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373> 식약청으로의 외출 - 작은 깨달음 (25)
심창구
입력 2023-06-28 09:32 수정 최종수정 2023-06-28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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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어느 날 나는 자곡동 집에서 설사약을 먹고 한창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1994년 직장암 수술 후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는 장(腸) 내시경 검사를 위한 준비였다.

그때 청와대라고 하는 곳에서 전화가 왔다. 식품의약품안전청장(식약청장)을 맡을 용의가 있냐는 내용이었다. 놀란 나는 우선 내가 공직을 맡기엔 건강이 부실하다고 대답하였다. 그래도 잘 생각해 보라고 하기에 ‘내일 다시 통화하자’고 대답하였다.

다음 날 D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더니 다행히 장(腸)에 이상은 없었다. 그래서 바로 천문우 학장님을 찾아 뵙고 어찌하는 것이 좋겠나 상의 드렸다. 학장님은 망설임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했다. 이어서 온누리 교회의 하용조 목사님을 찾아 뵀다. 나는 목사님은 당연히 사양하라고 하실 줄 알았다. 그런데 목사님도 한 칼에 “하세요”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청와대에서 두 번째 전화가 왔을 때 나는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사실 나는 정부에서 나같은 문외한(門外漢)을 공직(公職)으로 부르는 데에 매우 놀랐다. 나와 식약청 업무의 관련성은, 생동성(生動性)시험에 대한 약간의 전문성, 대한약사회 약사연수교육위원장(1992년) 경력, 한약분쟁(韓-藥 紛爭) 참여(1993년 3월 KBS ‘여의도 법정’ 출연 등) 경력, ‘의약분업 실시를 위한 의-약-정(醫藥政) 협상’(2000년 10월)에 약계 9인 대표 중 1인으로 참여한 경력 정도에 불과했다.

나는 공직을 희망해 본 적도 없었다. 교수가 현안에 너무 많이 참여하면 바보요, 너무 피하면 비겁한 사람이다. 그런 내가 위에 언급한 몇 가지 현안에 참여하게 된 것은 실은 주변의 요청을 거절 못하는 내 유약한 성격의 탓이지, 공직으로의 외도(外道) 목표를 갖고 있어서가 절대 아니었다.

혹자(或者)는 나를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멤버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비슷한 모임에도 기웃거려 본 적이 없다. 암 수술을 받고 살아남은 것만 해도 기적인데 어찌 딴 생각을 했겠는가?

아무튼 이런 경과를 거쳐 2003년 3월 3일부터 제5대 식약청장으로 봉직하게 되었다. 식약청 사상 최초로 내부에서 차장을 임명한 일, 만두소 사건, 감기약 사건 등을 거치면서 특히 복지부와의 갈등으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당시는 규제철폐(規制撤廢)가 만능의 열쇠인 것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나는 잘 정비된 규제는 기차의 철로처럼 관련 산업을 진흥시키는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나는 식약청이 정부 부서 중 최초로 ‘전자정부(電子政府) 사업’에 도전하도록 독려하였다. 전자정부야 말로 식약청 업무의 질을 업그레이드하는 가장 실질적인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사업의 결과, 예컨대 전국 각지에서 수입 유통되고 있는 식품 등의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IMF 와중에 탄생한 식약청은 아직 인큐베이터에 들어 있는 상황이었다. 이를 호소하여 행정안전부로부터 적지 않은 수의 증원을 받아냈고, 식약청을 오송 단지로 이전하여 부지를 넓게 잡기 위한 노력도 하였다.

또 1973년에 없어진 ‘약의 날’을 30년 만인 2003년에 제17회 약의 날로 부활시켰다. 이 ‘약의 날’은 2021년에 ‘국가기념일’로 승격되었는데, 나는 ‘약의 날’을 부활시킨 공로로 2021년 약의 날 (11.18)에 이 행사를 주관하는 7개 약계 단체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내가 무엇보다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식약청 재임 중 어떤 비굴한 결정이나 언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총리 주재 회의에서도 끝내 소신을 굽히지 않은 해프닝(?)도 있었다. 

2004년 9월 1일, 1년 반 동안의 식약청 생활을 마치고 학교로 복귀하였다. 외출 후 집으로 돌아온 사람처럼 평안한 가운데 대학원 학생들과 연구 생활을 재개하였다. 민망하게도 그해 12월에는 온누리교회의 장로가 되었다.

내일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지만, 식약청장과 장로는 정말 그런 사건들이었다.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을 경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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