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384> 손녀의 근검절약
심창구
입력 2023-12-15 09:4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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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의 근검 절약 (약춘 280)은 이미 설명한 바 있는 대로 그 수준이 올림픽 금메달 감이셨다. 일단 돈이 수중에 들어오면 그 돈이 땀에 절을 때까지 결코 손을 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셨다. 또 아무개는 가방을 3대째 쓰고 있다는데 너희들은 벌써 또 가방을 사 달래냐고 나무라시기도 하였다.

중학교 때 교모(校帽)를 새로 사달라고 말씀드리자 ‘머리 위에 얹어 놓고 다니는 모자가 왜 해지느냐?’고 야단 치셨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아버지에 대해 별 불만을 품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는 자식들에게 요구하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근검절약을 하셨고, 또 친척이나 주변 사람들을 도와주시는 것을 여러 번 보았기 때문이다.

아버지 덕분에 자식들도 어느 정도 근검절약이 몸에 배긴 하였지만 도저히 아버지를 따라 갈 수는 없었다. 내 아들이자 아버지의 두 손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아버지의 증손주, 그러니까 나의 4손주 중 한 명이 아버지의 마음에 꼭 들만큼 근검절약 정신을 타고 났다. 아버지가 생존해 계셨다면 엄청 기뻐하셨을 것이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큰 아들의 세 딸 중 둘째 아이인 예원이가 오늘의 주인공인데, 2년전인가 아들네에 들렀더니 초등확교 5학년인 예원이가 동네 수퍼 마켓에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따라 가 보았더니, 그동안 모아 놓은 쿠폰으로 가위를 받아오는 것이 아닌가?

며느리한테 물어봤더니 예원이의 알뜰생활은 이 정도가 아니었다. 원 플러스 원이 아니면 물건을 사지 않고, 쇠고기를 산 후 돼지 고기를 사려고 하면 ‘고기 종류는 한가지만 사면되지, 뭐하러 두 가지나 사냐’고 엄마를 질책(?)하더란다. 그래서 아들은 며느리가 시장에 갈 때 예원이가 따라붙으면 안심이 된단다. 그 애가 엄마의 과소비(?)를 적절히 견제해 주기 때문이다.

한번은 아내가, 즉 예원이의 할머니가 호랑이 콩을 살 때 깐 콩을 사 왔다가 예원이한테 야단(?)을 맞았다고 한다. 이유는 깐 콩은 안 깐 콩보다 훨씬 비싼데, 안 깐 콩을 사와서 집에서 까면 될 걸 뭐하러 비싼 돈을 주고 깐 콩을 사냐고 했단다. 그 후로 우리집은 호랑이 콩을 살 때마다 예원이한테 혼날까 봐 안 깐 콩만을 사고 있다. 안 깐 콩을 두 자루 사오면 주로 내가 그걸 깐다. 물론 예원이가 함께 있을 때는 예원이도 도와준다.

맛있는 음식을 사주러 음식점에 데리고 가면 예원이는 할아버지가 놀랄까 봐 계산이 얼마가 나오는지 미리 귀뜸해 준다.  최근에 세 손녀에게 스테이크를 사 주려고 VIPS라는 양식당에 데리고 갔더니, 주문하기 전에 자기들끼리 뭔가 숙덕거렸다. 무슨 일일까 잠시 기다렸더니 ‘스테이크가 너무 비싸서 셋이서 한 개만 먹고 두 개는 싼 메뉴로 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돈을 절약하려고 머리를 맞댄 손녀들이 기특해서 감동을 받았다. 

문득 10여년전 내가 정년 퇴직을 앞두고 직원들에게 점심 한끼를 대접한 일이 생각났다. 그들은 ‘이왕 얻어먹는 거 비싼 걸로 먹어야지’ 하면서 일식집으로 가자고 하였다. 어쩔 수 없이 끌려간 나는 기분이 영 언짢았다. 그들의 얌체 근성을 본 것 같아서였다.  그 때 나는 ‘다시는 이런 호의를 베풀지 말아야겠다’ 고 결심(?)하였다. 그에 비하면 우리 손녀들의 마음씨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할아버지가 과용하지 않도록 배려를 해 주다니! 아무래도 우리 손녀들, 특히 예원이는 증조할아버지의 근검절약 유전자를 그대로 받은 것 같다.

자랑을 조금 더 하자면 예원이는 식성도 남 다르다. 설렁탕을 사주면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먹은 후 빈 그릇을 머리 위에서 뒤집어 보여준다. 또 아이답지 않게 장어구이를 좋아하고, 게장이라면 양념과 간장을 가리지 않는다. 제 부모를 따라 미국에 1년간 가 있을 때, 햄버거를 계속 사주니까 “엄마, 이건 음식이 아니잖아” 하며 울먹거렸단다. 어쩌면 식성도 내 맘에 꼭 드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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