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0년간의 교수 생활을 통해 학문적으로 큰 성취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양적으로는 제법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217편의 논문을 소위 SCI급 국제 잡지에, 102편의 논문을 국내 잡지에 발표했으며, 87회 국내 강연, 43회 국제학술대회 강연을 했고, 91개의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내 논문의 34%는 생물약제학(biopharmaceutics), 30%는 약물송달학(drug delivery), 25%는 약물동태학(pharmacokinetics), 10%는 약물분석 등에 관한 것이었다.
1984년에는 ‘약물치료시스템’이라는 영문 책(도서출판 샤론)을 번역했고, 1993년에는 K, C교수와 교토대학의 세자끼 교수 등이 쓴 ‘약물송달학’을 공동번역(도서출판 한림원)했으며, 1994년에는 ‘약물체내속도론’을, 1999년에는 ‘생물약제학’(이상 서울대학교 출판부)을 저술했다. 뒤의 두 책은 외국의 책을 번역한 뒤 부족한 내용을 추가 보완한 책이다. 외국 책을 그대로 베낀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독창성을 발휘한 책이긴 하지만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표절’이라는 판단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 책들은 약제학의 새로운 물결 3가지 전부를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교과서라는 데 의미가 있다. 이외에도 나는 약제학 실습서 등 상당 수의 책자와 프린트물들을 만들어 교재로 사용했다.
정년을 3년 정도 앞두고는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서울대학교 바이오 대중강좌’에 타 학과 교수 6명과 함께 강사로 참여했다. 이 때의 강의 내용이 ‘뇌약구체(腦藥口體)’라는 책(2013년)의 한 챕터로 실렸다. 또 새로 개정된 6년제 약제학 교과서에 ‘맞춤약제학’이란 챕터를 썼는데, 국내외 처음으로 교과서에 21세기 약제학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보람을 느낀다. 이 저술에는 제자인 S교수의 도움을 받았다.
이 외에도 『핵심과학기술용어집』(공편, 2005), 『복약지도 서브노트』(역, 2006), 『약학용어집』(편, 2008), 『새로운 약은 어떻게 창조되나』(역, 2012), 『창약과학의 매력』(공역, 2014), 『약창춘추』 1, 2(수필집, 2012, 2018), 『정말 무서운 약물의존』 (역, 2015) 등을 펴냈다. 이 중 ‘새로운 약은 어떻게 창조되나’는 지난해 12쇄를 찍을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당시 나는 약대 교수 휴게실에 있던 최신식 ‘금성메모리 타자기’를 사용해 원고를 작성했다.나는 원고의 작성, 입력 및 교정의 모든 과정에서 대학원생들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았는데, 이는 남이 한 작업을 믿을 수 없다는 경험에 근거한 결벽증 때문이었다.
연구는 1990년대 초반까지는 주로 두 은사 교수님의 박사과정 대학원생들을 대리 지도하면서 지냈다. 이는 신참 조교수가 학교에 들어오자마자 자기 이름으로 박사과정 학생을 받기가 좀 거북했던 당시의 학교 분위기 탓에, 내 밑에 들어온 박사과정 학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지도한 박사과정 학생은 총 10명이었는데 이 중 8명이 약물동태학 연구로 학위를 받았다. 당시만 해도 학교에 약물동태를 연구하기에 적절한 품질의 실험동물이나 동물 수술 기구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일본에서 사용하던 수술 기구를 학생들에게 보급하는 것만으로도 큰 보람을 느꼈다.