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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는 대개 여름마다 시골이나 외국에 있는 사람들을 전도하고 지원하기 위해 아웃리치(outreach)를 떠난다. 벌써 10여년 전 시골에 있는 작은 교회로 아웃 리치를 갔을 때 느낀 일이다. 우리는 의료팀을 대동하고, 안마의자를 사고 소갈비를 재는 등 나름대로 성의를 다해 준비를 해서 현지에 갔다. 그런데 현지 주민의 호응은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그 원인을 생각해 보았다. 우선 우리나라처럼 의료보험이 매우 잘 되어 있는 나라에서는 일회성 의료가 주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던 때문이었다. 안마의자 따위도 마을회관에 더 좋은 물건이 여러 대 설치되어 있어서 주민들의 관심을 끌기 어려웠다. 식생활 수준도 매우 향상되어 있어서 소갈비로는 아이들의 환심도 크게 살 수 없었다. 아이들은 갈비 몇 점을 먹고는 운동장으로 달려 가 공을 찼다. 이제 우리나라는 이런 것들로 주민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의 나라가 아닌 것이다.
몇 년 후 다시 최고의 의료팀을 완비하여 강화도 모처로 아웃리치를 나갔을 때도 상황이 비슷하였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현지 교회 목사님에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교회로 오게 할 수 있을까요’ 물어봤다. 즉각 되돌아온 대답은 “연예인이나 데리고 오시죠” 였다.
오늘날과 달리 옛날의 교회는 사람들이 호응할만한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당시의 아이들은 갈비가 아니라 사탕만 얻어먹어도 좋았고, 어른들은 교회에서 듣고 보는 서양의 신문물이 신기한 것이 좋았다. 당시의 교회는 의료, 교육, 인권 등 다방면에서 선진 문물을 배울 것이 많은 장소였다.
어쩌면 제일 중요한 것으로 옛날 교회에는 감동이 있었다. 상놈이 먼저 교회 장로가 되고, 그를 부리던 양반이 그를 섬기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자연히 교회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 결과 교회는 세상에 대해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다.
오늘날의 교회는 크기는 옛날에 비할 바 없이 커졌지만,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갖는 관심과 세상에 대한 교회의 영향력은 오히려 그 때만 못한 느낌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우선은 교회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신문물이 없어질 정도로 우리나라가 많이 발전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같다. 보다 본질적인 것으로는 교회를 통해 감동을 받는 일이 적어진 탓도 있을지 모르겠다. 교회가 감동을 주기는커녕 사회의 지탄을 받는 경우도 많아졌다. 게다가 이단(異端) 논란은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로 가기를 두렵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래저래 사람들이 교회로 모이지 않게 되고, 교회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기 어렵게 되었다. 유럽의 교회들이 속속 문을 닫는다는데, 우리의 미래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
나는 요즘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묵상하고 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할 정도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계명이라고 가르치셨다. 몸소 십자가에 못박히심을 통해 이를 가르치셨다. 그 예수님을 믿는 종교가 기독교 아닌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한다면 교회는 사랑의 진원지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랑이 없는 곳에는 미움과 다툼과 정죄가 있기 마련이다. 사랑이 없으면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울타리 밖으로 배척한다. 그 결과 울타리 안에 있는 우리(we)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어 마침내는 나 혼자 고립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사랑은 화해와 포용을 통해 우리라는 공동체의 울타리를 점점 더 넓게 만든다. 감히 그 성함을 거론하기도 외람되지만, 고 손양원 목사님은 아들을 죽인 청년을 양자로 삼았다. 그분이 돌보시던 애양원에 나환자들이 모여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새해 우리 교회의 표어는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이 되자는 것이다. 나는 이 표어가 역사하기를 소망한다. 교회의 사랑이 세상에 퍼져 마침내 온누리가 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 소망은 참된 기도자들의 간절한 기도가 있는 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아웃리치를 묵상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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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는 대개 여름마다 시골이나 외국에 있는 사람들을 전도하고 지원하기 위해 아웃리치(outreach)를 떠난다. 벌써 10여년 전 시골에 있는 작은 교회로 아웃 리치를 갔을 때 느낀 일이다. 우리는 의료팀을 대동하고, 안마의자를 사고 소갈비를 재는 등 나름대로 성의를 다해 준비를 해서 현지에 갔다. 그런데 현지 주민의 호응은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그 원인을 생각해 보았다. 우선 우리나라처럼 의료보험이 매우 잘 되어 있는 나라에서는 일회성 의료가 주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던 때문이었다. 안마의자 따위도 마을회관에 더 좋은 물건이 여러 대 설치되어 있어서 주민들의 관심을 끌기 어려웠다. 식생활 수준도 매우 향상되어 있어서 소갈비로는 아이들의 환심도 크게 살 수 없었다. 아이들은 갈비 몇 점을 먹고는 운동장으로 달려 가 공을 찼다. 이제 우리나라는 이런 것들로 주민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의 나라가 아닌 것이다.
몇 년 후 다시 최고의 의료팀을 완비하여 강화도 모처로 아웃리치를 나갔을 때도 상황이 비슷하였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현지 교회 목사님에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교회로 오게 할 수 있을까요’ 물어봤다. 즉각 되돌아온 대답은 “연예인이나 데리고 오시죠” 였다.
오늘날과 달리 옛날의 교회는 사람들이 호응할만한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당시의 아이들은 갈비가 아니라 사탕만 얻어먹어도 좋았고, 어른들은 교회에서 듣고 보는 서양의 신문물이 신기한 것이 좋았다. 당시의 교회는 의료, 교육, 인권 등 다방면에서 선진 문물을 배울 것이 많은 장소였다.
어쩌면 제일 중요한 것으로 옛날 교회에는 감동이 있었다. 상놈이 먼저 교회 장로가 되고, 그를 부리던 양반이 그를 섬기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자연히 교회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 결과 교회는 세상에 대해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다.
오늘날의 교회는 크기는 옛날에 비할 바 없이 커졌지만,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갖는 관심과 세상에 대한 교회의 영향력은 오히려 그 때만 못한 느낌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우선은 교회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신문물이 없어질 정도로 우리나라가 많이 발전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같다. 보다 본질적인 것으로는 교회를 통해 감동을 받는 일이 적어진 탓도 있을지 모르겠다. 교회가 감동을 주기는커녕 사회의 지탄을 받는 경우도 많아졌다. 게다가 이단(異端) 논란은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로 가기를 두렵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래저래 사람들이 교회로 모이지 않게 되고, 교회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기 어렵게 되었다. 유럽의 교회들이 속속 문을 닫는다는데, 우리의 미래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
나는 요즘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묵상하고 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할 정도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계명이라고 가르치셨다. 몸소 십자가에 못박히심을 통해 이를 가르치셨다. 그 예수님을 믿는 종교가 기독교 아닌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한다면 교회는 사랑의 진원지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랑이 없는 곳에는 미움과 다툼과 정죄가 있기 마련이다. 사랑이 없으면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울타리 밖으로 배척한다. 그 결과 울타리 안에 있는 우리(we)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어 마침내는 나 혼자 고립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사랑은 화해와 포용을 통해 우리라는 공동체의 울타리를 점점 더 넓게 만든다. 감히 그 성함을 거론하기도 외람되지만, 고 손양원 목사님은 아들을 죽인 청년을 양자로 삼았다. 그분이 돌보시던 애양원에 나환자들이 모여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새해 우리 교회의 표어는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이 되자는 것이다. 나는 이 표어가 역사하기를 소망한다. 교회의 사랑이 세상에 퍼져 마침내 온누리가 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 소망은 참된 기도자들의 간절한 기도가 있는 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아웃리치를 묵상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