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0년간 교수로 재직하면서 20개의 국제 학술대회를 조직하거나 좌장을 맡았고, Pharmaceutical Research, J. Pharm. Sci., DMPK, Biopharm. & Drug Dispos. 를 포함한 12개의 국내외 학술지의 편집위원(editorial board member)으로 활동하였다. 처음으로 편집위원이 되었을 경우, 뭐나 된 것 같아 스스로 대견해했던 추억이 새롭다. 이는 양적으로나마 제법 많은 수의 논문을 발표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나는 업적에 비해 상복(賞福)도 많았다. 40개에 가까운 상을 받았는데, 그중 2005년 11월 6일, 미국 Nashiville(Tennessee)에서 열린 미국약학회(AAPS) 총회에서 약물대사 및 동태학 분야의 펠로우(fellow,) 상을 수상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한다.
내가 식약청장을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와 있던 2005년 2월, 도쿄대학 유학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온 후배인 도호쿠(東北)대학의 테라사키 교수와 홋카이도(北海道)대학의 하라시마 교수가 우리 부부를 초청하였다. 두 대학에서 세미나가 끝난 후, 두 사람은 각각 우리에게 삿포로와 센다이를 구경시켜 주었다. 특히 센다이(仙台)에서 마츠시마(松島)만을 유람한 일, 그리고 센다이(仙台) 아키호(秋保) 온천 지역에 있는 기요미즈 호텔에서 눈 내리는 날 최고급 노천탕을 즐긴 일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 테라사키 교수가 내게 ‘AAPS' 펠로우를 신청해 보라’고 권유하였다. 내가 생각도 못 해 본 일이라고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자, 그는 내가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으니 꼭 신청하라고 몇 번에 걸쳐 강권하였다. 그러면서 자기가 AAPS 펠로우를 신청할 때 작성한 컴퓨터 파일을 참고하라며 주었다. 그러면서 좋은 논문 2~3 편을 쓰는 정성으로 신청서를 써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나중에 파일을 열어보니, 그가 발표한 각종 논문 및 학회 발표 사항, 그리고 그것들이 가져온 반향 등이 놀라울 정도로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예컨대 언제 누구를 대상으로 발표한 강연에 몇 명의 청중이 모였으며 그들의 반응이 어땠는지까지가 빠짐없이 기술되어 있었다.
신청서 작성의 노하우를 깨달은 나는 곧 작업에 착수하였다. 고맙게도 내 연구실의 포닥인 C 박사(현 D대 약대 교수)가 오랜 기간에 걸쳐 이 작업을 도와주었다. 이로써 내 일생의 연구 관련 활동을 상세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신청서에는 AAPS 펠로우 세 사람의 추천서를 첨부하게 되어 있는데, 도쿄대학의 스기야마 교수, 호시(Hoshi, 星) 약과대학의 나가이 교수, 교토대학의 하시다 교수가 추천서를 써 주었다. 이 분들은 당시 일본 약제학계의 3대 거목이었다. 이 분들이 추천서를 쓰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의례적인 추천서가 아니라 내 연구 전체를 면밀히 검토하여 주요 연구 주제에 대한 구체적인 비평을 하는 장문(長文)의 추천서를 써야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들 서류를 총괄하여 AAPS에 신청하는 글을 쓰는 일은 미시간(Michigan)대학교 약대의 아미돈(G. Amidon) 교수가 해 주었다.
2년 가까이 이와 같은 작업을 한 끝에 마침내 학회의 심사를 통과하였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로써 나는 성균관대 약대의 L 교수와 서울대의 K 교수에 이어 국내 세번째로 AAPS의 펠로우가 되었다. 미국 인맥이 부족한 내가 미국약학회의 펠로우로 선정된 일은 자다가 생각해도 대견한 일이었다. 이 상을 받을 때는 아내도 동행하였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KAST)에는 1998.11에 정회원으로 피촉되었고, 2005년 11에 종신회원이 되었다. AAPS의 펠로우가 되기 훨씬 전이었다. 2008. 10에는 일본약물동태학회(JSSX)의 펠로우로도 선정되었다.
참, 내가 받은 40개의 상에는 시골 초등학교 졸업시에 받은 민의원(民議員)상과 약대 수석 입학으로 받은 총장상도 들어있다. 아득한 추억 속에 들어 있는 이런 상들이 내 인생에 무슨 의미를 부여하는지 가끔 생각해 본다.
나는 30년간 교수로 재직하면서 20개의 국제 학술대회를 조직하거나 좌장을 맡았고, Pharmaceutical Research, J. Pharm. Sci., DMPK, Biopharm. & Drug Dispos. 를 포함한 12개의 국내외 학술지의 편집위원(editorial board member)으로 활동하였다. 처음으로 편집위원이 되었을 경우, 뭐나 된 것 같아 스스로 대견해했던 추억이 새롭다. 이는 양적으로나마 제법 많은 수의 논문을 발표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나는 업적에 비해 상복(賞福)도 많았다. 40개에 가까운 상을 받았는데, 그중 2005년 11월 6일, 미국 Nashiville(Tennessee)에서 열린 미국약학회(AAPS) 총회에서 약물대사 및 동태학 분야의 펠로우(fellow,) 상을 수상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한다.
내가 식약청장을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와 있던 2005년 2월, 도쿄대학 유학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온 후배인 도호쿠(東北)대학의 테라사키 교수와 홋카이도(北海道)대학의 하라시마 교수가 우리 부부를 초청하였다. 두 대학에서 세미나가 끝난 후, 두 사람은 각각 우리에게 삿포로와 센다이를 구경시켜 주었다. 특히 센다이(仙台)에서 마츠시마(松島)만을 유람한 일, 그리고 센다이(仙台) 아키호(秋保) 온천 지역에 있는 기요미즈 호텔에서 눈 내리는 날 최고급 노천탕을 즐긴 일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 테라사키 교수가 내게 ‘AAPS' 펠로우를 신청해 보라’고 권유하였다. 내가 생각도 못 해 본 일이라고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자, 그는 내가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으니 꼭 신청하라고 몇 번에 걸쳐 강권하였다. 그러면서 자기가 AAPS 펠로우를 신청할 때 작성한 컴퓨터 파일을 참고하라며 주었다. 그러면서 좋은 논문 2~3 편을 쓰는 정성으로 신청서를 써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나중에 파일을 열어보니, 그가 발표한 각종 논문 및 학회 발표 사항, 그리고 그것들이 가져온 반향 등이 놀라울 정도로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예컨대 언제 누구를 대상으로 발표한 강연에 몇 명의 청중이 모였으며 그들의 반응이 어땠는지까지가 빠짐없이 기술되어 있었다.
신청서 작성의 노하우를 깨달은 나는 곧 작업에 착수하였다. 고맙게도 내 연구실의 포닥인 C 박사(현 D대 약대 교수)가 오랜 기간에 걸쳐 이 작업을 도와주었다. 이로써 내 일생의 연구 관련 활동을 상세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신청서에는 AAPS 펠로우 세 사람의 추천서를 첨부하게 되어 있는데, 도쿄대학의 스기야마 교수, 호시(Hoshi, 星) 약과대학의 나가이 교수, 교토대학의 하시다 교수가 추천서를 써 주었다. 이 분들은 당시 일본 약제학계의 3대 거목이었다. 이 분들이 추천서를 쓰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의례적인 추천서가 아니라 내 연구 전체를 면밀히 검토하여 주요 연구 주제에 대한 구체적인 비평을 하는 장문(長文)의 추천서를 써야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들 서류를 총괄하여 AAPS에 신청하는 글을 쓰는 일은 미시간(Michigan)대학교 약대의 아미돈(G. Amidon) 교수가 해 주었다.
2년 가까이 이와 같은 작업을 한 끝에 마침내 학회의 심사를 통과하였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로써 나는 성균관대 약대의 L 교수와 서울대의 K 교수에 이어 국내 세번째로 AAPS의 펠로우가 되었다. 미국 인맥이 부족한 내가 미국약학회의 펠로우로 선정된 일은 자다가 생각해도 대견한 일이었다. 이 상을 받을 때는 아내도 동행하였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KAST)에는 1998.11에 정회원으로 피촉되었고, 2005년 11에 종신회원이 되었다. AAPS의 펠로우가 되기 훨씬 전이었다. 2008. 10에는 일본약물동태학회(JSSX)의 펠로우로도 선정되었다.
참, 내가 받은 40개의 상에는 시골 초등학교 졸업시에 받은 민의원(民議員)상과 약대 수석 입학으로 받은 총장상도 들어있다. 아득한 추억 속에 들어 있는 이런 상들이 내 인생에 무슨 의미를 부여하는지 가끔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