘을 규명하거나 응용가능성을 발견하면 금방 흥분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폴리머(polymer)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국제 학회에 가 봤더니, pH나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새로운 기능성 풀리머를 발견했는데, 이 물질이 새로운 의료용 물질로서 그 응용성이 크게 기대된다는 식의 발표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질문을 했습니다. 그 폴리머를 사람에게 쓸 수 있겠냐고요. 그랬더니 그거는 자기의 관심사가 아니래요. 자기는 이런 메커니즘이 재미있어 연구를 할 따름이라는 거예요. 자기가 재미있어서 연구한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인체에 대한 안전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아무리 기능성이 좋아도 무용지물이 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안전성을 입증하는 것은 새로운 약의 안전성을 입증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저로서는 쉽사리 그분들의 흥분에 동참할 수가 없었습니다.
약학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은 기능성(유효성)을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부작용(안전성)을 걱정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폴리머의 신기한 기능성을 확인하고도 그 응용성에 대해 쉽사리 낙관하지 않습니다. 흥분하지 않는 것은 물론 종종 비관적인 견해를 갖습니다. 새로운 물질 하나를 얻었다고 흥분했다가 결과가 좋지 않아 머쓱해지는 사례를 많이 봐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학자들은 흔히 매사에 소심(小心)하다는 평을 듣습니다. 유효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고려하고 평가해보면 그 물질의 앞날에 대해 걱정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는 어떤 면에서는 평가과학자인 약학자가 기꺼이 감당해야 마땅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약학의 평가과학적 특성, 그리고 이에 따른 약학자의 소심성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이야기는 다음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