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377> 블루마운틴
심창구
입력 2023-08-30 11:40 수정 최종수정 2023-09-25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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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부성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동경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1979년 4월의 어느 날, 모처럼 커피를 마실까 해서 학교 앞에 있는 낏사텐(喫茶店)이라고 하는 고히쇼프(coffee shop)에 들어갔다. 자리에 앉자 연세가 지긋한 영감님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 젊은 여성 종업원이 주문을 받는 우리나라와 상황이 달랐다.  

나는 ‘고히’를 주문 하였다. 일본에서는 커피를 고히(コヒ)라고 한다. 그런데 주문을 받은 영감님이 ‘알겠습니다’ 하지 않고 그냥 서 있는 것이었다. 내 일본어가 짧던 시절이라 약간 당황한 끝에 알게 된 사실은, 그 집에서 파는 모든 차(茶)들이 다 커피류(類)이기 때문에 손님은 그 중 어떤 커피, 또는 어떤 브랜드의 커피를 원하는지를 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커피와 차 등을 파는 곳을 다방(茶房)이라고 불렀다.  다방이 커피 숍을 거쳐 카페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다. 다방에 가면 의례 젊은 여성이 손님에게 와서 차 주문을 받았고, 잠시 후 손님 자리에까지 차를 날라다 주었다. 다방에서는 커피, 모닝 커피(커피 + 계란 노른자), 홍차, 위티(홍차 + 위스키 몇 방울), 계란 반숙, 쌍화차, 특쌍화차(쌍화차 + 계란 노른자) 등을 팔았다. 커피의 종류는 한 가지뿐이었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그냥 ‘커피’ 라고만 주문하면 되었다.

다방에서 근무하는 여성을 흔히 레지(lady)라고 불렀고, 카운터에 앉아 있는 CEO 급(?) 여성을 얼굴 마담 또는 가오 마담(가오는 일본말로 얼굴, 顔)이라고 불렀다. 그 땐 왜 그렇게 사장이 흔했는지, 종업원들은 나이가 좀 든 남자 손님을 예외없이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이는 남자 손님들의 허세를 노려 비싼 차(예, 특쌍화차)를 팔고자 하는 상술(商術)의 일환이었다. 더 유능한 레지는 사장님으로 불러 비싼 차를 얻어 마심으로써 다방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었다. 최백호씨의 힛트곡인 ‘낭만에 대하여’에 나오는 노랫말처럼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레지나 마담과 객쩍은 농담을 주고받는 사장님들이 많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이런 다방 밖에 모르던 내가 동경의 커피숍에 가서 ‘커피 주세요’라고 주문한 것은 당연한 귀결(歸結)이다. 낏사텐에서는 실로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팔고 있었다. 홋또(hot coffee), 아이스(iced coffee), 아메리카노 외에도, 한두 번 들어서는 외워지지도 않을 외국어로 된 다양한 브랜드의 원두 커피 들을 팔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곳에 가서 ‘커피’를 달라고 했으니, 마치 식당에 가서 “식사 주세요”라고 주문한 꼴이 되었다. 내 주문을 받은 영감님이 잠시 당황했을 만도 하였다.

이때 나는 커피 브랜드 이름 하나는 외워둬야겠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딱 하나 외운 것이 블루마운틴이었다. 그러나 블루마운틴은 제법 비싼 고급품이어서 그후로도 실제로 마셔본 기억은 거의 없다. 그래도 어디 가서 좀 아는 척할 필요가 있을 때 이 이름을 언급하면 좀 먹히는 것을 느꼈다. 블루마운틴은 내가 그런 용도로 써먹는 이름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 되도록 영감님이 써브하는 낏사텐은 가지 않았다. 분위기 탓인지 웬지 커피 맛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경대학 근처에 젊은 여성이 근무하는 커피숍은 없었다. 그때 일본은 벌써 커피숍이 젊은 여성을 채용할 수 없을 정도로 고임금 시대에 들어서 있었던 것이다. 차선책(次善策)(?)으로 나와 연구실 동료들은 할머니가 써브하는 커피숍에 가 보았다. 다들 그래도 영감님 숍보다는 분위기가 낫다고 하였다. (아무튼 남자들이란….) 하긴 그런 곳도 서너번 밖에 못 가 보았다.

1990년초에 일본 최남단 시코쿠(四國)에 있는 도꾸시마(德島)대에 2개월간 객원교수로 가 있을 때, 마침 한달간 연구차 나오신 김종국 교수님과 커피숍을 찾아 다녀 보았다. 지방의 작은 도시인 거기에서도 젊은 여성이 근무하는 커피숍은 없었다.  

가끔 낏사텐도 카페도 아닌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가보고 싶을 때가 있다. 나이 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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